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문 닫은 하림각 적막감만.."임차인 배려해줬더라면"
"10여년 전부터 남 회장 아닌 임차인이 하림각 운영"
(서울=뉴스1) 강수련 기자 = 지난 1일 유명 중식당 하림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영업을 중단했다는 소식에 온라인이 들썩였다.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 '하림각'이 오르기도 했다.
1987년 남상해 하림각 회장이 종로구 부암동에 문을 연 하림각은 30여년 간 자리를 지키며 최대 3000여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식당으로 성장했다. 오랜시간 자리를 지켜온 하림각의 운영 중단 소식은 주변 상인들뿐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텅 빈 주차장, 불 꺼진 식당…흔적만 남은 하림각
6일 오후 5시 종로구 일대를 순환하는 1020번 버스를 타고 '하림각' 정류장에 내렸다. '부암동 랜드마크'임을 보여주듯 식당 이름을 딴 정류장이다. 하지만 이런 영광이 무색하게 하림각을 향해 이동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류장에서 40m 정도 앞에 있는 계단을 20여칸 정도 올라가니 3층짜리 하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식장과도 연결된 식당이라 더욱 으리으리하게 느껴졌다.
저녁식사 준비로 한창 바쁠 시간이지만 하림각에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본관 앞 20대는 족히 들어갈 지상 주차장에는 주차된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외관은 중국식 붉은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내부는 안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문 앞에는 사람들의 입장을 막는 듯 빨간색 라인도 설치돼 있었다.
본관 입구 유리창에는 "월 2억원의 고액 임대료와 심각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2021년 1월 1일부로 하림각 영업을 종료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바로 옆 유리창에는 "마스크 미착용시 출입이 제한 된다", "발열체크 협조 문구" 등이 붙어 있어 얼마 전까지 영업을 계속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남상해 회장의 사진들을 전시해놓은 바로 옆 건물 '구암 남상해 역사관' 역시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하림각 관계자는 만날 수가 없었다. 이날 찾은 하림각에는 흔적만 남아 있었다.
◇연말연초 북적이던 하림각…이제는 유령도시 같아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하림각 일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소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는 아니지만 하림각을 찾아 오는 손님들이 많았다고 동네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하림각 근처의 한 백반집 사장 A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초 모임을 하려는 예약 손님이 많아 바글바글했다"며 "우리는 그렇게 찾아오는 손님들이 흘러 내려와서 콩고물을 얻어먹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림각 맞은 편의 한 빵집 사장님 이모씨(39) 역시 "연말 연초에는 모임이 많아서 밤 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사람들이 놀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주말에는 예식장을 찾은 사람들로 도로가 꽉 찼고, 하림각 본관 앞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게 이씨의 전언이다.
이외에도 북악산 둘레길을 걷던 시민들이나 가이드가 끌고 온 외국인 관광객들로 하림각 일대는 활기가 넘쳤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바꿨다.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향될 때마다 식당은 인원·운영시간의 제한을 받았고, 지난해 12월23일 시작된 '특별방역기간'에는 5인 이상의 사적모임에는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하객 인원이 제한되자 예식을 연기하는 신랑·신부도 늘어났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긴 것도 당연하다.
하림각과 이어진 예식장 관계자는 "지난해 5월부터는 하림각에 손님이 많이 끊겼었던 것 같다"며 "최근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 상향되면서 타격이 컸던 것 같다"고 했다.
식당 사장 A씨 역시 "코로나가 심해졌던 지난해 3월부터는 예약 손님들이 끊기면서 우리한테도 내려오는 손님들이 없어졌다"며 "예식장도 운영이 제한되다보니 하림각으로 가는 손님들도 줄었던 거 같다"고 했다.
부암동 일대 골목을 매일 지나친다는 정모씨(65) 역시 거리가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고 말했다. 정씨는 "연초에 하림각에서 이런저런 행사도 많이 하고 옆 예식장에서 결혼도 많이 했었다"면서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거리에서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빵집 사장 이모씨도 "이제는 이 일대가 유령도시가 된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마을의 자랑 사라져 마음 아파…그래도 우리는 버텨야
인근 상인들 다수는 하림각이 운영중단 소식에 마음 아파 했다. 자신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기에 더욱 공감하고 있었다. 하림각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도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운영을 잠시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씨(56)는 "하림각 소식을 들었을 때 소름이 싹 돋았다"면서 "바로 맞은 편 식당이라 코로나로 힘든 상황이라는 게 바로 느껴지기도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네 식당은 매출이 줄었어도 만두 포장·전국배달 등으로 버틸만 하다고 했다. 하지만 강남 테헤란로에서 아들이 운영하는 지점은 직장인들이 재택근무에 들어가면서 손님을 잃었다고 전했다.
빵집 사장 이씨 역시 "쉬는 날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하림각이 떠서 문 닫는 소식을 알았다"며 "하림각이 오래되기도 하고 버스 정류장 이름으로도 만들어졌는데, 문을 닫는다고 하니 많이 아쉽다"고 전했다.
이씨는 하림각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 일대 골목에 있는 카페들이 대부분 문을 닫거나 12시에 문을 여는 등 운영시간을 줄이고 있다"며 코로나19의 여파를 걱정했다.
그래도 이들은 희망을 갖고 버티겠다고 했다. 김씨는 "장사를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잠시 쉬어가고, 또 이 시국만 잘 버티면 또 잘 될 거라는 희망을 잡고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A씨 역시 "힘든 것 이해하지만 하림각이 문을 한 순간에 닫아 버려서 안타깝다"면서도 "우리는 일하는 사람을 6명에서 4명으로 줄이고 탄력적으로 운영하면서 버텨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월 2억 임대료는 하림각 운영하던 임차인의 몫
한편 하림각 운영 중단과 관련해 '셀프임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2일 남 회장이 한 언론매체를 통해 "운영을 중단한다"고 밝혔는데, 건물주가 남 회장 일가로 알려지면서 고액 임대료 때문에 운영을 중단하는 게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6일 <뉴스1>의 취재를 종합하면, 하림각을 실질적으로 운영해온 사람은 남상해 회장이 아닌 B씨인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19 상황에 타격을 받자 임차인이 문을 닫은 것이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다른 임차인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코로나 시국에 몇천 석 규모의 큰 식당을 운영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인근 식당 사장 A씨 역시 "10여년 전부터 임차인이 들어와서 하림각을 운영해왔다"고 했다.
고액 임대료 논란을 두고 인근 상인·주민들 입장이 나뉘기도 했다. 인근 사장 식당 김씨는 "코로나로 큰 식당의 인건비, 임대료 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건물 소유주인 남 회장이 조금 더 임차인을 배려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다른 식당에서 만난 주민 C씨는 "3000여명이 들어갈 정도로 부지도 어마어마하게 넓은만큼 임대료도 비쌀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임대료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문제인데 식당 정문에 공개적으로 붙여 놓은 게 손님으로서 조금 불편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하림각은 완전히 문을 닫는 게 아니라 '잠정 중단'한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쯤 하림각의 문이 다시 열릴지는 알 수 없다. 인근 상인들은 코로나19의 종식을, 또 하림각의 재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traini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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