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시어머니와 같이 산 지 10년

김선자 2021. 1.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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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월이네? 어휴, 갈수록 왜 이렇게 세월이 빨리 지나갈까요?”

“인자 더 살아봐라, 점점 빨라징께. 10대는 10킬로, 20대는 20킬로, 50대는 50킬로, 80대는 80킬로로 세월이 가븐다 안하냐.” 멸치를 다듬으면서 어디서 들었는지 시어머님이 한마디 하셨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갈수록 세월에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어쩌면 모든 것에 빠름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문명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서울과 곡성은 편도 버스로 3시간 30분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KTX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서울과 전라도의 거리가 점점 단축되고 있다. 전국이 하루 생활권이 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영암에서 자란 아버지와 거창에서 자란 어머니가 각기 꿈을 갖고 어린 나이에 서울로 상경하여 살다가 결혼하게 되었다. 30을 코앞에 둔 아버지가 뒤늦게 군대에 들어가자 홀로 남은 어머니가 출산을 앞두고 시부모님을 찾았다. 살길이 막막하여 내려온 것이다.

순하고 말수도 없는 새색시가 첫 딸을 낳았다. 삼일 만에 몸도 다 못 풀고 아궁이 불을 때면서 서러움이 복 받치었다.

헌 소리 또 하고/ 헌 소리 또 하고/ 시할매는/ 쇠담뱃대를 저녁마다/ 따앙 땅땅 따앙/ 밤새도록 때리고// 시어매는/ 흥 인자도 멀었다/ 나만이로 할라믄/ 아직도 멀었다.(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 중 수록작 ‘시집살이' 전문)

할머니는 98세에 돌아가셨다. 시집살이깨나 시켰지만 평생 마음으로 의지하던 며느리의 수발을 받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저렇게 투닥투닥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든든하게 의지하고 있었던 건 며느리가 아니었는가 싶다. 세월이 흐를수록 며느리를 친구 삼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누구나 나이 듦을 피해갈 수 없다. 우리가 맞이하게 될 그때의 나이 듦에는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또 나는 누구를 벗하며 살고 있을까?

시어머님께 멸치를 건네받아 냉장고에 넣었다. 함께 살게 된 지 십 년이다.

세월이 우리를 그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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