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한-이란 관계 어쩌다..'동결 70억弗' 놓고 1년만에 급랭

윤태형 기자 2021. 1. 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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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수출대금 동결해제 대통령까지 나서 집요하게 요구
정부 '미온대응' 은행 '제재불안'..對이란 정책 변화 해석도
아랍에미리트(UAE)로 향하던 한국 국적 유조선이 걸프만에 오염물질을 배출한 혐의로 이란 해군에 적발돼 억류됐다고 4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란 국영언론은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이 걸프만을 화학물질로 오염시킨 혐의로 한국 선박을 나포했다"고 전했다. 이란 타스님통신은 현재 억류된 한국 국적 선박의 선원들이 한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등 국적이라고 밝히며 현재 이란 항구도시 반다르 압바스에 구금돼 있다고 전했다. © AFP=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윤태형 기자 = 한때 우리 대(對) 중동 외교에서 핵심국가로 우호관계를 이어오던 이란과의 관계가 최근 들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이란이 공해상에서 우리 선박을 나포하는 사건이 발생한 건 이란 측이 주장하는 '기술적 문제'라기 보다 국내에 동결된 이란의 원유수출대금 70억 달러 놓고 그 간의 양국 간 갈등이 일정 수위를 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962년 우리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은 이란은 한때 우리나라의 중동 3위의 수출시장이고, 이란으로선 한국이 4대 교역국이었다. 특히 이란 산 원유가 우리나라 전체 원유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 이란은 우리 자원 전략에 있어 핵심 국가였다. 이 때문에 이란이 반미·친북 국가임에도 양국 간 경제·문화 교류는 꾸준히 이어졌다.

지난 2010년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양국 간 직접적인 금융거래가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지만, 양국은 원화결제시스템을 도입해 교역을 이어나갔다. 이후 미국의 대이란 제재 강화로 양국 간 교역량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5월 이란을 방문해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한-이란 포괄적 파트십'을 맺고 경제·문화·교육·관광 부문에서의 양국 협력을 포괄적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2018년 5월 이란 핵합의(JCPOA)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한-이란 양국 관계에 불똥이 튀었다.

미국은 지난 2012년 국제 달러 금융거래 시스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이란중앙은행 등 30개 금융기관을 퇴출시킨데 더해서 2018년에는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렸고, 2019년 제재를 강화하면서 한국과 이란 간 교역·금융거래는 사실상 중단됐다.

그 결과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등 국내은행의 이란중앙은행 원화계좌에 이란 산 석유 수입대금 70억 달러가 동결된 채 그대로 남아있게 됐다.

지난해 4월 IBK기업은행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와 관련해 미 사법당국과 8600만 달러의 벌금에 합의하고 2년간 기소 유예처분을 받으면서 국내 시중은행들도 대이란 거래에 쉽게 나설 수 없는 처지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며 미국이 유엔의 이란 제재 복원을 일방 선언한 것과 관련해 맞대응을 예고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반면 이란 측은 한국이 동결된 원유수출 대금을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지난 2019년 11월 이란 외교부는 유정현 대사를 초치해 동결 대금 70억 달러 해결을 요구한데 이어, 지난해 6월에는 "한국 측이 원유수출 대금을 상환하지 않고 미국의 허락만 기다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란중앙은행 총재도 같은 달 10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원유수출대금 동결 해제를 촉구한데 이어 이틀 뒤에는 마침내 로하니 대통령까지 나섰다.

로하니 대통령은 "한국이 이란에 대해 우리 중앙은행 자금으로 기본재와 의약품, 인도주의적 물품을 구매하는 것을 금지한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한국 정부가 가능한 한 빨리 이 조치를 해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로하니 대통령 발언 직후 이란 정부는 자국 자산동결 해결에 미온적인 한국 정부를 상대로 "모든 법적·외교적·정치적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경고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한국 선박에 대한 나포 가능성이 제기됐다.

결국 지난해 7월12일 이란 외무부가 "워싱턴과 서울은 주인과 하인 관계"라고 원색 비난하며 원유대금을 갚지 않으면 국제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경고하자, 우리 외교부는 주한이란 대사를 초치해 관련 발언에 대해 엄중 항의했다.

24일 오전 부산 남구 부산작전기지에서 '청해부대 33진 최영함(4400톤급)이 출항을 하고 있다. (해군작전사령부 제공) 2020.9.24/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지난해 초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연합에 한국이 참가하는 문제를 놓고 양국이 신경전을 벌였다. 우리 정부가 호르무즈 연합 참가 대신 청해부대의 활동영역을 호르무즈 일대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논란이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이 과정에서 주한이란대사가 "한국이 파병할 경우 단교까지도 고려할 정도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언급해 우리 정부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아울러 지난해 4월 이란의 한국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진단장비 구입 요청이 불발되면서 이란 측이 반발하는 사건도 있었다. 우리은행이 미국의 금융제재를 우려해 이란 은행이 발급한 53억원 규모의 수입신용장 인수를 거부한 것이다.

이란의 현재 코로나 19 확진자수는 125만명에 달한다. 지난해 4월은 이란 부통령이 확진판정을 받고 국회부의장이 코로나 19로 사망해 코로나19 확산세가 엄중하던 시기였다. 당시 보건부 대변인은 우리은행 수입신용장 인수거부 내용이 담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통지문을 공개하며 미국을 향해 "인륜적이고 범죄적 (제재) 압박"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지난해 들어서 냉랭해진 한-이란 관계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 수위'의 대이란 제재조치에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고 미국의 금융보복이 부담스런 한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한-이란 관계 악화에는 한국정부의 중동정책에 대한 근본적 변화에 원인이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한국은 이란 산 원유의존도를 줄이는 대신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의 원유수입 비중을 늘리고 이들 국가와의 방산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계속되고 있고, 에너지·인프라·자동차 등 부문에서 중국 국영기업들에게 선두를 빼앗긴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이란 시장에 투자할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점도 한·이란과의 관계가 소원해 지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birakoc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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