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미국 민주주의 위기 보여준 의사당 난입·총격 사태

연합뉴스 2021. 1. 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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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민주주의의 맹주'라고 자처하는 미국의 수도에서 의회 의사당이 시위대에 점령당하는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원 수백명은 6일 오후(현지시간) 조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 확정을 위한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리던 워싱턴DC 의사당에 들이닥쳤다. 의사당 주변을 바리케이드로 둘러싼 채 대기하던 경찰이 최루가스와 스프레이까지 발사하며 제지했지만 이들을 막지는 못했다. 대부분 백인 남성인 시위대원들은 상원 회의장과 하원 의장실 등 의사당 곳곳에 난입해 대선 불복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현지의 일부 언론은 이들을 시위대라는 표현 대신 '폭도'로 규정했다. 250여년에 이르는 미국 역사상 의사당이 개별적인 테러나 시위에 노출된 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적의를 품은 세력에 의해 점령된 것은 1814년 영국군의 워싱턴DC 침탈 이후 100여 년 만에 처음 벌어진 일이다.

시위대가 의사당 외벽을 타고 오르거나 유리창을 깨 내부로 난입하는 장면, 상원 회의장의 의장석과 하원 의장 사무실 의자를 차지하고 앉은 시위대원의 모습, 하원 회의장을 밀고 들어가려던 시위대원에게 경호인력이 권총을 겨누며 막아서는 대치 현장 등이 TV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고스란히 중계됐다. 하나같이 지금 미국의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장면들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 1명이 총을 맞고 숨졌으며 경찰과 시위대 양쪽에서 여러 명이 다쳤다는 보도가 나왔다. 의사당 난입사태는 오후 5시 30분께 당국이 의사당 건물 내 시위대를 몰아냄으로써 4시간여 만에 간신히 평정됐으나 후유증은 오래갈 것이 분명하다. 당장 워싱턴DC 당국이 폭력사태 방지를 위해 오후 6시부터 통금령을 내렸지만 시위대는 여전히 의사당 주변에서 깃발을 들고 서성이며 주방위군 및 경찰과 대치해 충돌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DC뿐만 아니라 조지아, 오하이오, 캔자스주 등 다른 여러 지역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도 '대선 무효' 등을 주장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일대 오점으로 기록될 의사당 난입사태의 주된 책임은 다름 아닌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 대선전의 향배가 분명해진 뒤에도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해온 그는 이날 오전 시위 현장에 직접 등장해 "우리는 이겼다. 압승이었다. 우리는 도둑질을 멈추게 할 것"이라고 연설함으로써 마지막 순간까지 지지자들에게 대선 결과 불복을 부추겼다. 사상 초유의 의사당 난입사태가 알려진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별다른 제지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2시간여 만에 페이스북에 올린 1분짜리 동영상을 통해 평화와 법·질서를 강조하며 "여러분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을 뿐이다. 그 와중에도 '대선 사기' 주장은 빠트리지 않았다. 페이스북은 이 동영상이 "폭력의 위험을 줄이기보다는 부채질한다"는 이유로 곧 삭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부터도 '선거 공명성 정책'을 위반한 3개 게시물의 삭제 및 일시 계정 정지 통보와 함께 삭제 미이행시 계정이 영구 정지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받았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 사태를 "시위가 아니라 반란"이라고 규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전국 TV 방송에 나가 선서를 지키고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촉구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호응은 없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토록 집요하게 대선 결과를 부인하면서 지지자들에게 불복을 선동하는 것은 2024년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포석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간 제기된 탈세 등 여러 범죄혐의로 소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건 그가 포용과 화합보다는 분열과 배제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아왔던 행태를 이어간다면 오는 20일까지로 예정된 임기 내에, 심지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이번 의사당 난입과 같은 돌발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대의제의 역사가 깊고 잘 정비된 제도를 갖춘 나라라고 할지라도 선동적인 정치 지도자, 그를 맹신하는 극렬 지지층, 취약한 경제·사회적 환경에 의해 민주주의의 토대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음을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의 미국이 잘 보여줬다. 전 세계 민주국가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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