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몰매' 후륜구동車, 사실은 '무죄'..유죄는?[왜몰랐을카]

최기성 2021. 1. 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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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륜구동, 전륜·4륜구동보다 눈에 약해
후륜 눈길탈출, 안전운전과 타이어 중요
윈터타이어, 눈꽃필 때부터 꽃필 때까지
지난 6일 저녁 갑자기 내린 폭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륜구동 자동차 [사진=독자 제공]
"트렁크에 눈 치울 '삽' 한 자루 넣어드릴까요"

10여년 전 갑자기 내린 눈에 미끄러진 차량들로 서울 시내에서 교통 대란이 일어났을 때다. 당시 눈길에 쩔쩔 매는 후륜구동 차량이 놀림거리가 됐다. 후륜구동 차량 구매자에게는 '제설용 삽'을 한자루씩 선물로 줘야 한다는 농담반 진담반 얘기가 나돌았다.

데자뷔처럼 6일 저녁 서울과 경기 일대에 기습적으로 내린 폭설에 교통 대란이 다시 발생했다. 시내 곳곳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차량들이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눈 쌓인 언덕을 오르지 못하거나 제어를 못한 차량들로 교통 정체가 벌어졌다. 비탈길이 많은 서울 강남 지역 도로가 마비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폭설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인 차량 상당수는 후륜구동을 채택했다. 강남 지역 도로가 폭설에 약한 까닭은 후륜구동 고급 세단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운전자가 눈길을 감당하지 못해 '억'소리 나는 후륜구동 스포츠카를 도로에 버려뒀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후륜구동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렉서스, 제네시스 등 프리미엄 브랜드가 선호한다. 고속주행 안정성, 승차감, 코너링 성능이 우수해서다.

반면 겨울이 되면 종종 몰매를 맞는다. 눈이 쌓이면 설설 기는 것도 모자라 쩔쩔 매는 모습을 보여서다. 조금만 가파른 언덕을 만나도 눈길에 미끄러진다.

코너를 돌 때는 더 위험하다. 앞바퀴는 움직이지만 뒤 바퀴는 앞으로 진행해 차체를 운전자 의지대로 다루기 어렵다. 미끄러운 곳에서는 손수레를 앞에서 끌 때보다는 뒤에서 밀 때 제어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더군다나 일반 타이어보다 주행성능이 우수하고 매끄럽지만 눈길에는 약한 초고성능(UHP) 타이어를 장착한 후륜구동 고급 차량이 많다.

스키 점프대를 올라가는 아우디 콰트로 차량 [사진 출처=아우디]
BMW·벤츠와 함께 빅3 프리미엄 브랜드였지만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아우디가 2010년대 초반 소비자 눈길을 사로잡고 판매 돌풍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도 후륜구동 고생담 때문이다.

서울에 눈이 내릴 때마다 아우디 차량은 후륜은 물론 전륜을 채택한 경쟁차종들보다 눈길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 눈길에서 덜 미끄러지는 4륜구동 시스템 '콰트로'를 장착해서다.

아우디 콰트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아우디 차량 판매가 증가했다. 탄력받은 아우디는 국내에서 '아이스 쇼'를 펼치는 도발적인 신차 출시 행사도 개최했다.

후륜구동을 주력으로 내세웠던 수입차 브랜드들도 군용차나 SUV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4륜구동에 주목했다. 4륜구동 고급 차량을 본격적으로 가져왔다. 4륜구동은 국내에서 '겨울 강차(强車)'의 첫 번째 조건이 됐다.

유럽과 일본에서도 4륜구동은 눈 덕분에 유명해졌다. 아우디는 37.5도 급경사로 이뤄진 스키 점프대를 A6 콰트로가 달려 올라가는 CF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본 브랜드 중 4륜구동 세단 강자인 스바루도 폭설이 잦은 홋카이도와 관서 지방에서 인기를 끌었다.

BMW 드라이빙센터 눈길 주행 체험 [사진 제공=BMW]
4륜구동 차량은 분명 겨울 강차다. 반대로 후륜구동 차량이 눈길에 약한 측면이 있다고 겨울 약차로 단정할 수 없다. 후륜구동은 잘못이 없다.

폭설이 자주 내리고 한파도 잦으며 벤츠와 BMW 차량이 많이 판매되는 유럽에서 후륜구동 때문에 교통 지옥으로 변했다는 소식은 그다지 들리지 않는다.

제설 작업이 비교적 원활히 이뤄지기 때문이다. 운전자들도 겨울이 오면 겨울용 타이어(윈터타이어, 스노타이어)나 스노 체인을 장착하는 데 익숙하다. 구동방식에 맞게 운전하는 방법도 안다.

