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안과 밖] 평가의 재발견

손연일 월곡중 교사 2021. 1. 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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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 편의 영화를 빨리감기하여 휙휙 스쳐본 것만 같은 2020년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학교는 오랜 역사와 촘촘히 얽힌 시스템 덕분에 할 건 다 해야 학기가 마쳐지고 방학에 들어갈 수 있다. 해마다 학기말이면 교육과정 평가회를 갖는데 2020년에는 12월 중순부터 세 번에 걸쳐 일 년의 교육과정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 번은 학년을 중심으로 한 통합교육과정에 대한 평가, 또 한 번은 학교 운영 전반에 걸친 조직 진단을 겸한 평가, 마지막으로 학생·교사의 성장 이야기를 듣는 평가의 시간까지 세 번의 과정을 거치면서 ‘평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일단 그 시간이 즐겁고 감동적이었으며 구성원들 사이에 소통과 이해가 깊어졌고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무언가 가슴 안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희망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재직했던 모든 학교마다 교육과정 반성회라는 것을 해 왔는데 왜 이번에는 색다르게 다가왔을까?

손연일 월곡중 교사

첫 번째는 그 누구의 지시나 외적 강제가 아닌 학기 초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일 년 교육과정을 함께 계획했기에 주인된 자세로 일 년간 사업을 펼쳐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자발성은 스스로를 책임지게 하는 힘이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활동이 제약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수학여행을 못 가게 되니 소규모 체험활동을 계획하게 되고, 축제를 전체 학년이 함께할 수 없게 되니 학년으로 나눠서 하고 공연은 온라인으로 해내는 저력을 발휘했다. 내적 동기가 있으면 시련 앞에 멈춰서기보다 햇빛을 향해 돋아나는 새싹처럼 멈추지 않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함께함’이다. 함께 수업을 디자인하고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서 공통의 주제로 통합교육과정을 의논하고 실행하는 모든 것을 함께했기에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개인의 성공 사례를 듣는 것도 성장을 위한 자극이 되고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대개는 뛰어난 개인이 돋보이면 나머지 사람은 초라해지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뭔가?’라는 우울감이 들게 된다. ‘너의 성취’가 아니라 ‘우리의 성취’이기에 함께 기쁨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던 것 같다.

세 번째는 성장을 위한 피드백이다. 외적 기준과 권위에 의한 평가는 보상과 처벌의 흐름으로 가기 쉽다. 이러한 평가는 모든 사람을 소외시키게 되어 성장의 동력이 되기보다 외부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외로운 길로 들어서게 된다. 아쉬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성장은 맘껏 축하하고, 아쉬움은 스스로 도전할 준비가 된 만큼만 나누었다.

세 번의 평가회를 돌아보며 학생 평가에 대해서도 새로운 고민을 품게 되었다. 한 아이가 기말고사 끝나고 ‘선생님 저 60점 맞았어요. 잘했죠?’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속으로 ‘전체 평균이 70점인데 자랑스러워할 점수는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1학기 때는 50점이었는데 많이 올랐죠?’라는 말이 이어지자 칭찬도 비난도 아닌 대충 맞장구를 쳐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는 꾸밈없이 자신의 성취를 기뻐하는데 나는 평균 이상이 되어야 한다거나, 잘하는 기준은 몇 점 이상이라는 고정 관념에 맞춰 그 아이를 대했다. 모든 학습자는 성장하기 위한 피드백을 받아야 함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아마 내 반응은 달랐을 것이다.

손연일 월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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