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어흥!

임의진 목사·시인 2021. 1. 7.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지금도 그렇지만 나이키가 유행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스님들도 흰 고무신에 유성펜으로 나이키를 그려서 신고 다녔다. 나이키가 나오자 짜가 짝퉁 나이스가 뒤따라 나왔다. 변비에 고생인 할아버지는 변소에 앉아 신문을 죄다 읽는데 할매가 두드리면 “나 있수”. 나이키와 나이스, 아니 나 있수가 점령한 세계였다. 요샌 단어가 잘 안 떠올라 발전기까지 돌려도 무리. 일본에 여행을 가면 자주 듣는 말 무리 데스렷다. 캠핑복으로 인기인 파타고니아 상표가 생각 안 나고 파푸아뉴기니가 난데없이 쓩. 아 이건 더 어려운 말인데 떠올라. 생일 선물로 멀리서 파타고니아 털옷을 한 벌 보내왔는데, 거기 “바보들을 투표로 몰아내라(Vote the assholes out)”고 써 있네. 기업들의 슬로건을 믿지 않지만 이건 참 뜻밖이라서 심쿵. 환경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거나 변호하는 정치인들은 냅다 갈아치워야 한다. 백년도 못 사는 인간들이 천년만년의 산과 들, 강을 다 파괴했는데 사면 운운이다. 사형을 잘못 말한 거겠지.

알래스카 원주민 이누이트 족의 말에는 ‘훌륭하다’는 말이 아예 없단다. 물범 사냥을 최고로 잘해도 훌륭한 사냥꾼이 아니다. 간신히 물오리라도 한 마리 잡으면 다행이고 감사한 혹한. 뭐든 적당히 해야지 훌륭, 일등 경쟁으로 망가진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 ‘나이스’하려면 오버, 무리하지 말아야지.

엄동설한이라더니 성탄 때부터 얼어붙어 입때껏 꽁꽁 얼음 꽁. 아직도 군불을 때는 집들이 있는데, 굴뚝에 연기가 솔솔. 배고픈 노루가 울고 새들이 운다. 얼어붙은 강변에서 종종거리던 들짐승들이 모두 산골로 올라와 사람 사는 동네를 기웃거린다. 호랑이도 인가에 출몰할 때는 가장 배고플 때라고 한다. 맨 먼저 사냥꾼 집을 덮치는데, 어떻게 집을 알고 찾아오는지 귀신같이 대살문을 박차고 들어와 어흥!

임의진 목사·시인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