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3만9000가구 푼다더니, 정부 전세대책 '뻥튀기'

정순우 기자 2021. 1. 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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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무주택자에 공급 약속했지만 정작 내놓은 건 1만4000가구뿐

정부가 ‘전세난 해법’이라며 비어 있는 공공 임대주택을 일반 무주택자에게 전셋집으로 제공한다고 했지만, 실제 공급되는 주택 수는 애초 발표 물량의 3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요가 많은 서울은 계획했던 5000여 가구 중 1000가구 정도만 시중에 공급되는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작년 11월 정부 발표 후 행정 절차를 진행하는 사이 임대주택 거주 요건을 갖춘 저소득층의 신청이 몰리면서 공실(空室) 상당수가 채워진 것이다. 정부가 전세 대책을 발표할 때 공급 규모를 늘리는 데만 급급해 기존 주택까지 신규 공급인 것처럼 ‘조삼모사’ 정책을 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 화성시 LH 임대주택 100만호 기념단지인 동탄 공공임대주택의 복층형 세대 내부. 2020.12.16/연합뉴스

정부는 작년 11월 전세 대책에서 3개월 이상 비어 있는 전국의 임대주택 3만9093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이 중 서울 공급 물량은 4936가구였다. 그러나 현재 SH와 LH가 모집 중인 빈 임대주택은 1057가구로 정부가 밝힌 공급 계획에 턱없이 모자란다. 계획 대비 5분의 1 정도만 실제 공급되는 것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지난달 30일 장기 미(未)임대 임대주택 957가구에 대한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고 오는 15일까지 접수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지난달 21일부터 서울의 빈 임대주택 100가구 입주자를 모집 중이다. 원래 이 임대주택들에 입주하려면 소득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이번 모집에서는 요건이 없어지거나 완화됐다.

전국 기준 공실 임대주택 입주자 모집도 1만4229가구로 정부 발표 물량의 36.4%에 불과하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정부 정책은 무엇보다 정확성이 핵심인데, 공실이 확실하지도 않은 집을 신규 공급 물량처럼 발표하는 것은 국민들의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애초 정부가 공실 임대주택을 전세 대책에 포함할 때부터 시장에서는 ‘숫자를 늘리려 무리수를 둔다’는 비판이 나왔다. 주택 순증(純增) 효과가 전혀 없는 주택을 공급이라 표현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논리였다. 오히려 정부가 공공 임대주택을 일반 무주택자에게까지 공급하기로 한 것이 공공 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갖춘 저소득층의 불안 심리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대책을 만들 당시만 해도 단기간에 공실이 얼마나 해소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며 “이번 모집 공고에서 빠진 주택도 소득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들에게 전세형(임대료의 최대 80%가 보증금)으로 공급됐고, 그 사람들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비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장에 전·월세 매물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셋집을 찾는 수요자의 눈높이를 공공 임대주택이 충족할지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이 많다. 서울에 풀리는 SH 임대주택 957가구 중 3인 이상 가구가 살 수 있는 전용면적 50~85㎡는 80가구에 불과하다. 절반 가까운 412가구는 원룸이다. LH가 서울에 공급하는 100가구 중에서도 방이 3개인 집은 11가구뿐이다. 아파트는 한 채도 없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아파트 전셋집이 부족한 게 전세난의 원인인데, 원룸·다가구 중심인 공공 임대주택은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주거 복지 정책인 공공 임대를 집값, 전셋값 안정에 활용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공공 임대주택의 질을 높이고자 올해 ‘공공 전세’라는 제도를 신설했다. 기존 주택을 평균 6억원에 사들여 시세보다 저렴하게 전세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평균이 6억원이니 7억~8억원짜리 주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변창흠 신임 국토부 장관 역시 공공 임대주택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6억원(전세 약 3억원)짜리 집에 전세로 살 만한 사람에게 정부 재정이 투입된 공공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이 세금 낭비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정부 재정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6억원짜리 공공 임대주택을 하나 만들면 취약 계층을 위한 2억원짜리 공공 임대 3채가 사라지는 셈”이라며 “공공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보다는 민간 전세 공급자인 다주택자의 순기능을 인정하고 일부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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