범민주인사 무더기 체포..홍콩 경찰, '체제 전복' 입증할 수 있을까?

정인환 2021. 1. 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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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민주화&보안법]범민주파 정치인·활동가 53명 체포
경찰, "입법회 동원 정부 마비 모의"
전문가, "합법 수단 정부 마비는 합법"
홍콩 친중파 주민들이 6일 홍콩섬 완차이 지역에 자리한 경찰청사 앞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범민주파 정치인·활동가 집단 체포를 환영하고 있다. 홍콩/EPA 연합뉴스

새해 벽두부터 범민주파 정치인과 활동가를 무더기로 체포한 홍콩 경찰의 공안몰이에 대해 안팎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각국 정부가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홍콩 공안당국이 이들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7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등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홍콩 경찰이 전날 범민주파 정치인과 시민사회 활동가 등 53명을 체포한 근거는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22조 3항이 규정한 ‘체제전복’ 혐의다. 해당 조항은 “위력 또는 위력을 사용하겠다는 위협 등 불법적인 수단으로 홍콩 정부의 의무와 기능을 간섭·방해·손상시키는 행위”를 ‘체제 전복’ 행위로 규정하고, 최고 종신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이 ‘체제 전복’ 행위로 지목한 것은 지난해 9월로 예정됐던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범민주파의 입법회(70석) 과반의석 확보를 목표로 홍콩 시민사회가 후보 단일화를 위해 7월11~12일 자체 실시한 경선이다. 앞서 경찰 쪽은 6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3월 이후 일부 세력이 입법회 의석을 악용해 홍콩 정부의 정상적인 기능을 중단시키려는 모의를 해왔다”며 “체포된 53명 가운데 6명은 지난 7월 경선 실시를 조직·주도했으며, 나머지 47명은 이른바 ‘후보자’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이같은 주장은 범민주파의 입법회 과반의석 확보를 목표로 한 ’35+’ 운동을 제안한 베니 타이 전 홍콩대 교수가 지난해 4월28일 <핑궈(빈과)일보>에 기고한 칼럼 내용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6일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타이 교수는 당시 글에서 2020년 7월부터 2022년 1월까지 홍콩 정국의 앞날을 10단계로 나눠 비관적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타이 교수는 지난해 9월로 예정됐던 입법회 선거를 한두달 앞두고 당국이 범민주파 후보자의 자격을 대거 박탈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범민주파가 선거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면, 당국은 의원 자격 박탈을 시도할 것으로 봤다.

의원 자격 박탈을 위한 법적 다툼이 진행되는 사이 범민주파가 장악한 입법회가 정부 예산안을 부결시키면, 당국은 입법회 해산 카드로 맞대응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치러진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다시 과반의석을 확보해 예산안을 재부결시키면, 기본법 55조 규정에 따라 캐리 람 장관은 자동 사임하게 될 수밖에 없다.

타이 교수는 상황이 이렇게 치달으면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홍콩에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고 예견했다. 결국 탄압과 저항이 거세지는 가운데 홍콩과 중국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받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이 현실화하면, 홍콩 시민과 홍콩·중국 당국 간 “상호확증파괴”가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경찰의 주장과 달리 법률 전문가들은 범민주파가 실시한 자체 경선이 ‘위력 또는 위력을 사용하겠다는 위협 등 불법 행위’에 해당에 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사이먼 영 홍콩대 교수(법학)은 신문에 “폭력 등 불법 행위를 동반하지 않고, 합법적인 수단으로 정부를 마비시키는 것은 합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예산과 정책을 견제·감시하는 것은 홍콩의 헌법 격인 기본법에 따른 입법의원의 합법적 권한이란 얘기다.

반면 친중파 변호사인 마리아 탐은 신문에 “체포된 53명은 정부와 입법회를 마비시키려는 구상을 조직·모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며 “홍콩보안법 22조3항 규정에 부합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다만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했는지 여부는 경찰이 후속 수사를 통해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일·프랑스 등 유럽 각국 외교부가 따로 성명을 내어 범민주파 집단 체포를 강력 비판한 가운데, 유럽의회 쪽에선 최근 유럽연합과 중국이 체결한 포괄적 투자협정(CAI) 비준을 홍콩 상황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앤서니 블링컨은 소셜미디어 트위터에 “범민주파 정치인·활동가 체포는 보편적 권리를 용감히 지지해온 모든 이들에 대한 공격”이라며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중국에 맞서 홍콩인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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