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 처벌은 어쩌다 '재해기업 보호법'이 됐나

노지원 2021. 1. 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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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문턱을 넘었다.

유족들은 법사위 법안심사소위가 열릴 때마다 회의장 앞을 지키면서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을 만들라'고 촉구했지만, 정부안이 '가이드라인'처럼 잡힌 상황에서 이후 5번 열린 법안소위 심사는 뒷걸음질만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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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인과관계 추정 조항 삭제, 발주처·임대인 책임 제외
중기부 주장한 '5년 미만 사업장 제외' 포함해
정부 타협적 태도에다 재계 집요한 로비 작용
백혜련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왼쪽)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법안심사 1소위원회의실로 향하는 동안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 제정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문턱을 넘었다.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간사이자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혜련 의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면서 “하나의 법을 가지고 이렇게 오래도록 심사했던 것은 법사위 5년차지만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뜨겁고 재계의 반발이 많았기에 법안 심사 조항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았다.

여야가 서로 눈치만 보며 미루던 법안 심사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달 28일 정부가 고용노동부·법무부의 의견을 담은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부터였다.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달 11일부터 단식에 돌입한 김용균재단 이사장 김미숙씨 등 산업재해 희생자 유족들은 정부안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국회에 제출돼 있던 강은미 정의당 의원안, 박주민 민주당 의원안보다 한참 후퇴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경영계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맞붙었던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아예 삭제됐고, 발주처와 임대인도 책임 범위에서 제외했으며, 유예 사업장 기준도 대폭 완화했다. 유족들은 법사위 법안심사소위가 열릴 때마다 회의장 앞을 지키면서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을 만들라’고 촉구했지만, 정부안이 ‘가이드라인’처럼 잡힌 상황에서 이후 5번 열린 법안소위 심사는 뒷걸음질만 거듭했다.

■ 중대산업재해서 ‘5인 미만 사업장 배제’는 중기부의 ‘작품’

여기엔 정부의 타협적인 태도와 재계의 집요한 로비가 작용했다. 중대산업재해에서 ‘5명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기로 한 데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역할이 컸다. 지난 6일 법안심사소위에서도 강성천 중기부 차관은 “저희도 산업재해는 당연히 근절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이 법이 그대로 적용되면 음식점 배달원 사망사고도 똑같이 중대재해로 간주된다”며 소상공인 전면 배제를 수차례 주장했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의 “(소규모 업체에는) 산업재해 있어도 된다는 이야기냐”는 질문에도 강 차관은 “(적용 대상을) 5인 이상 사업체로 하는 것이 산업 현실을 감안한 합리적인 법 적용”이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아가 중기부는 ‘주 52시간 제도 도입’과 같이 300인 이상, 50∼299인, 50인 이하로 3단계 유예 조항을 넣어달라고 수차례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상공인 전격 배제가 결정되면서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7일 “원래 여야 발의안에도 없고 정부 의견서에도 없던 ‘5인 미만 사업장 제외’가 갑자기 들어왔다”며 “이게 박영선 중기부 장관 본인의 뜻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한 이유다.

■ 법안소위 회의장 떠나지 않았던 재계 관계자들

유족들뿐 아니라 법안소위가 열리는 회의장 인근은 재계 관계자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산재 사망 때 기업 책임자와 법인에 부과되는 처벌 수위가 대폭 완화된 것은 재계 요구 때문이었다. 경총은 경영책임자 처벌에서 “형벌은 하한선을 삭제하고 상한선만 명문화하자”고 꾸준히 요구해왔다.

이에 여야는 최종안에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를 사망해 이르게 했을 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기로 하고, 법인에도 책임을 묻는 양벌 규정에서도 벌금 하한선을 아예 없앴다. 경총은 또한 경영책임자 정의를 “대표이사 또는 이사 중 산업안전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관리하는 1인”으로 해달라고 요구해왔는데, 이날 합의된 법안에는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이 들어갔다.

■ “바닥 면적 줄여 법망 피하면 어떡하냐” 여당 의원 조차 우려했지만…

음식점·노래방·피시방·목욕탕 등 공중이용시설 사업장 면적이 1000㎡ 이하이거나 상시근로자 10인 미만을 둔 소상공인의 경우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기로 했다. 사업장 면적을 기준으로 법을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민주당 다수와 정부는 ‘1000㎡ 이하 배제’를 고집했다. 송기헌 민주당 의원은 “저는 소상공인들은 해당이 안 돼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이웃에 한분 한분의 일상생활이 소상공인의 삶이다. 이들이 일상생활 하면서 이런 과도한 위험에 관한 의무나 처벌규정의 부담을 지는 건 맞지 않는다”고 맞섰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도 “500㎡ 미만 업소가 92%”라며 “(500㎡로 정해진다면) 적어도 92%의 업주들은 안심할 수 있지 않나”라며 동조했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도 호응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바닥 면적은 상시근로자 수나 매출액과 달리 법망을 피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충분히 변경할 수 있다”며 “이걸 법률에 박는 순간 굉장히 많은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도 “990㎡로 맞추는 식으로 탈법적 행위가 많이 일어날 것 같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다수의 의견을 꺾지는 못했다.

노지원 이지혜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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