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이 마주한 질문: 코로나 백신은 할랄인가?

김윤나영 기자 2021. 1. 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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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무슬림 인구가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19 백신 할랄 인증 문제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흔히 백신 안정제에는 돼지에서 추출한 젤라틴이 쓰이는데, 이는 돼지고기 섭취를 금기시하는 무슬림들의 접종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와 마찬가지로 돼지고기 섭취를 금하는 유대교, 태아 유래 세포 활용에 부정적인 가톨릭도 비슷한 문제에 봉착했다. 종교단체들은 신도들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맞아도 된다’면서 접종률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은 5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제약사 화이자·모더나·아스트라제네카·시노백이 ‘백신 자체에는 돼지 성분이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부 이슬람교 성직자들은 제약사에 추가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백신 자체에 돼지 성분이 없더라도, 백신의 보관과 배송을 위한 보조적인 안정제로 돼지에서 추출한 젤라틴이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먹거나 쓸 수 있는 제품인 ‘할랄’과 사용이 금지된 제품인 ‘하람’을 구분한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이라는 뜻이고, 하람은 ‘금지된’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나 알코올 성분이 전혀 없어야 할랄이다. 대다수 국가에서 백신의 할랄 인증이 법적으로 필수는 아니지만, 많은 무슬림이 할랄 인증 제품을 선호한다.

일부 제약사들도 수년간 젤라틴 없는 할랄 백신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왔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는 돼지 성분이 없는 수막염 백신을 생산한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말레이시아 제약사인 AJ Pharma도 할랄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이슬람의학협회 사무총장인 살만 와카르 박사는 지난달 AP통신 인터뷰에서 “젤라틴 없이 백신을 개발한다면 백신의 유통기한이 짧아진다”면서 “돼지 젤라틴을 포함하지 않는 백신의 수요, 기존 공급망, 비용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몇 년간은 대부분의 백신에 젤라틴이 계속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타우피크 알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 보건장관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수도 리야드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리야드|로이터연합뉴스


특히 무슬림 인구가 87%인 인도네시아에서는 할랄을 인증하는 무슬림기관인 울라마위원회가 중국의 시노백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할랄 인증을 앞두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울라마위원회가 앞으로 몇 주 안에 시노백 백신을 ‘할랄’로 인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의 이목이 울라마위원회에 집중되는 이유는 과거 결정 때문이다. 울라마위원회는 2018년 돼지고기 유래 성분으로 만든 홍역 백신을 ‘하람’으로 지정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WHO)가 인도네시아에서 대대적인 아동 홍역 백신 접종 프로그램을 시도했는데, 접종률은 목표치 95%에 못 미치는 72%를 달성하는 데 그쳤다. 어린이 1000만명이 접종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에서는 할랄 인증을 두고 신학자들이 엇갈린 해석을 내놨다. 뭄바이 지역의 수니파 무슬림 학자들의 단체 울라마가 지난달 24일 젤라틴이 포함된 백신을 하람이라고 주장했다고 인도 매체 인디아투데이가 전했다. 반면 또 다른 무슬림단체 ‘자마트 에 이슬라미 힌두’(Jamaat-e-Islami Hind)는 돼지 성분이 있어도 코로나19 백신은 할랄이라고 했다. 이 단체는 지난 2일 권고문에서 “이슬람교는 인간의 생명을 중시하고, 인간의 생명 보호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설명했다. 인도의 무슬림 인구는 14%로 1억7000만명이 넘는다.

무슬림 인구가 다수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말레이시아 당국은 일찌감치 “돼지고기에서 유래한 젤라틴이 포함됐더라도 코로나19 백신을 이슬람 율법상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백신 접종률이 떨어질까 우려해 발 빠르게 대처한 것이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백신이 할랄인지 아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코로나19로 긴급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자지라 방송은 4일 코로나19 접종률을 높이려면 정부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대중을 설득하는 등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성탄절을 맞아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강복 메시지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온 세상에’라는 뜻의 라틴어)를 낭독하고 있다. 교황은 이날 성탄 강복 메시지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의 차별 없는 공급을 호소했다. 바티칸|AP연합뉴스


백신 접종률 높이려는 종교단체나 성직자들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아크타룰 와세이 인도 자미아 밀리아 이슬라미아대 교수는 “이슬람이 돼지고기와 술 섭취를 금했지만, 약으로 사용하거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용도로 쓰는 것까지 금하지는 않았다”고 인도 매체 더 프린트에 말했다. 이스라엘의 최고 랍비인 이츠하크 요세프도 지난달 27일 “유대인 법에 따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의무화한다”고 말했다고 예루살렘포스트가 전했다. 시온주의 랍비단체 회장인 데이비드 스타브는 AP통신 인터뷰에서 “돼지를 먹는 건 안 되지만, 주사로 주입하는 건 괜찮다”고 말했다. 이슬람교와 마찬가지로 유대교도 돼지고기 섭취를 금기시한다.

가톨릭에서는 중절된 태아 유래 세포를 이용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교황청은 지난달 21일 코로나19 백신에 태아 유래 세포가 쓰였더라도 “도덕적으로 용인된다”고 발표했다. BBC에 따르면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가 각각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시험 단계에서 태아 유래 세포를 사용했지만, 실제 생산 때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개발, 생산 단계에서 모두 태아 유래 세포를 사용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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