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 발생해도 처벌 못해

노지원 2021. 1. 6.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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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5인 미만, 전체 사업장의 80%..연 400명 숨지는데 사각지대로
여야, 후퇴한 중대재해법 합의
음식점 등 소상공인도 제외
백혜련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 위원장이 6일 오전 정의당 의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손팻말을 들고 있는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 회의실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전조치 부실로 인한 노동자 사망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해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데 여야가 6일 합의했다. 또한 음식점·노래방·피시방·목욕탕 등 공중이용시설 사업장 면적이 1000㎡ 이하이거나 상시근로자 10인 미만을 둔 소상공인의 경우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국회에서 중대재해법안을 놓고 심사를 거듭할수록 법안 내용이 계속 후퇴해 애초 중대재해법 도입 취지가 퇴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당은 “차 떼고 포 떼고 뭘 갖고 생명을 지키겠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중대재해법을 놓고 심사를 거듭해 법 적용 유예 대상 및 기간 등만 남겨놓고 나머지 대부분은 합의했다.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간사이자 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인 백혜련 의원의 설명을 종합하면, 여야는 이날 △중대산업재해 대상에서 ‘5명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중대시민재해 적용 대상에서 ‘소상공인’ 및 학교를 제외하며 △발주, 임대를 제외한 용역을 준 업체만 법 적용을 받고 △인과관계 추정 조항 및 공무원 처벌 특례 조항을 삭제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소위 회의 결과에서 가장 쟁점이 된 대목은 중대산업재해에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된 것이다. 2018년 기준 5명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79.8%를 차지하고, 종사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26.5%인 587만7128명에 이르며, 5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재해 사망 비율이 전체의 20%나 된다. 이런 상황에서 5명 미만 사업장을 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한다면 상당수 노동자가 중대재해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백혜련 의원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경영책임자 의무가 삭제된 게 아니다”라며 “5인 미만 사업주는 산업안전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고, 5인 미만 사업자의 원청업체는 (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중대재해법으로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또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강력하게 5인 미만 사업장들이 중대재해(적용 대상)에 포함될 경우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굉장히 많이 주장했고, 그래서 위원 간 갑론을박을 하다 중기부 의견을 받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5인 미만 사업장 재해 사망 비율이 20%로, 연간 약 400명이 이들 사업장에서 숨진다”며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는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라는 무책임한 합의를 철회하고 재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야는 중대시민재해 적용 대상에서 ‘소상공인’ 및 학교를 제외하는 데도 합의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 ‘소상공인’의 기준은 사업장 면적이 ‘1000㎡ 이하’이거나 소상공인법에 명시된 ‘상시 노동자 10명 미만인 업체’ 등이다. 백 의원은 “학교안전관리법이 올해부터 시행되는데 또다시 중대재해법을 적용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보여 학교는 제외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여야는 또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다해야 할 주체로 발주, 임대자를 제외하고 용역을 준 이만 포함시키기로 했다. 정부가 요구한 대로 사업주가 진상조사 방해 등 사건 은폐 지시를 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는 등의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나 공무원 처벌 특례 조항도 삭제하기로 했다. 여야는 또한 중대산업재해 책임자로 법인 대표 ‘또는’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합의했다. 이에 앞서 여야는 노동자가 사망한 사업장의 경우 법인의 벌금 하한선도 삭제하는 등 처벌 수위를 대폭 완화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날 소위 여야 합의에 대해 “오늘 거대 양당은 안전보건담당이사를 둬서 안전보건을 외주화할 길을 남겼다. 산재가 대부분 영세사업장에 몰려 있음에도 발주처를 삭제했다”며 “정부와 거대 양당은 시민 안전과 생명 대신 재계의 안전과 생명 지키기를 선택했다. 정부와 국민의힘, 민주당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반발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발주처도, 공무원 처벌도, 벌금 하한형도 빠졌다”며 “주요 내용은 다 빠진 것이다. 뭐가 남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심사를 할수록 입법 취지가 퇴색된다는 지적에 대해 백 의원은 “(인과관계 추정을 삭제하는 대신) 5년 안에 사고가 있었던 경우 가중처벌하는 조항이 들어갔다”며 “오히려 예방과 관련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안전관리, 재해예방을 위한 예산지원 의무 조항을 신설했다. 처벌만으로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중인 산업재해 유족들도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날로 27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는 고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 이용관씨는 “기업 책임자의 징역형 하한형을 높여야 했다. 이렇게 해놔도 사법부에서 형량을 낮게 판결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어 “논의할수록 후퇴되는 정부와 국회의 법안에 분노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하한형 도입을 주장한 건 검찰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었다. 처벌 상한선이 높아봤자, 노동자 사망 사업장에 500만원 미만 벌금이 부과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여야는 7일 오전 다시 소위를 열어 논의를 마무리 짓고 최종 의결을 한 뒤 오후 전체회의를 거쳐 8일 본회의에 중대재해법을 상정, 통과시킬 계획이다.

노지원 박준용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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