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민주주의 수출국 미국의 수모..'의사당 난입·점거' 난장판은 왜 일어났나?

김양순 2021. 1. 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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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전세계에서 최강대국으로 꼽혀왔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그렇지요. 냉전 시대에는 러시아와 맞서면서도, 최근에는 중국과 경제적으로 부딪히면서도 여전히 미국은 최강대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 민주주의를 세계에 수출해 왔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있습니다. 미국인들의 표현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 라는 말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도 그같은 자부심의 발로입니다.

■뭐? 바이든이 차기 대통령이 아니야?

그런데 그런 미국이 아직도 대통령 당선인을 "공식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것이 11월 3일, 이미 두 달 이상이 지났고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흘 가량 남은 상황인데도 말이죠.

대중이 트럼프의 승리를 외치며 선거 부정을 외치는 상황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 상원과 하원의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부정 주장에 동조하며, 각 주의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맞서고 있는 장면은 상당히 의아합니다.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에서 국민이 행한 투표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 적법하지 못했다 라고 따지며 의원들이 나서서 대통령 당선 인증 절차를 막아서는 모습은 고개를 갸웃하게 합니다.

때문에 미국 언론은 6일 미국의 상원과 하원이 벌이는 합동회의를 '운명의 날'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로 뽑힌 대리인들이죠, 상원과 하원의 의원들이 국민들을 대신해 대통령 선거 결과를 주별로 집계한 뒤 최종적으로 인정하는 절차를 '공식 인증' 으로 본 겁니다. 상하원의 공식 인증 이후에는 트럼프 대통령도 더 이상 부정선거에 대한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높이지 못할 거라고 본 거죠.

그런데 역사적 날이 될 오늘(6일)은 '인증의 날'이 아니라 폭력의 날, 미국 민주주의 역사상 치욕의 날이 돼버렸습니다.

■ 불길에 기름 부은 트럼프

상하원 합동회의 주재자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펜스는 위대하다"고 추켜세우며 "펜스가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거 대놓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도 결집해있는데요. '프라우드 보이즈'를 위시한 미국 내 우익 단체들은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팻말을 들고 어제부터 1박 2일 동안 워싱턴 시내를 점거하고 집회를 벌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오늘 상하원 합동회의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집회에 나서서 연설하자 크게 고무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깃발을 들고 회의가 진행 중인 미 의회 건물 앞으로 몰려가더니, 몸싸움 몇 번에 의회 안으로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의회 경찰은 수적으로도 당해낼 수 없었겠지만, 총기 발포 등 적극적 대응 또한 없었습니다. 지난해 경찰의 과잉 발포와 진압으로 인한 흑인들의 사망과 관련해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집회가 미 전역에 있었던 걸 상기해보면 경찰의 대응이 이해가 안가겠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기본적으로 총기를 소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경찰이 총기로 잘못 대응했다가는 엄청난 총격이 시작될 수도 있는 만큼 경찰도 함부로 총을 꺼내들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폭도가 된 트럼프 시위대

막상 의사당에 들어가고 나니, 아드레날린이 넘쳐흘렀을까요. 트럼프 지지자들은 순식간에 폭도로 돌변해 창문을 깨고 상원과 하원 의회장을 모두 점거했습니다. 총기로 무장한 경찰과 바리케이드도 소용 없었습니다. 벽을 타고 기어올라가 발코니를 통해 의회장으로 들어가는가 하면,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방에 들어가서는 떡하니 발을 책상 위에 올리고 "접수했다"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공화당원들도 "이건 비열한 짓이다. 우리의 미국은 이렇지 않다"며 비난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어땠을까요? 뒤늦게 트위터에 "평화를 지키자"고 올리긴 했습니다만, 폭력을 엄단해야 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운명의 날은 망신의 날이 되고... 그래서 바이든은 대통령이 되는 건가?

트럼프는 연설에서 "오늘이 끝이 아닙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함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수호하고 보존하는 것에 힘쓸 겁니다."라며 "국민"을 지속적으로 들먹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대선 투표에 참여했었던 이들도 "국민"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알지만 "나의 국민"은 아니라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미국의 민주주의와 공권력이 땅에 떨어지는 걸 세계가 목도했지만, 그래도 민주주의의 수레는 굴러간다는 겁니다.

비록 중단되긴 했지만, 상하원 합동의회는 오후 8시 다시 속개돼 투표 인증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시위대가 밀려드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의회 직원이 기민하게도 전국 각 주에서 모아온 투표 용지부터 안전하게 챙겨놨다고 합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절차의 민주주의를 다시금 복원하려는 모습은 보이고 있습니다. 난장판이 어떻게 정리될 지는 꽤 오랫동안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김양순 기자 (ysoo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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