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연의 외교탐구] 이란 '몽니'에도..양자협의 고수하는 외교부의 고차방정식

2021. 1. 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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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걸까, 협상을 앞둔 기싸움일까.

아랍에미리트(UAE)를 향하던 한국 국적 유조선 '한국케미'가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 유조선의 나포 사유로 '반복적 환경 규제 위반'을 제시하면서 사법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타이밍이 절묘하다. 이란의 주장대로 ‘기술적인 문제’로 한국 유조선이 나포됐다고 보기엔 시점이 미묘하다. 더구나 한국을 향해 “외교적 방문은 필요없다”면서 “한국이야 말로 70억 달러를 인질로 붙잡고 있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관계없다던 선박 억류 문제를 동결된 원유수출대금과 연계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핵협상과 제재를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억류가 이뤄진 부분도 의도를 의심하게 한다. 그럼에도 왜 정부는 이란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양자협상에 주력하고 있는 것일까?

제3국의 직접관여, 군사적 긴장감 높이는 부작용 초래할 수도

답은 간단하다. 강경대응이 긁어 부스럼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경제제재나 군사압박을 느낄 때마다 호르무즈해협을 항행하는 선박들을 나포·피습해 반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영국은 2019년 7월 선박 ‘스테나 임페리오’호 나포사건에 앞서 지난 2007년 해군이 이란 해상국경수비대에 의해 억류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을 겪기도 했다. 이란 당국은 당시 영국 해군이 자국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영국 정부가 강경대응은 자제하고, 이란 정부와의 직접 대화로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 주력했다는 것이다.

2007년 이란 해상국경수비대에 의한 영국 해군 억류사태 발생 당시 작성된 영국 하원 외교위 분석 보고서

2007년 7월 영국 하원 외교위원회가 작성한 ‘외교정책 측면에서 바라본 이란의 해군억류’ 보고서에 따르면 군이 억류당한 초유의 사태 속에서 영국은 문제해결을 위해 ▷국제협력기구인 유엔 안보리를 통한 성명발표 ▷동맹국인 미국의 군사압박 자제 ▷주이란 영국대사를 통한 협상 ▷총리실 외교보좌관과 이란 최고안보회의 사무총간 비밀접촉 등의 작업을 전개했다. 영국 하원 외교위는 “사태 발생 당시 미국은 아이젠하워 항공모함 함대와 니미츠 항모 함대를 전개할 수 있었으나, 외교부는 긴장 고조를 우려해 군사압박 자제를 요청했다”며 “정부가 사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에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강경대응이 능사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란, “기술적 사안”이라면서도 “돈 7조원 동결한 한국이 인질범” 강경발언…속뜻은?

그렇다고 마냥 이란에 끌려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란은 이번 억류가 외교적 해결이 아닌, 사법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할 문제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한국 시중은행에 동결된 원유수출대금을 거듭 언급하고 있다. 그 속내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미국의 대이란 외교와 중동정세, 그리고 이란의 대내사정을 다면적으로 봐야 한다.

이번 이란의 한국 선박 억류는 동결된 원유대금 70억 달러(약 7조 6000여억 원)을 백신구매 대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진행 중이었던 협상에서 이란이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기 위해 자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과 외신은 조 바이든 미국 새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우라늄 농축농도 상향을 발표하면서 동맹국인 한국의 선박을 억류함으로써 대이란체제를 압박하는 대미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목적도 숨어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억류사건이 경제·리더십의 위기라는 사면초가에 직면한 이란 강경파들의 ‘몽니’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미국의 압박은 이란 대내정치를 뒤흔들었다. 경제제재와 솔레이마니의 암살로 권력의 핵심으로 꼽혀온 이란 혁명수비대는 리더십과 경제의 위기를 동시에 맞게 됐다. 이란은 정규군인 이란군과 이슬람혁명수비대로 이원화된 군사조직을 갖고 있는데, 혁명수비대는 이란 최고지도자의 직속 군 조직으로서 정규군보다도 높은 위상을 자랑해왔다. 미국의 압박에 대항할 뾰족한 수가 없었던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경계를 강화하는 형태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2019년 상반기에 선박 피습 및 피격 사태가 잇따라 발생한 이유다.

중동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번 사건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내부 결속을 다지고 국내 정치력을 유지하기 위해 단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원유수출대금 문제도 부각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예상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이란의 ‘꼼수’ 경계…협상입지 선점 위해선 냉정한 대응 필요
이란에 억류된 한국 선박과 선원들의 조기 석방을 협상할 정부 대표단 단장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이 6일 밤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박 나포가 동결된 원유수출대금과는 연관성이 전혀 없다는 이란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란 측은 억류된 MT한국케미호가 여러 차례 호르무즈 해협 영해에서 환경과 관련한 법을 위반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공식적으로 ‘원유수출대금과 관련한 협상을 목적으로 우리 선박을 인질삼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 순간, 선박문제와 원유수출대금은 하나의 교섭의제로 묶여 ‘억류된 선박과 선원들-자금’을 주고받는 일종의 거래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법적·기술적 문제라는 이란 정부의 주장에 우리 정부가 ‘국제법적 대응’을 호응 카드로 내민 이유다. 한국케미호를 원유대금 문제와 엮는 순간, 교섭단은 기존보다 이란의 입장을 반영해 동결자금을 지원방식으로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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