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대통령이 앞에 나서야 한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2021. 1. 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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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민주적 리더십’을 생각할 때 두고두고 곱씹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다. 2000년 8월7일, 김대중 정부의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취임한 노 전 대통령의 취임사다. “여러분에게 쏟아지는 매는 제가 맞겠습니다. 일하십시오. 자신 있게 일하십시오. 일을 추진하다 생긴 실수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으면 그 모든 책임은 여러분이 져야 할 것입니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민주적 리더십’이라는 다소 모순돼 보이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권한은 내리고 책임은 올린다. 리더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으니 현장에서는 자신감 있게 행동하고, 리더는 현장에서 결정하기 어려운 정무적 쟁점을 판단하고 큰 방향을 제시하며 조직을 이끈다. 여기서 핵심은 ‘민주적’이 아니라 ‘리더십’이다. 어렵고 부담스러운 결정은 여전히 리더의 몫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민주적 리더십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문재인 정부의 최근 행보는 거꾸로다. 어렵고 부담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대통령은 보이지 않고 총리나 장관, 당 대표가 그 부담을 진다. 지난달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상향 여부로 논쟁이 불거졌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서 결단해달라고 한 일은 상징적이다. 실제로 그 권한은 중대본에 있긴 하지만, 정부가 상향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에서 이런 발언은 중대본에 당혹감만 줬을 뿐이다. 의대생들에게 시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발언은 정세균 총리에게서 나왔고, 전 대통령들 사면론의 불씨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폈다.

권한을 내리고 책임도 내린다. 언뜻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무책임할 뿐인 상황이 반복되는 동안 대통령은 책임의 주체가 아니라 자꾸만 보호대상으로 소환된다. 코로나19 백신 확보가 늦어져 대통령 책임론이 제기되자 청와대 대변인이 뜬금없이 백신 확보를 수차례 지시한 대통령 발언들을 일일이 공개하며 변호한 일이 대표적이다. 서울동부구치소 건에서도 대통령의 존재는 ‘청와대 핵심관계자’의 입을 통해 “동부구치소 상황을 특별 관리하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다고 나타나는 게 전부다. 시민들이 원했던 모습은 대통령이 일이 진척되지 않은 원인을 찾고 시정하는 것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1년4개월 남은 임기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검찰개혁 말고는 최근에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 이슈가 기억나지 않는다. 이틀 전 중앙일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의 탈정치’를 선언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는 보도를 냈는데, 청와대는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그 기사를 보자마자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건 대통령이 정말로 그러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결단해야 할 일이 밀려 있고 현장은 대통령 눈치를 살피는데, 정작 대통령은 결단하지 않고 책임을 미루고 각료와 지지자들은 그런 대통령을 보호하는 데 급급해한다. 이런 풍경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결단하지 않는데 일이 잘 풀릴 리 없다. 대통령이 앞에 나서야 한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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