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컨슈머]⑤ "아마존에서 안 팔아" 나이키 '신의 한수' 통했다

김은영 기자 2021. 1. 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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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파는 D2C, 수수료 아끼고 고객 경험 늘려
‘탈 아마존’ 선언한 나이키, 코로나 속 매출·영업익 증가
美 D2C 시장, 올해 23조원… 웰빙·의류·테크 분야 성장할 것

나이키 멤버십 앱에서 매장의 상품 정보를 확인하는 고객./나이키

"아마존에서 안 팝니다."

2019년 11월 미국 스포츠 의류·용품 업체 나이키는 탈(脫) 아마존을 선언했다. 소비자 직거래 판매 방식인 'D2C(Direct to Consumer·DTC)'에 주력하기 위해서다. 나이키 브랜드가 소비자에 익숙한 것은 사실이지만, 매출이 보장된 거대 유통망을 등지겠다는 ‘배짱 선언’에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로부터 1년 뒤인 지난해 9~11월 나이키의 매출은 전년보다 9% 늘어난 112억달러(약 12조원), 영업이익은 30% 증가한 15억달러(약 1조6300억원)를 기록했다. D2C 매출은 43억달러(약 4조7000억원)로 전년 대비 32% 신장했고, 온라인 판매는 84% 급증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점포를 폐쇄하면서 3~6월 매출이 36% 폭락하고 6~8월 매출이 1% 가까이 떨어졌지만, D2C 채널인 온라인 판매가 증가하면서 반전에 성공했다.

◇ 백화점·쿠팡 필요 없다… ‘실적·고객 경험’ 잡는 D2C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제조사가 온라인으로 직접 판매하는 D2C가 부상하고 있다. 안경 기업 와비파커, 면도기 기업 달러쉐이브, 화장품 기업 글로시에, 매트리스 기업 캐스퍼 등이 자사 온라인몰을 기반으로 한 직접 판매로 성장했다. 채널 의존도가 높았던 전통 제조 업체들도 D2C에 뛰어들었다. 나이키를 비롯해 로레알, 버켄스탁 등이 D2C로 전환했고, 구찌, 루이비통 등 명품도 자사 온라인몰을 구축해 직접 판매를 확대하는 추세다.

만드는 것에만 집중해 온 제조업체들이 판매에 뛰어든 이유는 ‘실적’과 ‘고객 경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D2C는 유통업체에 입점하면서 지불하는 수수료를 아껴 안정적인 이익을 거둘 수 있다. 유통업체에 휘둘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브랜드 경험을 제어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존 도나호 나이키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기존 소매업체와 차별화된 시스템으로 전 세계 소비자에게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스포츠 활동부터 한정판 운동화 구매까지 다양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나이키플러스 멤버십 앱./나이키

실제 나이키는 D2C 선언 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유료 회원제로 개편하고, ‘나이키 라이브’와 같은 체험형 직매장을 늘려 고객 접점을 높였다. 또 고객 맞춤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데이터 분석 기업 셀렉트(Celect)를 인수했다. 현재 나이키플러스 회원은 2억5000만 명이 넘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들은 나이키 웹사이트 이용자보다 돈을 3배 이상 더 쓴다.

D2C가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제조업체들은 채널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온라인 몰을 구축해 왔지만, 아마존이나 쿠팡 등 대형 유통사들이 제시하는 초저가 전략이나 빠른 배송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픽=송윤혜

하지만 최근 쇼피파이, 카페24 등 온라인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활성화하고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고객 소통이 용이해지면서 직접 판매가 수월해졌다. 소비력이 높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전통 유통 채널 대신 개성과 취향을 갖춘 온라인 몰을 선호하는 것도 D2C의 성장 가능성을 높였다.

이마케터에 따르면 미국 D2C 시장 규모는 지난해 175억달러(약 19조원)로 전년 대비 24.3%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시장 규모는 19% 성장한 215억달러(약 23조원)로 예상된다. 미국 PR커뮤니케이션 업체 디퓨전(Diffusion)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34%가 D2C 몰에서 제품을 구매했고, 향후 5년 간 웰빙, 의류, 테크 부문에서 D2C 구매가 50%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 제조·유통 경계 사라져… 유통업체, D2C 업체와 ‘윈윈’해야

국내에서도 코로나19로 비대면 쇼핑 수요가 증가하면서 D2C 전략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은 마약베개, 필터 샤워기 등 아이디어 상품을 영상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홍보하고 이를 자사 쇼핑몰로 연결해 파는 방식으로 100만개 이상 팔았고, 레깅스 브랜드 젝시믹스는 전체 매출의 85%를 직접 판매로 거둔다.

전통 제조업체들도 D2C에 주력하고 있다. LF, 한섬,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패션 기업이 자사몰을 강화한 데 이어 CJ제일제당(CJ더마켓), 동원(동원몰), 롯데칠성음료(칠성몰), 한국야쿠르트(프레딧) 등 식품 업체들도 자사 몰을 구축해 직접 판매에 뛰어들었다.

업계는 D2C의 부상을 두고 "제조와 유통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유통 기업들은 다양한 자체 브랜드(PB)를 운영 중이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안그래도 힘이 센 유통 기업들이 제조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제조업계의 위기감이 커졌다"며 "이런 식으로라면 유통 기업의 하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D2C에 뛰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DTC 브랜드로 꾸민 네이버후드굿즈 백화점. 여러 브랜드를 하나의 공간에 큐레이션했다./네이버후드굿즈

중개 판매를 거부하는 D2C의 부상은 유통기업으로선 위협적인 흐름이다. 우리보다 시장 규모가 큰 미국에선 전통 유통업체와 D2C 브랜드 간 협업이 활발하다.

월마트는 치아 교정기 스마일다이렉트클럽, 노드스트롬 백화점은 화장품 글로시에와 의류 에버레인과 손잡았고, 네이버후드굿즈 백화점은 아예 D2C 브랜드 중심으로 점포를 꾸몄다. 기존 점포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콘셉트의 D2C 브랜드를 진열해 신선도를 높이고 D2C 채널로 이탈하는 고객을 잡기 위해서다.

이런 협업은 D2C 업체에도 고객 접점을 늘리는 기회가 된다. 소비자들이 직접 채널을 찾게 하는 건 어지간한 상품력이나 인지도 없이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와 유통은 각기 다른 역량과 전문성을 지닌다. 제조업체가 아무리 D2C를 잘해도 유통업체처럼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D2C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채널 중 하나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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