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Special Interview] 탬파베이 레이스 최지만
발자국을 남기며
힘든 한 해였다. 서로의 거리는 멀어졌고, 한숨은 깊어져 갔다.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었다. 메이저리그는 초유의 60경기 미니 시즌을 보냈다. KBO리그 144경기가 모두 치러진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기적 같은 첫걸음도 있었다. 118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야수가 월드시리즈에 출전했다. 첫 안타, 첫 득점. 며칠간 그가 세운 모든 기록 앞에 처음이 붙었다. 이역만리에서 들려온 소식에, 사람들은 아침부터 야구 중계를 틀었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조예은 Location 뉴에라 명동점
1년 만이에요. 한국에선 <더그아웃 매거진>과 처음 만나네요. (12월 10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탬파베이 레이스 최지만입니다. 언제 봐도 반갑네요.
이젠 인터뷰 경험도 많을 텐데, 여전히 카메라 앞에선 많이 떨리나요?
지금도 떨립니다.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성격 때문인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고 자주 보는 잡지에서 인터뷰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최근에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귀국해서 자가격리를 했어요. 지금은 조금씩 가족 행사에 참석하기도 하고 모교에 다녀오기도 해요.
달라진 인기는 실감하나요?
아쉽게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많이 못 알아보세요.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웃음)
며칠 전에는 고향인 인천광역시에 마스크도 기부했어요.
인천광역시 동구청에서 도움을 요청하셨어요. 그리고 고향이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만 자가격리를 두 번이나 한 셈이네요. 힘들진 않았나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미국에서도 항상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한 채 지냈거든요. 이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어렵지 않았어요. 어머니와 같이 자가격리를 하기도 했고요. 강아지와 함께 편하게 잘 지냈습니다.
#아슬아슬한 시즌
올 시즌은 코로나19 때문에 시작부터 힘들었을 텐데요.
일차적으로 밸런스가 많이 무너졌어요. 심리적으로도 아주 불안했죠.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찮았으니까요. 경기를 진행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스프링 트레이닝이 중단되고 귀국했을 때, 올 시즌은 뛰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운이 좋게 경기를 뛸 수 있어서 월드시리즈까지 갔죠.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됐네요.
개막이 미뤄지면서 한국에서 훈련했다고 들었어요.
네. 형이 하는 아카데미에서 운동했어요. 부족하면 학교에서도 했고요. SK 와이번스에서 훈련 참가 제의를 해주셨지만, 폐가 될까 봐 거절했어요.
코로나19 시대 팬 서비스로 미리 사인한 공을 던져주겠다는 인터뷰를 했어요.
스프링 트레이닝 때 그런 제안을 했는데 팀에서 흔쾌히 받아들였어요. 팬에게 공을 받는 건 조심스러우니, 아예 사인해서 드리면 되겠다 싶었죠. (실제로 많이 던져봤나요?) 네. 많습니다. 저랑 케빈 키어마이어, 오스틴 메도우스 선수가 가장 많이 던져봤어요. 제가 공을 제일 많이 던졌죠. 스프링 트레이닝 때 운동보다 사인을 더 많이 했어요. (웃음)
시즌 전에 스위치히터 훈련을 한 게 포착됐어요. 7월 26일에 우타석에서 홈런을 기록했죠?
웃기면서도 재미있는 추억이에요. 첫 타석에서 무기력하게 삼진을 당했어요. 두 번째 타석에 들어갈 땐 점수 차가 커서 공을 지켜봐야 하나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배트가 나왔죠. 몸이 반응한 거예요. 태어나서 야구를 시작하고 그렇게 제 타구가 빠르게 날아간 건 처음 봤어요. 그래서 ‘이야, 나도 타고난 게 있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 뒤로는 좌타석에 전념하겠다고 밝혔어요. 우타석에서 타격할 때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나요?
팀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그만두는 게 맞는 거로 생각했어요. 우타석이 편했으면 계속 쳤겠지만, 밸런스가 많이 무너지는 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원래 타격 코치님께서 스위치히터를 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그 부분 때문에 감독님이나 다른 코치진과도 많이 싸운 거로 알고 있어요.
플래툰 시스템 속에서 기회가 많이 주어지진 않아요. 매 타석이 긴장될 법도 한데 어떤가요?
그런 부담감은 있어요. 적은 기회 안에서 제 능력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제 성적을 보면 선발 투수 상대로는 타율 3할이 넘어요. 그런데 강속구를 던지는 중간 투수를 상대로는 좋지 않죠. 그런데 그건 저뿐 아니라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예요. 경기 중간에 교체하기보다는 조금 더 기회를 주셨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죠.
그래서 더욱 시즌 말미의 햄스트링 부상이 아쉬웠을 것 같아요.
다치기 한 달 전부터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참고 계속 뛰었죠. 팀에 1루수가 없었거든요. 코치진은 포스트시즌이 있으니 쉬어도 된다고 했는데 제가 미련했죠. 결국, 경기를 더 뛰지 못하고 그대로 시즌이 끝나서 너무 아쉬웠어요.
