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 거지의 은화 한 닢
금값이 이상하다. 돈이 많이 풀리면 금값이 뛰어야 하는데, 오히려 약세다. 90년 전 대공황 때와 반대다.
1929년 10월 미국 증시 폭락 이후 세계는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다. 하지만 1931년 7월 견디다 못한 독일이 금본위제도를 포기했다. 그러자 영국, 이탈리아,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도 금본위제도를 이탈하고, 이어 일본도 가세했다. 1933년 미국도 손을 들었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당시 상하이의 대학생 피천득은 골목을 지나가다가 거지를 보았다. 그 거지는 벽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손바닥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누가 오는지도 모르는 그의 손에는 은화 한 닢이 있었다.
피천득이 궁금해서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줍디까?” 하고 물었다. 거지는 위를 힐끔 쳐다보며, 얼른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 더듬더듬 설명했다. 한 푼 두 푼 6개월을 굶으며 동냥해서 모은 돈이라고 했다. 얼굴에는 희열이 넘쳤다.
피천득은 더 궁금해졌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남들처럼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그동안의 배고팠던 서러움이 떠오른 듯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수필 ‘은화 한 닢'(1932)의 줄거리다. 당시 22세였던 초보 수필가는, 거지의 맹목적인 절약을 안타까운 듯 묘사한다. 그 거지는 진짜 어리석었다.
장개석 정부는 일본이 세운 만주국과 경쟁하려면, 화폐가치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은본위제도를 힘들게 지켰다. 그러나 대공황이 닥치자 역효과가 났다. 위안화 폭등으로 수출이 급감했다. 견디다 못해 1935년 마침내 은본위제도를 포기했다. 그러자 물가가 급등하여 그 거지의 구매력도 절반으로 줄었다. 차라리 먹고 쓰는 것이 나았다.
남들처럼 돈을 갖는 자체가 목표여서는 곤란하다.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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