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구조신호 보낸 정인이..경찰·보호기관은 양부모 해명만 들었다

강재구 2021. 1. 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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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비극']정인이 사건 되짚어보니
세번의 신고, 양부모 주장만 듣고 종결
`정인이 사건\

양부모의 학대와 방조로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입양 전 이름)이가 숨지기 전 아동학대 정황을 알리는 신고는 세차례 있었다. 세번 모두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은 현장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판단은 소극적이었고, 대응은 적절치 못했다. 이들은 정인이의 신체 곳곳에 부어오른 멍과 상처보다 양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동안 아동학대 사건에서 수없이 반복돼온 패턴이다. 결국 정인이는 지난해 10월13일 병원에서 16개월의 삶을 마감했다. 6일 경찰청과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 등이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에게 제출한 당시 기록들은 정인이를 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허무하게 날렸음을 보여준다.

“멍이 아니라 마사지” 말 듣고 1차 신고(5월23일) 묵살

정인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은 정인이의 허벅지를 보고 ‘멍 자국이 있다’며 아보전에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은 아보전은 같은 날 정인이와 양부모, 담임교사 등을 상대로 아동학대 조사를 진행했다. 양부모는 “오다리를 교정해주기 위해 다리 마사지를 해줬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양부는 양손으로 마사지를 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아보전은 방임이라 판단했고 이튿날 양천경찰서에 수사의뢰를 했다. 경찰은 같은 달 27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수사에 나섰다. 양부모와 신고자를 조사했고 입양자료 분석에 나섰다. 그럼에도 경찰은 6월16일 내사종결 처리를 했다. 학대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아보전이 진행했던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는 무력했다. 아보전이 현장조사 당시 내렸던 정인이의 아동학대 위험도는 3점(총점 9점)이었다. 분리조치나 응급조치 등을 고려해야 하는 기준인 4점보다 1점 낮았다. 평가항목 9개 중 2개는 ‘아동이 학대자에게 두려움 등을 표현한다’, ‘아동이 분리보호 의사를 표현한다’였다.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정인이가 애초에 답할 수 없는 문항이다. 이들은 두 항목 모두 ‘의사표현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장은 “2살 이하 영아는 의사표시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인데 이를 평가 기준으로 잡는 건 부적절하다”며 “평가 기준을 생애주기별 특성에 맞게 세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0분 정도만 차에 뒀다”는 말에 2차 신고(6월29일)도 놓쳐

양부모의 지인 ㄱ씨는 “차량에 홀로 30분가량 방치됐다”며 아보전에 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신고 당일 학대예방경찰관(APO) 1명과 아보전 직원 2명은 양부모의 주거지에서 합동조사를 진행했다. 양모는 ‘아동을 혼자 둔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당시 아보전이 매긴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점수 또한 분리조치 기준인 4점에 못 미치는 2점이었다. 7월3일 아보전은 경찰에 수사의뢰를 했다. 아보전은 당시 정인이 쇄골에 실금이 갔다는 사실도 파악해 경찰에 전했다. 경찰이 1차 신고를 내사종결한 지 겨우 18일이 지난 뒤였다. 경찰 조치는 더뎠다. 7월23일에야 양모를 피의자로 조사하고, 차량 방치 현장을 찾았다. 방치 현장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영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쇄골 부위는 쉽게 다칠 수 있다는 병원 의견과 “10분 정도만 차에 뒀다”는 양모 진술 등에 근거해 8월12일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김영주 변호사는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조사가 늦어지면 재학대가 발생할 수 있고 당사자나 참고인 진술 등이 변할 수 있어 특히 더 신속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양부모 반발에 마지막 기회(9월23일) 날려

정인이의 어린이집 원장은 정인이의 ‘영양상태가 불량하다’며 양부모 몰래 정인이를 소아과에 데려갔다. 정인이를 진료한 의사 ㄴ씨는 정인이의 체중이 1㎏ 줄어든 것을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112로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당시 ㄴ씨가 경찰에 신고한 녹취록을 보면 “어린이집 원장이 데리고 온 아이가 과거에도 경찰과 아보전에서 몇번 출동을 했던 아이라고 한다. 한두달 만에 (어린이집에) 왔는데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로 영양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엄마 몰래 선생님이 병원에 데려왔다”고 말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같은 날 아보전과 함께 정인이의 집으로 출동했다. 경찰관 4명, 아보전 직원 2명이 조사에 나섰고 분리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보전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 점수는 여전히 3점이었지만, 세번 신고 중 처음으로 ‘즉각적인 처치 필요’ 항목에 체크 표시가 됐다. 하지만 양부모는 분리조치에 강하게 반발했다. 양부모는 “아동 입안에 염증이 나 이유식 및 물 섭취가 어려웠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아보전과 협의 뒤 양부모가 분리조치를 강력히 반대하고 신체상 학대 정황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보전에서 사례관리(모니터링)를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아보전은 객관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이날 ㄴ씨가 아닌 다른 소아과로 정인이를 데려가 의사 ㄷ씨로부터 “구내염 등으로 몸무게가 줄 수 있으나 아동학대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소견을 받았다. 당시 아보전은 ㄷ씨에게 사전에 정인이가 아동학대 의심 아동이라는 정보를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보전은 ㄷ씨의 진단을 근거로 경찰에 수사의뢰를 하지 않았다. 정인이를 마지막으로 살릴 기회가 날아간 것이다. 이배근 회장은 “의사들의 소견이 엇갈렸다면 보수적으로 판단해 첫번째 의사 소견을 존중하거나 아동학대 관련 의사를 찾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재구 이주빈 전광준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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