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커피 문화 이끌었다? 사실은 그 10여년 전부터..
“1884년 1월의 어느 추운 날, 조선 고관의 초청으로 한강변 별장에 유람을 가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던 중 누대에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던 ‘석식 후 커피(after-dinner coffee)’를 마셨다.”(1886년 퍼시벌 로웰의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고종이 1896년 아관파천 때 한국인 최초로 커피를 즐기기 시작해 커피 유행을 일으켰다는 통설은 잘못된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최근 학술지 ‘한국민족운동사연구’ 105집에 실린 논문 ‘커피의 한국 유입과 한국인의 향유 시작, 1861~1896’에서 이같이 밝혔다.
한국에 커피가 처음 유입된 것은 1861년(철종 12년) 프랑스 신부를 통해서였으며, 개항 이후인 1884년에 서울의 양반층을 중심으로 커피 음용이 유행했다는 것이다. 커피가 유럽 평민들에게 퍼져 누구나 마실 수 있게 된 것이 1860년대였으므로 한국의 커피 전파는 그다지 늦지 않은 셈이다.
이 교수는 조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발굴한 시메옹-프랑수아 베르뇌 주교의 서한을 분석했다. 조선 천주교회 교구장이던 베르뇌 주교는 1860년 3월 6일 홍콩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의 리부아 신부에게 편지를 보내 이듬해 조선으로 보낼 물품을 요청했고, 이 중 커피 약 20㎏이 포함돼 있었다. 기록상 한국에 전래된 최초의 커피다.
이 교수는 “이후 1866년까지 조선으로 들여온 커피 원두는 프랑스 신부 1인당 약 4㎏이었는데 혼자서 소비하기엔 많은 양이었으므로 조선인 신자들과 나눠 마셨을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19세기 초 순조 때만 해도 조선의 프랑스 신부들은 김치와 밥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지만, 병오박해(1846) 이후 천주교 전래의 상대적 안정기인 철종 때는 조금 여유를 찾아 고국의 식생활을 향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주목해야 할 것이 1883년 조미수호통상사절단의 안내를 맡았던 미국인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의 기록이다. 1884년 경기도 관찰사(김홍집인 듯)의 초대를 받아 서울 마포의 담담정으로 추정되는 누각에 올라 조선의 유행 상품인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것이다. 궁중에서도 아관파천 이전에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식후에 차나 숭늉을 마시던 조선의 음료 문화가 자연스럽게 커피로 대체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고종의 근대화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과정에서 ‘커피 전도사’의 역할이 과장됐을 것”이라며 “그가 커피 애호가였음은 사실이지만 ‘최초로 커피를 마셨다’거나 ‘커피 유행을 선도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정설이 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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