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64] 뉴욕의 한인 가게들
2012년 10월에 상륙한 폭풍 ‘샌디(Sandy)’는 가혹했다. 뉴욕에서만 44명이 사망하고 7만여 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경제적 손실은 190억달러(약 20조원)에 해당했으며, 도시 전체의 정전으로 암흑 속 며칠이 계속되었다. 당시 맨해튼에서 어느 구멍가게를 운영하던 한인은 정전이 되자 촛불을 켜놓고 장사를 했다. 손님이 의외로 많았다. 주변 상점이 모두 닫아서다. 이웃 주민들은 물, 양초, 화장지 같은 생필품을 사려고 꾸준히 들렀다. 근처를 지나다 들어갔더니, 주인은 2분만 가게를 봐달라고 했다. 몇 시간째 혼자 지키느라 화장실을 다녀오지 못했다면서. 이 가게의 촛불 속 영업 장면은 곧 화제가 되며 주요 방송국 뉴스에 소개되었다. 바로 다음 날 위생국 직원들이 찾아왔다. 전기가 나간 상태에서 영업은 불법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떠났다.
2020년 코로나 상황에서 맨해튼은 위험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래도 병원과 공사 현장은 바빴다. 주변 식당이 모두 닫아 먹을 곳이 없었던 병원 근무자와 공사장 인부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었던 5번가의 한인 델리 가게를 찾았다. 틈틈이 한국에서 수입한 마스크도 판매했던 이 가게는 외식 산업이 초토화된 2020년에도 드물게 흑자를 기록했다.
코로나로 뉴욕의 레스토랑 영업이 금지된 후, 여름부터 부분적으로 야외 테이블이 허용되었다. 가을까지 야외에서 근근이 버텨오던 식당 주인들에게 뉴욕의 악명 높은 겨울 강추위는 또 하나의 난관이었다. 하지만 한식당 주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방한을 위해서 텐트를 치고 심지어는 문과 창문도 설치해 작품을 만들었다<사진>. 마치 모두 숙련된 목수들 같았다. 감동적이다. 이민 생활을 치열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몸부림치며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늘 디폴트다. 여기에 보답이라도 하듯 고객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주인들에게 격려의 말을 잊지 않는다. “진정한 뉴요커라면 요즈음같이 어려울 때 눈이 펑펑 오는 겨울밤 야외 천막 안에서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 멋진 공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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