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따던 팔순노모 막내아들" 미 조지아주 첫 흑인 상원의원의 사모곡
[경향신문]
미국 조지아주에서 첫 흑인 상원의원에 당선된 라파엘 워녹(51)이 당선 소감으로 팔순이 넘은 노모에게 헌사를 바쳤다. 워녹은 5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현역인 공화당 켈리 뢰플러 의원을 상대로 접전 끝에 대역전을 이뤄냈다. 그는 개표 윤곽이 분명해진 자정 무렵 ‘목화를 따던 82세 노모’를 언급하며 사모곡으로 승리의 감동을 전했다.
이날 워녹은 당선 소감 발표를 통해 승리를 선언한 뒤 “다른 누군가의 (밭에서) 목화를 따던 82세 된 손이 며칠 전 투표소로 가서 그의 막내아들을 미국의 상원의원으로 뽑았다”며 노모가 직접 자신에게 한 표를 행사한 일을 거론하며 “이것이 바로 미국”이라고 말했다. 워녹은 “따라서 나는 미국에서 역사적인 이 순간에, 나를 이곳까지 인도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여정이 이곳에서 일어났음을 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오늘 밤 당신 앞에 왔다”며 “우리는 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희망과 고된 노력, 그리고 우리를 지지해주는 이들과 함께 라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워녹은 조지아주 서배너에서 가난한 집안의 12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났다. 워녹의 부친 조너선은 제2차 세계대전에 육군으로 참전하면서 자동차 관련 기술을 배웠고, 이후 작은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했다. 워녹은 평일이면 이 정비소에서 일했고, 주말에는 오순절 교회에 나갔다. 워녹의 어머니 벌린은 자라면서 십대 시절 여름이면 담뱃잎과 목화를 수확했다고 워녹은 회상하기도 했다.
워녹의 부모 모두 목사로 활동했다.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 오순절 교회에서 모친 벌린이 설교단에 올랐다는 점은 워녹 가문이 성경 해석에 개방적임을 보여준다고 NYT는 전했다. 워녹 또한 일찌감치 부모로부터 종교적 영향을 받아 불과 11살의 나이에 설교를 시작했다.
대표적인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모교인 모어하우스대에 연방정부 무상 장학금을 받고 진학한 워녹은 목사 지망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설교로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워녹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 촉망받는 목사이기도 했다. 2005년 흑인 민권 운동의 대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생전에 설교하며 목회활동을 펼치던 에버레저 침례교회의 최연소 담임목사가 됐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흔적이 남은 교회이기도 하다.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을 이끌다 지난해 7월 타계한 존 루이스 민주당 하원의원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워녹은 당시 장례식에서 추모 설교를 했다.
워녹이 정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 제도인 ‘메디케이드’(Medicaid) 확대 운동을 이끌면서부터다. 당시 워녹은 마약 중독과 소득 격차로 시달리는 흑인들을 위해 건강보험개혁법에 따라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지원)를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2006년 쓴 학위 논문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워녹은 이후에도 “필수노동자들에게 적절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는 등의 사회 참여적인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NYT는 워녹 후보의 승리는 공화당 텃밭이었던 조지아 정치 지형의 변화는 물론 미국 내 기독교 좌파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평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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