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코로나 1년, 밥상은 가난해졌다
10만원어치 장바구니에서 1년 만에 쌀 3㎏, 삼겹살 한 줄, 닭 다리 한 조각, 양파 두 개, 사과 두 개, 갈치 한 토막, 계란 3개가 사라졌다. 늘어난 건 배추 반 포기뿐이었다. 본지가 한국인이 많이 먹는 농·축·수산물 1·2위 품목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공시가격 기준으로 작년 1월과 올해 1월 각각 10만원어치씩 장바구니에 담아본 결과다.
통계청은 최근 “2020년 소비자물가가 0.5% 올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6일 이마트 서울 성수점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한결같이 “도대체 어떻게 물가 인상률이 0%대라는 거냐”고 반문했다. 정부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한다지만, 서민들의 ‘밥상 물가’로 시선을 돌리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통계청 자료로도 농·축·수산물 가격은 9.7%가 올랐다. 쌀·삼겹살·사과 등 한국인이 즐겨 찾는 품목은 대부분이 그보다 가격이 더 많이 올랐다. 통계청이 소비자물가를 산정할 때, 농·축·수산물에는 가중치 77포인트를 주면서, 공업 제품(333포인트)이나 서비스 요금(551포인트)에는 그 3~8배의 가중치를 주기 때문에 착시가 생긴다.
서울의 밥상 물가는 세계 최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글로벌 물가 비교 사이트인 ’넘베오(Numbeo)’에서 서울의 식료품 물가지수(Grocery Index)는 지난해 뉴욕 등 미국에서 물가가 비싼 도시 3곳을 한 번에 제치며 6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최근 국내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 밥상 물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양파 60%, 삼겹살 24% 급등… 서울이 뉴욕·런던보다 비싸다
지난 5일 오후 5시 10분쯤 이마트 서울 성수점 딸기 판매대 앞에서 혼자 온 60대 여자 손님이 5분을 서성였다. 매대 앞 입간판엔 ‘딸기 750g 1팩: 1만19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손님은 유통 기한 임박으로 가격표가 ’9900원'으로 고쳐 적힌 딸기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는 “물가가 많이 올라서 가격표 앞에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똑같은 딸기 1상자가 작년 이맘땐 7980원이었다. 이날 기자는 쇼핑객들에게 “올해 물가가 0.5% 올랐다”고 말해봤다. 여러 손님 입에서 “말도 안 된다” “무슨 소리냐” 같은 반응이 나왔다.
실제로 본지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인이 즐겨 찾는 음식 재료 상당수가 정부 통계보다 가격이 더 올랐다. 코로나 사태로 ‘집밥 수요’는 늘었는데, 가축 전염병, 냉해, 수급 조절 실패 등이 줄줄이 겹쳐 주요 신선 식품 공급이 줄어든 결과다. 이마트 신선식품 총괄책임자인 김동민 담당은 “많은 국민이 한꺼번에 외식 대신 집밥을 선택하면서 ‘집에서 요리해 먹기 쉬운 품목’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이 많이 먹는 육류는 돼지고기-닭고기-소고기 순이다. 1인당 연(年)평균 돼지고기 27㎏, 닭고기 14㎏, 소고기 13kg을 먹는다. 최근 1년 새 세 종류 고기 값이 다 올랐다. 삼겹살은 24.6% 올랐고, 닭고기는 8.9% 올랐다. 소고기값(한우)도 부위별로 3.5~9.4% 올랐다.
돼지고기는 작년 전 세계를 휩쓴 아프리카돼지열병 직격탄을 맞았다. 외국산 삼겹살 40%를 공급하는 독일에서 작년 9월 돼지열병이 확인되면서 수입이 중단됐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소비가 늘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2월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5개월간 가구당 평균 돼지고기 구매량이 16% 늘었다. 그 결과 품귀 현상이 빚어지며 가격이 올랐다. 이마트 돈육팀 관계자는 “도매 시장에서 삼겹살과 앞다리 살은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시쳇말로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농경제사회학)는 “최근 국내 돼지열병 재확산세도 심상치 않아 앞으로 돼지고기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닭고기와 계란도 마찬가지다. 작년 국내에서만 조류인플루엔자로 닭 400만마리가 살처분됐다. 도매가격은 최근 한 달 사이에만 닭고기가 40%, 계란은 15% 올랐다. 롯데마트 축산팀 관계자는 “도매가격 인상이 당분간 계속해서 소비자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수요 또한 늘었다. 야간 식당·주점 영업이 중단될 때마다 치킨 배달 수요는 2~4배씩 뛴다고 업계에서는 말한다.
주식(主食)인 쌀의 가격도 16%나 올랐다. 지난해 장마와 태풍 등으로 50년 만에 전국 쌀 생산량이 최저치를 기록한 결과다. 사태를 심각하게 여긴 정부는 1~2월 중 18만t 규모의 쌀을 시장에 공급하겠다고 5일 발표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채소인 배추는 36.5%가 내렸다. 롯데마트 채소 구매팀 관계자는 “2019년 가을에 비가 많이 내려 가격이 올랐던 기저효과일 뿐, 지금 가격이 예년에 비해 싼 것은 아니다”고 했다. 반면 최다 소비 2위 채소인 양파의 가격은 수급 조절 실패로 62% 올랐다. 작년 생산량이 117만t으로 재작년 159만t 대비 27% 감소, 3년 만에 최소치였기 때문이다. 그전 2년 연속 양파 가격이 폭락하면서 농민들이 재배 면적을 줄인 결과다.
이런 상황이 겹치며 글로벌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 ‘넘베오(Numbeo)’가 집계한 서울의 작년도 식료품 물가지수(Grocery Index)는 세계 376개 주요 도시 가운데 재작년 세계 10위에서 6위로 뛰어올랐다. 뉴욕·워싱턴DC(미국)와 오슬로(노르웨이)를 이번에 제쳤다. 1~5위는 모두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한 스위스의 도시들이었다. 서울의 식료품 물가가 뉴욕·런던 등 글로벌 대도시는 물론이고 1인당 GDP 5만~8만달러 수준의 북유럽 국가의 도시보다도 비싸단 얘기다. 서울의 사과 1㎏ 가격은 세계 3위, 바나나 1㎏ 가격은 세계 2위다. 순위 상승세도 가파르다. 서울의 식료품 물가 순위는 2015년 64위였다가 2016년 28위, 이번에 6위가 됐다. 5년 만에 58계단이나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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