국내에서 후륜구동이 몰매를 맞는 이유는 타이밍을 놓치고 땜질 처방식으로 이뤄진 제설 작업의 죄를 뒤집어 썼기 때문이다. 여기에 운전자의 방심이 결합돼 후륜구동이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됐다.

자동차 판매 딜러 책임도 있다. 후륜구동 차량을 팔 때 장점만 장황하게 설명할 뿐 소비자가 물어보지 않는 한 단점과 해결책을 알려주지 않는 딜러들이 많다.

차는 구동방식에 상관없이 관리를 소홀히 하는 운전자에게 고장이나 사고로 보복한다. 후륜구동 운전자는 차량 특성상 겨울에 보복당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뿐이다.

후륜구동 차량을 4륜구동 차량만큼 겨울 강차로 탈바꿈시킬 수는 없다. 대신 눈길에 좀 더 안전하게 만들 방법은 있다. 어렵지도 않다.

윈터타이어를 장착하면 된다. 삽을 트렁크에 넣고 다닐 필요를 없애준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에 따르면 눈길에서 시속 40㎞로 달리다 제동할 때 윈터타이어는 제동거리가 18.49m에 불과했다. 사계절용 타이어는 37.84m에 달했다. 빙판길 테스트(시속 20㎞에서 제동)에서도 윈터타이어는 사계절 타이어보다 제동거리가 14% 짧았다.

브리지스톤 코리아가 목동 실내 링크에서 실시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윈터타이어가 사계절 타이어보다 빙판길 제동거리가 30~40% 짧았다.

시속 20km로 주행했을 때 평균 제동거리는 사계절 타이어가 17.82m, 윈터타이어가 10.92m로 나타났다. 살얼음이 낀 도로 상태를 가정해 빙판에 물을 뿌린 뒤 실시한 실험에서도 윈터타이어 제동효과가 우수했다. 평균 제동거리는 사계절 타이어가 21.63m, 스노타이어는 15.3m를 기록했다.

윈터타이어는 2바퀴가 아니라 4바퀴 모두 교체해야 한다. 앞바퀴 두 개만 교체하면 앞바퀴 접지력은 증가하지만 뒷바퀴 접지력은 낮은 상태에 머무른다. 급격한 코너링 때 차선을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재규어 XJ 빙판 도로 테스트 장면 [사진 제공=재규어]
윈터타이어는 눈이 올 때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눈이 있건 없건 영하의 날씨로 접지력이 떨어질 때도 제 구실을 톡톡히 한다. 윈터타이어를 장착했다면 적어도 꽃샘추위가 있는 3월 초까지 장착해 두는 게 낫다.

물론 후륜이든 전륜이든 4륜이든, 윈터타이어든 사계절용 타이어든 눈길과 빙판길에서는 겸손하게 안전 운전해야 한다.

4륜구동에 윈터타이어를 달았더라도 방심하면 사고난다. 겨울에 눈길이나 빙판길에서 4륜구동을 뽐내며 과시 운전하다 사고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타이어 마모 상태도 살펴봐야 한다. 타이어 마모가 심하면 윈터타이어라도 눈길에서 제 역할을 못한다. 4륜구동도 소용없다.

무엇보다 구동방식에 상관없이 얼어붙은 도로에서는 안전 운전이 필수다. 앞차와 간격을 평소보다 더 길게 두고 가급적 앞차가 통과한 자국을 따라가야 한다.

가벼운 눈에서 타이어가 헛돌 때는 전진과 후진을 되풀이해서 자국을 만들고 바닥매트나 모래 등을 깔아 접지력을 높여준다.

눈길에서 차가 미끄러지면 핸들을 미끄러지는 방향으로 튼다. '스핀(spin)'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스노 체인은 눈길에서만 사용한다. 30~40km/h 이상 주행하면 체인이 손상된다. 바퀴집(휠하우스)이나 차체를 망가뜨린다.

스노타이어는 겨울부터 봄까지 장착하는 게 좋다. [사진 제공=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자동차시민연합은 염화칼슘으로 눈이 녹은 도로도 위험하다고 밝혔다. 도로에 뿌려진 염화칼슘 상당수는 제설용이 아닌 공업용이어서 용해 속도가 떨어지고 '왕 모래알' 효과로 제동 효과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후륜이든 4륜이든 눈이 내릴 때는 물론 제설된 이후에도 앞 차와 거리는 평소보다 2배 이상 길게, 속도는 절반 이하로 줄여 안전 운전해야 한다"며 "정비업체를 찾아 타이어 마모도 및 공기압, 배터리 등을 점검하고 차량의 특성을 파악하면 보다 안전하게 겨울을 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gistar@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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