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10대 소녀가 태권도를 가르치는 이유는

강은영 2021. 1. 7. 07: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짐바브웨 17세 소녀 마리차
10세 미만 소녀 강제결혼 문제 관심 이끌기 위해
"오랜 나쁜 관습에 맞서는 계기 됐으면"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한 빈민촌에서 '태권 소녀' 나치라이셰 마리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또래 친구들과 함께 태권도 발차기를 하고 있다. 이 소녀는 아프리카에서 자행되는 어린 소녀들의 강제 아동 결혼에 대해 알리기 위해 태권도 전도사로 나섰다. AP 연합뉴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한 빈민촌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10대 소녀가 있다. 가슴에 국기원 마크와 태권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하얀 도복을 입고 절도있게 발차기를 하는 이 '태권 소녀'는, 또래 친구들이 겪는 쓰라린 아픔을 보듬고 널리 알리기 위해 태권도를 전파하는 중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5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남동쪽으로 15㎞ 떨어진 빈민촌에서 17세 소녀 나치라이셰 마리차는 2018년부터 태권도 수업을 하고 있다. 그의 집 앞에는 여러 명이 한 줄로 늘어서 대기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억제하기 위한 짐바브웨의 엄격한 봉쇄 조치로 모임이 금지된 상황이다. 하지만 마리차는 이러한 조치가 해제되면 곧바로 태권도 수업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5세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한 마리차가 태권도 전도사로 나선 건 짐바브웨의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관습 때문이다. 10세 정도의 소녀들이 가난으로 인해 강제로 결혼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마리차는 "가난한 지역사회의 소녀들에게 삶의 투쟁의 기회를 주기 위해 태권도를 이용하고 있다"면서 "태권도로 기혼자든 미혼자든 어린 소녀들의 관심을 끌어 강제 결혼 관습에 맞서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짐바브웨에선 가난 때문에 어린 소녀들이 강제 결혼으로 멍들고 있다. 짐바브웨는 2016년 16세 여자 아이들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률을 개정해 18세까지 결혼할 수 없도록 법제화했다. 하지만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30%의 소녀들이 18세가 되기 전에 결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로 빈곤 증가...학교 못 가는 아이들 강제결혼 시켜

나치라이셰 마리차가 도복을 입고 띠를 단단히 매고 있다. AP 연합뉴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서 빈곤의 증가는 어린 소녀들의 결혼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곳 여성단체들도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고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이 심각해지면 강제 결혼이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일부 가난한 가정에서 어린 딸을 시집 보내는 것은 짐을 더는 일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강제 결혼 종식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단체 '걸스 낫 브라이드'는 "남편이 지불하는 이른 바 '신부값'은 생존의 수단으로 가족들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마리차는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소녀들에게 강제 결혼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도 하고 있다. 이 교육의 선생님들은 다름 아닌 어린 나이에 결혼한 소녀들이다. 그들은 태권도 수업이 끝나면 차례로 모여 강제 결혼 생활에 대한 신체 학대, 부부 간 강간, 임신 관련 건강문제 등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마리차는 "우리는 너무 어려서 결혼이라는 것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서 "이곳은 우리의 생각을 공유하기에 안전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태권 소녀' 나치라이셰 마리차의 집 앞에는 많은 사람이 줄지어 앉아 있다.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서다. AP 연합뉴스
태권도 대회에서 딴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는 나치라이셰 마리차. AP 연합뉴스

그러면서 그는 "강제 결혼 반대 운동을 할 때 보통 10대 엄마들의 역할은 무시된다"며 "여기서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결혼하지 않도록 용기를 복돋아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리차는 강제 결혼을 위해 하나둘씩 학교를 떠나는 친구들을 목격하며 마음 아파했다. 마리차는 "10대 엄마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소녀들이 같은 함정에 빠지는 걸 막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리차가 강제 결혼 없이 태권도 선생님으로 나설 수 있는 건 부모님 덕분이다. 마리차의 아버지는 소작농이고 어머니는 전업주부다. 이들은 딸의 노력을 돕기 위해 과일 주스와 쿠키를 준비해 태권도 수강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마리차는 "태권도 수업은 한 번에 15명만 받을 수 있다"며 "내가 받는 유일한 지원은 부모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