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조항만 1,222개.."49人 회사로 쪼개기 난무할 것"

이상훈 기자 2021. 1. 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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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되레 강화]
◆'50인 미만'만 3년 유예
경영진 일일이 간여하기 불가능
산업계 "명확한 규정" 요청 묵살
'사망땐 징역' 등 과잉처벌 그대로
'50人 이상' 적용 기준점도 논란
"헌법 위배·모순투성이 법" 격앙
[서울경제]

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하자 산업계는 “참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정치권에 우려를 전달 했지만 결국 무위로 돌아가자 격앙된 분위기다. 특히 법안소위 통과안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50인 이상 법인은 법 공포 후 1년 유예 기간을 거쳐 곧바로 법 적용대상이 되는 만큼 직원 수 49인 이하로 회사 쪼개기 등이 난무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그런 만큼 산업계는 1년 시행 유예 기간에 △사업주 면책 조항 구체적 명시 △50인 이상 기업도 2년 이상 유예기간 설정 등의 보완 입법 작업에 만전을 기한다는 각오다.

일단 산업계는 이번 법안소위 통과 안에 요구 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본다. 먼저 대표이사(CEO)에 책임을 묻기 앞서 면책 받기 위한 의무 준수 조항을 명확히 규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통과 안의 의무조항은 무려 1,222개에 이른다. 경영진이 일일이 간여하기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정달홍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장은 “사업주가 이익만을 위해 안전을 소홀했다면 모를 까 우발적 사망 사고로 구속을 당한다면 누가 당해낼 수 있느냐”며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의무 규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게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사업주의 처벌도 사망사고 발생 시 1년 이상 징역형으로 규정했다. 상한규정으로 바꾸지 않아 과잉처벌이 우려된다. 여기에 단 한 번의 사망 사고만으로도 대표에 대한 징역 및 벌금 부과(1년 이상 또는 10억원 이하), 법인에 대한 벌금 부과(50억원 이하), 기업에 대한 행정제재(작업중지, 영업중단), 징벌적 손해배상(손해액의 5배 이내) 등 4중의 처벌을 명시했다.

특히 곧바로 법이 적용되는 ‘50인 이상 기업’이란 기준점도 논란거리다. 석용찬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장은 “49인 기업은 영세해서 시행을 3년 유예해 주고, 50인 기업은 대형 기업이라 즉시 적용하는 게 공정한 처사냐”며 “이런 식의 주먹구구식, 막무가내식 조치가 바로 중소기업의 중견·대기업으로 성장을 막는다”고 꼬집었다. 한 중견 기업 CEO는 “스케일-업을 통해 기업의 성장을 유인해야 하는 시점에 이런 악법 때문에 사업주들이 기업을 운영할 의욕을 잃게 된다”며 “특히 주위를 보면 이대로 법이 시행될 경우 회사를 49인 이하로 분리할 것이란 말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원청업체의 역차별 시비도 불거지고 있다. 이번 법안소위 통과안에 따르면 대기업인 원청업체에서 50인 미만 하청 업체 직원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하청 업체 사업주는 법 시행 유예 조치로 처벌을 면할 수 있지만 원청업체 CEO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이미 시장에서는 대기업들이 하청 일감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작업 성격상 대기업이 하청을 줄이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중대재해법이 모순투성이라는 얘기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기업을 적으로 보는 적대형법으로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법”이라며 “처벌 수위를 높여서 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면 권위주의 국가에는 재해가 없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 반대”라고 꼬집었다.

경제단체들도 논평을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치적 고려만을 우선시해 경영계가 요청한 사항을 대부분 반영하지 않고 법안을 의결했다”며 “참담함과 좌절을 느낀다”고 했다. 경총은 “법인에 대한 벌칙 수준도 과도하며 주의의무를 다한 경우에 대한 면책 규정도 없다”면서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처벌 규정을 담아 헌법상 과잉금지원칙과 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99%의 중소기업은 오너가 대표”라며 “만약 이대로 법이 시행된다면 원·하청 구조 등으로 현장의 접점에 있는 중소기업은 당장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늘 시달려야 한다”고 읍소했다. 그러면서 “지금 중소기업계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직원들을 지켜낼 힘조차 없는 상황인데 사업의 존폐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허탈감을 드러냈다. 한 재계의 고위 관계자는 “남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사업주 징역 하한규정을 상한규정으로 바꾸고, 사업주 처벌은 ‘반복적인 사망 재해’로 한정하는 등의 보완 조치 마련을 촉구할 것”이라며 “특히 50인 이상 중소기업의 경우는 산업안전실태의 열악함을 감안해 법 적용을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김능현기자 shlee@sedaily.com

/이상훈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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