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도, 구급차도 없다..'살 사람' 선별 들어간 외국 도시들
영국 '의료마비' 초비상..일본은 긴급사태 선포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코로나19 확산에 신음하고 있는 국가와 도시들이 '최악의 1월'을 보내고 있다. 확진자 폭증으로 의료체계 붕괴가 현실화 한 미국과 영국에서는 '살 사람만 살린다'는 잔인한 선택을 마주하게 됐다. 병상도, 구급차도, 의료진 등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생존 가능성에 따른 분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변이 바이러스가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백신 접종이 감염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이같은 암울한 상황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생존 가능성' 희박한 환자 이송 금지
6일(현지 시각) CNN방송 등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카운티는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하면서 도시 전체가 대혼란에 빠져 들었다. LA 보건당국에 따르면, 현재 8000명에 육박한 코로나19 확진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 중 21%가 중환자실(ICU)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최근까지 확진자가 폭증한 LA는 지난 2일 기준 누적 확진자가 80만 명을 넘어섰다. 확진자 가운데 중증·고위험 환자가 많은 탓에 이 지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15분 꼴로 1명씩 발생 중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LA카운티 응급의료서비스(EMS)실은 구급대원들에게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18세 이상 성인 환자는 병원 이송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현장에서 환자 상태에 대한 1차 판단을 한 뒤 이송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코로나19 환자 선별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침에 따르면, 구급대원들은 호흡이나 맥박이 없는 환자에 최소 20분간 심폐소생술을 시도한 뒤 뚜렷한 회생 징후가 없다면 병원 이송을 하지 말아야 한다. 또 중증 환자 치료를 위한 산소 등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면서 산소포화도가 90% 이하로 떨어진 경우에 한해 산소호흡기를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마저도 산소 사용량을 최소화 하도록 권장했다.
LA카운티 내 병원 주변에는 응급환자를 이송한 구급차들이 줄 지어 들어오고 있지만, 이들을 수용할 병상이 없어 환자가 구급차나 병원 밖에서 수 시간을 대기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LA소방서 EMS의 마크 에크스틴 박사는 "우리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구급차를 응급실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병상이 모자라 환자를 눕힐 침대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LA카운티의 911 센터에는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응급 치료를 필요로 하는 구조전화가 끝없이 걸려오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LA에서 다른 도시로의 이송도 여의치않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내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지역인데 현재 9명 가운데 1명 꼴로 코로나19에 감염됐고, 2만2000명 가량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LA 이외 다른 도시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바버라 퍼러 LA카운티 공중보건국장은 "연휴와 신년 전야 파티, (연말연시) 여행자들의 복귀 여파로 감염자 수는 수 주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팬데믹 전체를 통틀어 우리가 마주한 최악의 상황을 1월에 경험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내 전체 입원 환자 수는 13만 명을 넘어서 역대 최고를 기록해 의료체계 마비를 호소하는 주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변이 바이러스의 습격, 의료체계 삼켰다
영국 런던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6일(현지 시각) 영국의 일일 신규확진자는 6만2322명으로 이틀 연속 6만 명 대를 기록 중이다. 영국은 지난 4일 기준 입원환자가 3만451명에 달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3만 명선을 넘었다.
특히 변이 바이러스에 직격탄을 맞은 런던에서만 하룻새 2만 명에 육박한 시민들이 양성 판정을 받고 있어 누적 감염자는 45만 명을 넘어섰다. 영국 보건당국의 크리스 위티 최고책임자는 "잉글랜드 전체를 놓고 보면 50명 중 1명, 런던의 경우에는 30명 중 1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런던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산소부족 상황에 내몰렸다. 영국 주요 언론은 의료진들이 "누구를 먼저 살려야 하는지 잔인한 선택을 해야하는 처지에 놓여있다"며 전반적인 의료 대재앙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은 2월 중순까지 3차 봉쇄를 최대한 막아내면서 대규모 백신 센터를 열어 접종에 속도를 높일 방침이다. 또 은퇴한 의사들의 현장 복귀 절차를 간소화 하는 등 고육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일본, 하루 확진자 6000명 넘어…긴급사태 선포
일본도 병상과 의료진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며 최대 위기에 놓했다. NHK에 따르면, 6일 일본에서 코로나19 확진 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자택 등에서 대기하던 중 사망한 사람이 최소 122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19 감염 환자가 폭증하면서 일부 병원에선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환자 등에 대한 입원과 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나카가와 도시오 일본의사회장은 "필요한 때에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미 의료붕괴가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의료진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간호 관련 과가 있는 전국 287개 대학에 학생 또는 교수진 파견을 요구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일본의 전날 기준 신규확진자는 6001명을 기록, 누적 확진자 26만150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신규확진자가 6000명을 넘어선 것은 처음으로, 지난 4일(4914명)의 최다기록을 하루 만에 갈아치웠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본 정부는 7일 오후 도쿄도를 포함한 수도권 4개 광역자치단체에 한달 간 긴급사태를 선포할 방침이다. 지난해 4~5월에 이은 두 번째 발령이다. 일본 정부는 주로 회식을 통해 코로나19가 확산한다고 판단하고, 식당 영업시간을 오후 8시까지 단축하는 등의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오후 8시 이후 외출 자제를 당부하고 대규모 행사 참가자 수를 시설 수용 인원의 50% 혹은 5000명 이하로 제한하도록 할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제한적인 형태의 긴급사태 발령으로는 심각한 감염 확산세를 진정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며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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