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의 문학으로] 옛글을 읽으며

최재봉 2021. 1. 7. 16: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재봉의 문학으로]

최재봉ㅣ책지성팀 선임기자

새해를 맞는 느낌이 이토록 무겁고 어수선한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백신에 관한 소문은 무성해도 코로나로 인한 불편과 불안은 여전하고, 정치사회적 혼란과 갈등은 해가 바뀌어도 가라앉을 줄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올해가 갑년이어서 한층 심란하고 뒤숭숭한 마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돌았음에도 세상사는 여전히 종잡기 어렵고 삶은 조금도 만만해지지 않는다.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때일수록 근본을 챙기라고 했던가. 인생과 세계의 이치를 설파한 옛사람들의 글에 자연 눈길이 간다. 어지럽고 답답한 연말연시에 마음을 의탁한 것은 중국 고전 입문서들이었다. 특히 두 권을 합쳐 2천쪽이 훌쩍 넘는 <고문진보>에서 적잖은 위안과 가르침을 얻었다.

<고문진보>는 대학 영문학과 학생들의 필독서인 <노턴 앤솔러지>의 중국판이라 할 법하다. 중국의 역대 명시와 명문장을 전집과 후집에 나누어 실은 이 책은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널리 보급되어 한문 문장 교과서처럼 읽혔다. 퇴계 이황에 따르면 당시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500~600번씩 읽고 주요한 문장은 암송하는 것이 기본이었다고 한다.

<고문진보> 전집은 학문을 권하는 글(勸學文·권학문) 일곱 편으로 시작한다. 송나라의 두 황제(진종, 인종)와 사마광, 왕안석, 백거이, 주희 등의 작품이다. 여기서 ‘학문’이란 학자들이 하는 깊은 연구라기보다는 누구나 책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공부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면 될 법하다. “가난한 자는 책 때문에 부유해지고,/ 부유한 사람은 책 때문에 귀해지며,/ 어리석은 자는 책으로 인해 어질어지고,/ 어진 사람은 책으로 인해 부귀를 얻네”라는 왕안석의 권유는 세속적인 느낌이 짙어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주자학의 창시자인 주희의 설득이 한결 솔깃하다. 역시 나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말하지 말라,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올해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해와 달은 무심히 흐를 뿐,/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오호라, 늙었구나!/ 이 누구의 허물인가.”

<고문진보>는 시문집임에도 중국의 유구한 역사와 숱한 인물이 명멸하는 대하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개중에는 의례적인 행사용 시 또는 군주나 관리의 성덕을 장황하게 칭송한 글도 없지 않지만, 누에 치는 아낙의 눈물을 헤아리고 땀 흘리는 농민을 연민하는 글들이 균형을 맞춘다. 만리장성을 쌓느라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것이 진나라 멸망의 원인이었다는 따끔한 비판이 있는가 하면, 유전자에 새겨진 듯 익숙한 풍경과 정서가 마음을 다독이기도 한다. “산이란 산에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이란 길엔 사람 자취 끊어졌네./ 외로운 배에 도롱이와 삿갓 쓴 늙은이,/ 홀로 낚시질, 차가운 강에는 눈만 내리고.”(유종원, ‘강에는 눈만 내리고’ 전문)가 그러하다.

“무릇 천지라는 것은/ 만물을 맞이하는 여관이요,/ 시간이라는 것은/ 긴 세월을 거쳐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덧없는 인생 꿈과 같으니,/ 즐긴다 하여도 얼마나 되겠는가?”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이라는 뜻으로 적선(謫仙)이라 일컬어진 이백의 ‘봄날 밤 도리원 연회에서 지은 시문의 서’ 도입부다. 특유의 도가적 관조와 호방함이 마음을 울린다. 그런데 이에 바로 이어지는 ‘형주 한자사께 올리는 글’의 결말부는 같은 이의 글이라 믿기 어렵도록 구차하고 비루해 보인다. “부디 미천한 저를 밀어주셔서/ 크게 한 번 칭찬하고 장식해 주시기 바라오니,/ 오직 공의 헤아림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자신을 중앙에 추천해 달라며 높은 자리에 있는 이에게 쓴 글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이백의 위선이라 치부할 일은 아니리라. 그보다는 인간의 양면성과 복잡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로 삼음이 마땅하겠다.

한가롭게 옛 책을 뒤적이노라니, 마스크에 눌린 호흡기처럼 답답하고 짜증나는 현실에서 한발 물러서 깊은 숨을 쉬는 듯한 느낌이다. 더 늙고 어리석어지기 전에 틈나는 대로 글을 익히고 공구하기를 새해의 바람으로 삼는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즐거움을 위해. 오류선생 도연명처럼.

“독서를 좋아하지만/ 깊은 해석을 구하지는 않고/ 매번 뜻이 맞는 곳이 있으면/ 기꺼이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도연명, ‘오류선생전’ 부분)

bo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