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사당 난입한 시위대가 보여준 '트럼피즘'

박다해 2021. 1. 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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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겨레21> 1338호로 다시 읽는 트럼프의 유산과 지지 기반 분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6일(현지시각) 워싱턴DC 연방 의회의사당에 난입해 4시간여 폭력을 휘두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날 의사당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승리를 확정하는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렸는데, 이 시간에 맞춰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무단으로 진입한 겁니다. 이들은 상원 회의장을 점령하고 의장석에 앉는 등 난동을 부렸고,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며 한 여성이 총에 맞아 숨지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의사당에 있는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있을 것을 요청한다”며 “폭력 금지! 기억하라, 우리는 법과 질서의 당이다”라고 밝혔지만, 앞서 이날 낮 12시 지지자들이 모인 백악관 울타리 앞 엘립스 공원에서 ‘선거 사기’를 주장하는 연설을 하며 이같은 시위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한겨레21> 제1338호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했어도, 그의 정치적 유산이 계속 미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리란 전망이 우세하단 점을 짚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민주주의에 끼친 영향과 그의 지지기반을 분석한 기사를 소개합니다._편집자 주
5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트럼프와 성조기가 합성된 깃발을 들고 워싱턴 국회의사당으로 몰려들고 있다. 워싱턴/ AFP 연합뉴스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도, 승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겼다. 압승이었다. 우리는 도둑질을 멈추게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각) 백악관 인근 엘립스 공원에서 열린 지지자 집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이처럼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든든한 지지층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비판자에겐 ‘공감능력 부재, 독불장군, 천박한 속물’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낙인찍혔지만, 지지자에겐 그야말로 사이다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죠.

많은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끝나더라도, 그가 남긴 영향은 미국 정치와 사회 전반에 어른거릴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트럼프의 유령, 이른바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입니다. 

‘트럼피즘’은 미국 사회에 어떤 유산을 남기게 될까요? 그가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던 라틴계 미국 유권자로부터도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겨레21> 제1338호는 아래와 같이 분석했습니다.

<한겨레21> 1338호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남긴 유산 6가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 시위대가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서쪽 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상ㆍ하원은 이날 합동회의를 개최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인증할 예정이었으나 시위대가 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로 회의가 전격 중단됐다. 워싱턴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유산 ① 대선 불복

먼저, 트럼프 본인이 2020년 재선에 실패하더라도 2024년 대선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에게 졌지만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가 얻은 최소 7235만 표(47.4%) 역시 바이든에 이어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많다. 이전까지 최다 득표 기록은 2008년 대선 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6946만 표였다. 이번 대선에서 승자와 패자 모두 처음으로 7천만 표를 넘기는 신기록을 세운 것은, 투표율(66.8%)이 1900년 선거 이후 120년 만에 최고였던 데서 힘입은 바 크다. 그만큼 이번 대선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이 컸다. 차기 정부의 선택을 놓고 미국 시민들은 생각이 팽팽하게 갈렸고, 그 뜻을 적극 표시했다.

트럼프에 대한 만만치 않은 지지세는 그가 대선 불복을 선언하고 버티는 뒷배가 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020년 11월10일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당선자의 정권인수팀과 협력을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제2기 트럼프 행정부로 순조로운 전환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권을 순순히 내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유산 ② 자기중심적 권력 의지

미국 안팎의 정치권뿐 아니라 학계와 언론계의 많은 전문가가 트럼프는 가더라도 트럼피즘의 ‘잔불’은 한동안 꺼지지 않고 남을 것이라 보는 쪽에 무게를 싣는다. 지금으로선 공화당에서 트럼프의 후계자, 또는 대안적 인물이 뚜렷하지 않다. 선호도와 지지 여부를 떠나, 트럼프만큼 강력한 이미지와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없다.

‘트럼피즘’이란 용어는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의 독특하고도 자기중심적인 언행과 세계관, 그에 대한 대중적 지지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생겨났다. 정치적 우파 보수주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배타적 민족주의, 반세계주의, 노골적인 친기업 시장주의와 규제 반대, 이민자 수용 반대, 힘의 논리 신봉 등이 특징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미국의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 비백인과 외국인 이주자 비율이 갈수록 늘어나는 인구 구성비 변화, 그에 따른 미국 주류 백인의 상실감과 분노, 미래에 대한 불안이 두텁게 자리잡고 있다.

트럼프의 유산 ③ 희생양 찾기

미국 사회의 중산층 위기는 최근 몇십 년간 꾸준히 악화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20년 가까이 지속해온 전쟁, 그리고 신자유주의 거품경제가 폭발한 2008년 금융위기는 결정적이었다. 사회의 중추인 중산층이 무너지고 보통 사람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지만, 금융자본가와 권력가 등 상위 극소수 기득권층이 부의 90%를 차지하고 낙수효과조차 사라졌다.

