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장례 없는 이별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2021. 1. 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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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로나19는 이별의 풍경도 바꿨다. 장례식장은 한산해졌다. 상주가 장례 일정에 더하여 계좌번호를 함께 알린다. 청첩장에 계좌번호를 적어도 눈살 찌푸리던 사람들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낯설다. 그나마 임종을 지키고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코로나19로 사망하면 장례조차 치를 수 없다. 사망 직후 화장터로 간다. 임종을 지키기는커녕 염습도 할 수 없다. 고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볼 기회조차 없다. 가족들마저 자가격리 중이라면 이별의 모든 과정은 생략될 것이다. 그 감정을 나는 차마 헤아릴 수 없다. 어디 사람과 사람의 이별뿐일까.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오후 9시 영업제한으로 사실상 술집에 갈 수 없고 카페도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니 사람들을 만날 일이 없다. 일과 관련된 사람도 카톡이나 짧은 통화로 일 얘기만 할 뿐, 수다도 떨지 못한다. 원래 수다란 남 말을 할 때 제일 재미있는 법인데,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미국 대선이라든가 유럽의 확진자 통계 같은 머나먼 지역 소식은 인터넷으로 빠르게 들어온다. 입소문으로 퍼지는 가까운 곳의 근황은 오히려 한참 후에나 알게 된다.

2019년까지 공연문화의 중심지였던 홍대앞은 코로나19의 타격을 가장 강력하게 맞았다. 적어도 한 달에 몇 차례씩 공연을 봤었는데, 지난해를 통틀어 몇 차례도 보지 못했다.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본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탓도 있었지만 보고 싶었던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된 이유가 컸다. 10여개에 이르는 라이브클럽 및 공연장들은 사실상 일년 내내 휴업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전국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축에 들어가는 이 동네에서, 버틸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나둘씩, 조용히 폐업했다.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곳, 즉 임대료 및 운영비가 많이 드는 곳들이 먼저 사라졌다. 무브홀·브이홀 같은 중형 공연장이 그렇다. KT&G에서 운영하는 상상마당 홈페이지에는 최근 공연이 지난해 2월로 기록돼 있다. 그 이하의 공연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연 소식이 뜨문뜨문 올라오더니 어느 날부턴가는 아예 사라졌다. 폐업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았다.

코로나19 이전, 라이브클럽이 문을 닫을 때는 나름의 이별 과정을 거쳤다. 보통 임대료 문제였기에 정해진 계약 기간까지만 운영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그곳에서 음악을 시작했던, 커리어를 쌓아왔던 음악인들이 기꺼이 달려가 마지막 무대를 채웠다. 한 공간을 기억하려는 관객들이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객석을 채웠다. 그래서 공연장의 끝은 불꽃놀이였다. 몇 주 동안 이어지는 축제 같은 장례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문을 닫은 공연장은 축제는커녕 평범한 장례식도 없이 사라졌다. 코로나에 희생된 사람들과 같은 운명을 걸었다.

희망 비슷한 걸 가져본다. 올해 백신이 마침내 우리를 거리 두기와 마스크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리라 가정해 본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거짓말처럼 되돌아오는 날, 마치 군대에서 휴가 나왔더니 가족이 이사가고 없을 때 같은 기분을 느낄 것 같다. 공연을 하고자 해도, 보고 싶어도 무대가 사라졌다. 특히 스탠딩 공연에 최적화된, 온몸으로 느껴지는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공연장일수록 더 빨리 사라졌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여러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많던 공연의 뿌리가 뽑힐 수도 있다는 의미일 거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 공연이 새로운 문화가 될 거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를 1년 겪은 지금 확언하고 싶다. 비대면 공연이 대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땀냄새와 함성에 둘러싸인 공연을 단 한번도 본 적 없을 거라고.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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