#탬파베이의 분위기 메이커
그래도 포스트시즌부터는 출전했어요. 게릿 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올 한 해 제가 부진할 때마다 콜 선수가 고맙게도 한 번씩 홈런을 치게 해줬죠.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웃음) (공략 비법이 있을까요?) 미세하게 글러브에 문제가 있어요. 그리고 공이 나오는 궤도와 관련된 부분도 있고요. 자세한 부분은 비밀입니다. 이 인터뷰가 나오면 분명 미국에서도 볼 텐데, 그걸 알고 고칠 수도 있잖아요.
선수들도 물어보지 않나요?
탬파베이 선수들도 제게 물어보진 않아요. 물어보지 않으니까 따로 말을 해주진 않았죠. 질문하면 어느 정도 도움은 줄 수 있는데. (웃음)
주자 1, 3루 상황에서 고의사구로 나갔던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타석에 들어갈 때 뉴욕 양키스 더그아웃이 보였어요. 애런 존 분 감독이 손가락 네 개를 펴더라고요. 제가 그걸 보고 장난으로 ‘나 나가는 거냐’라는 제스처를 취했죠. 야구는 심리전이니까요. 그때 저를 거를 수도 있다고 느꼈어요.
기분이 정말 좋았겠네요.
투 볼이 되는 순간 너무 좋았죠. 저를 인정해준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최고 투수가 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거른다는 게 좀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디비전 시리즈에서 사사구를 많이 얻어냈어요.
포스트시즌에선 모든 선수가 집중해야 해요. 어떻게든 팀을 위해서 출루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죠. 그래서 그 부분이 돋보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심판진의 성향 때문에 존을 더 좁게 본 것도 있어요. 우리 팀에게 불리한 판정이 나오는 걸 많이 느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노력했죠.
강팀을 꺾고 올라간 만큼 팀 분위기가 아주 뜨거웠겠어요.
경기가 끝나고 ‘New York, New York’을 불렀어요. 너무 좋았죠. 저는 같은 지구의 양키스만 이겨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최저 연봉 팀이 최고 연봉 팀을 꺾으면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을 테니까요.
디비전 시리즈가 끝나고 뒤풀이에서 휴지통을 밟았어요.
지난해 디비전 시리즈에서 우리 팀이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졌어요. 그런데 뒤늦게 사인 훔치기가 밝혀졌어요. 그리고 뒤풀이 전날 카를로스 코레아 선수가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저도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휴지통을 밟았죠.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에서 홈런을 치고 한 ‘빠던’도 화제였어요.
지고 있는 상황에서 친 홈런이었어요. 홈런을 치면 넘어갔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데, 이 타구는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배트 플립을 선호하진 않지만, 분위기를 올리기 위해 했어요.
#월드시리즈의 한국인
한국인 야수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어요. 기분이 좀 남달랐겠어요.
월드시리즈는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계속 강팀을 만나야 했거든요. 휴스턴을 꺾고 나선 너무 힘들어서 파티도 못 하고 바로 집으로 왔어요. 그 뒤에 제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첫 한국 타자라는 걸 알았어요. 그걸 깨달은 뒤로 조금씩 긴장이 되더라고요. 저보다 잘하는 선수도 은퇴할 때까지 월드시리즈에 가지 못할 수 있거든요. 말 그대로 선택받은 거죠.
부담감도 있었나요?
어떻게 보면 월드시리즈 무대를 빨리 밟은 셈이에요. 그래서 더 좋은 성적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죠. 그 영향 때문에 월드시리즈에서 더 부진했다고 생각해요.
6차전에 1번 타자로 출장하면서 월드시리즈 역사상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리드오프라는 기록을 썼어요.
메이저리그는 모든 걸 최초로 만들어요. (웃음) 좋긴 한데 좀 민망하기도 하죠. 경기 전날 제가 1번 타자로 출전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1번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드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팀에서는 이기기 위한 최고의 라인업을 꾸리고자 했고, 그 일환이라면 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1루에서 보여준 수비가 인상적이었어요.
월드시리즈에 갔기 때문에 더 알려진 것도 있어요. 다리 찢기가 많이 화제가 됐더라고요. 저도 그 영상을 많이 봤어요. 이렇게 다리가 찢어지는지 몰랐거든요. (수비에 자신감을 느끼나 봐요.) 수비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는 그 부분을 항상 부정했거든요. 제가 1루수로서 공을 잡아주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수비를 보여줄 수 있는 유연성의 비결은 뭘까요?
어느 정도는 타고났어요. 그리고 유연성 운동을 꾸준히 하죠. 수술을 많이 해서 다리 길이가 안 맞아요. 골반 수술을 할 때 성장판에 철심을 넣었거든요. 그래서 허리 균형도 무너졌죠. 점차 몸이 굳어가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필라테스를 했어요. 좋은 운동이라 매년 비시즌에 하고 있습니다.
팀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는 시즌이겠네요.