보수 성향 백인 중산층과 쇠락한 전통산업 노동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알고 싶었고 누군가 바로잡아주기를 갈망했다. 희생양이 필요했다. 트럼프는 미국 내 ‘좌파 이념’과 이주자, 외국인에게로 화살을 돌리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다. 박탈감과 상대적 소외감 속에 과거 호시절을 그리던 이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미국 정치권이 갈수록 부유한 소수 엘리트 정치인들 손에 독점되며 서민 삶에서 멀어지는 흐름도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의 득세에 한몫했다. 그들에게 정치적 올바름이나 이상주의적 가치를 강조하는 목소리는 설득력이 없었다. 그럴수록 트럼프 지지와 반대의 목소리는 더욱 뚜렷하게 갈렸다.

b미 하원의장 사무실 점거한 트럼프 지지 시위대/bbr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시위대 한 명이 6일(현지시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사무실까지 들어와 의자에 앉아 발을 책상 위에 올리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사당의 시위대 점거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의회는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인증할 예정이었으나 의사당 난입 사태로 상ㆍ하원 합동회의가 전격 중단됐다. 워싱턴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유산 ④ 관용 없는 사회

미국 사회의 양극화는 사회·경제 분야뿐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도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따르면, 1960년 미 국민을 상대로 “자녀가 상대 정당 지지자와 결혼한다면 기분이 어떨지” 묻는 설문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 4%, 공화당 지지자 5%만 “언짢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세기 뒤인 2010년 같은 설문조사에선 민주당 지지자 33%, 공화당 지지자 49%가 “다소 혹은 상당히 불쾌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대선이 있었던 2016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선 공화당 지지자 49%, 민주당 지지자 55%가 상대 정당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트럼프의 유산 ⑤ 두 개의 나라

2020년11월8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의 절대적 리더십은 미국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세계에도 끔찍한 본보기를 남겼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 미국은 지역과 계급으로 나뉘는 두 개의 나라가 됐다”며 “대다수 선진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새로운 글로벌 경제 거점을 형성한 번영하고 진보적인 대도시 지역의 지식노동자와 시골 지역, 쇠락한 산업 도시들의 보수적이고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주민들 사이에 균열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유산 ⑥ 유사 파시즘

11월8일 미국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미국의 민주주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트럼피즘은 2016년 대선 당시보다 더 성장했을 뿐 아니라 더 다양하게 분화했다”고 경고했다. 일부에선 트럼피즘을 ‘유사 파시즘’ 혹은 ‘네오(신종) 파시즘’으로 보기도 한다.

그가 군사주의적 팽창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것만 빼고는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에너지·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파시즘>, 로버트 팩스턴)란 ‘파시즘’의 정의와 대체로 일치한다.

*전문 보러가기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남긴 유산 6가지-‘900 파운드 고릴라’ 트럼프가 망가뜨린 미국>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49488.html

(조일준 기자)

부자의 공화당, 노동자의 민주당? 공식 깬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2020년 대선 결과 인증 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의회의 선거인단 투표 결과 인증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의회로 행진하기 전 지지 연설에서 \

진보세력 싫어하는 라틴계 유권자

2016년 플로리다에서 48.6%의 표를 얻어 힐러리를 1.2%포인트 차로 눌렀던 트럼프는 (2020년 11월12일 기준) 51.2%를 득표하면서 바이든과의 차이를 3.4%포인트로 오히려 더 크게 벌렸다.

단순한 득표수보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내용이다. 트럼프에게 플로리다를 선물한 유권자가 민주당 지지 기반이던 라틴계라는 사실이다. 2020년 선거에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전국에서 많은 라틴계 유권자가 공화당 지지로 돌아섰다.

‘성공한 비즈니스맨’과 ‘마초적 남성’이란 투사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사실은, 트럼프가 라틴계 불법 이민자를 “깡패, 성폭행범들”이라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데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이 지난 4년 동안 더 늘었다는 것이다.

왜일까? 먼저 라틴계 미국인 사회는 단일하지 않다. 일찍 미국으로 이주, 정착해서 미국 사회에 동화된 사람부터 갓 이민 와서 영어를 쓰지 못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상당수 라틴계가 백인을 준거집단으로 한다는 점에서 흑인 유권자와는 성격이 크게 다르고, 이들에게는 친기업적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특히 남성들은 블루칼라(육체 노동자)여도 아메리칸드림을 가졌고, 트럼프가 투사하는 ‘성공한 비즈니스맨’ ‘마초적 남성’이라는 이미지(트럼프는 선거 유세 때 빌리지피플의 노래 <마초맨>으로 분위기를 돋운다)를 좋아한다. 이들에게 분배를 강조하는 민주당의 경제정책은 별 매력이 없고, 여성의 권리를 비롯한 ‘사회적 진보’ 메시지 역시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라틴계 유권자가 아직 대다수는 아니지만 늘고 있고, 트럼프 선거운동본부는 이들을 겨냥해 진보세력을 공격하는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확산했다.

제2의 트럼프 키워낼 ‘극심한 양극화’

일부에선 양당의 지지 기반이 구조적으로 재편되는 ‘재정렬’(Realignment) 현상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1960년대에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미국 정치의 재정렬은 우리에게 익숙한 ‘부자들의 공화당, 노동자들의 민주당’이란 공식을 만들어냈는데, 트럼프 등장 이후 그 공식은 유효하지 않게 됐다.

물론 지나친 해석일 수도 있다. 역사적인 돌연변이처럼 보이는 트럼프라는 변수가 없었어도 이런 변화가 가능했겠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다. 앞으로도 이 구도가 반복될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트럼프가 사라져도 그를 탄생시킨 전제조건은 남는다. 소셜미디어와 가짜뉴스, 이들을 활용한 포퓰리즘, 무엇보다 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었던 전통산업의 몰락과 거대 테크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된 산업구조가 낳은 극심한 양극화는 제2, 제3의 트럼프를 키워내는 비옥한 토양이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많은 국가가 이미 비슷한 환경을 가졌고,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미국은 그저 이 모든 요소가 모여 ‘퍼펙트 스톰’(둘 이상의 악재가 동시에 일어나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선망국(先亡國)이었는지 모른다.

*전문 보러가기

<부자의 공화당, 노동자의 민주당? 공식 깬 트럼프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던 라틴계 미국 유권자는 왜 트럼프와 공화당으로 돌아섰나>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49493.html

(뉴저지(미국)=박상현 사단법인 코드 이사)

정리=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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