코로나19의 위험 속에서 시즌을 치렀고, 실제로 그 위험을 겪은 선수도 있어요. 내년 연봉도 이미 조정된 상태였고요. 무엇보다 시즌이 짧아서 너무 아쉬웠어요. 밸런스가 정말 좋았는데 개막이 연기되면서 다시 준비해야 했죠. 힘들었어요. 그래도 월드시리즈에 오른 건 정말 큰 의미예요. 언제 어떻게 가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요. 최저 연봉팀으로서의 자부심도 있고요. 올해는 아쉽게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서 우승하고 싶어요. 남은 숙제를 해결해야죠.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
지난 시즌엔 본인에게 100점을 줬어요. 이번 시즌은 어떤가요?
45점 정도요. 일단 경기 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라니까요. 코로나19가 점수를 많이 깎았고, 자기 관리를 못 한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다쳤고요. 그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요새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귀국한 이유의 반쯤도 그 때문이고요.
연봉 조정이 기대되네요.
저도 궁금합니다. (웃음) 저도 얼마를 받을지는 모르겠네요. (희망 금액은요?) 코로나19가 없었다면 더 큰 액수를 기대했겠지만, 지금은 다들 힘든 시기잖아요. 저도 적절한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팀에 쓰쓰고 요시토모가 들어왔어요.
쓰쓰고 선수와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어떻게 보면 국제 관계나 정서상 문제도 있고, 팀 내에서 경쟁도 있어요. 그렇지만 아시아 선수가 타지에서 혼자 있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쓰쓰고 선수가 처음 왔을 때의 모습이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미국에 왔을 적 모습 같더라고요. 그래서 더 많이 말을 걸었어요. 통역이 필요한 순간에도 대신 제가 도와주겠다고 말한 적도 있고요. 한 번은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가 미국 생활 선배기 때문에 질문에 답도 많이 해줬죠.
특히 이번 스토브리그에선 김하성, 나성범 등 많은 KBO리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두 선수 모두 좋은 선수라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올해 상황이 좋지 않잖아요. 원하는 조건을 받을 수 있을지, 메이저리그에 올 수 있을지 말하는 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메이저리그는 꿈이잖아요. 원하는 금액을 제시받지 못했을 때 ‘오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저 또한 몸값이 곧 스펙이자 실력이고, 경기에 뛸 수 있는 자격이라는 걸 알고 있거든요.
미국 생활 선배로서 팁이 있을까요?
중요한 건 적응이죠. 쓰쓰고 선수도 그렇고 모든 아시아 선수들이 적응을 못 해서 많이 힘들어해요. 영어 실력이 부족해도 우선 말을 거는 게 중요해요. 저도 영어는 잘하지 못하지만 다른 선수들과 재미있게 놀아요. (실전 영어에 강한가요?) 영어를 친구들에게 배워서 그래요. 감독님이나 동료와는 곧잘 대화를 나누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쓰는 언어는 부족해요. 그래서 인터뷰에선 영어로 별로 말하지 않죠.
한국에서 다른 메이저리거와도 만났나요?
모든 분이 바쁘기도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조심스러워요. (류)현진이 형도 아이가 있어서 나오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김광현 선수와는 따로 친분이 없어요. 이런 부분이 확실히 아쉬워요. (어떤 점일까요?) 남아메리카 출신 선수들은 연말에 함께 모여서 파티를 해요. 그런 자리에서 많은 조언이 나오거든요. 일단 메이저리그에 한국인이 많지도 않지만, 다들 가정도 있어서 모이기 어려워요. 다른 나라에서 한국말로 대화하면 얼마나 재밌겠어요. 2016년에는 이대호 선배나 김현수, 박병호 선배가 메이저리그에 있었거든요. 너무 즐거웠어요. 타석에 들어서면 장난삼아 한국어로 “바깥쪽!” 하고 외치기도 하고요. 그런 추억이 있죠. 그래서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비시즌 동안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일단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되고 있어서 운동할 곳이 마땅히 없어요. 그래서 운동할 곳을 우선 찾고 있어요. 그리고 병원도 다니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운동에 전념해야죠.
내년 시즌 목표가 있을까요?
장난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제 가장 큰 목표는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이에요. 그리고 다음 시즌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다치지 않는 것이죠. 그래야 모든 경기를 뛸 수 있고, 좋은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너무 재미없나요?
팀의 목표인 우승도 있잖아요.
우승이요? 그런데 우리 팀이 우승할 수 있을까요? (웃음)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갔거든요. (그래도 올해 경험이 있잖아요.) 그렇죠. 탬파베이가 좋은 선수가 나갔다고 그렇게 쉽게 지는 팀도 아니에요. 워낙 도깨비 같은 팀이거든요. 마이너리그에도 좋은 선수가 많고요. 일단 양키스만 잡는 게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감사 인사 부탁해요.
올 한 해는 힘든 시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랬을 겁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백신이 나올 거고, 정상화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야구를 경기장에서 보실 수 있어요. 그때까지 함께 잘 참았으면 좋겠습니다. 올 한 해도 많은 응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내년에는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더그아웃 매거진 117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1년 117호(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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