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처 '공기 단축 강요' 책임 못 물어..이천 화재 참사, 언제든 반복
발주 팀장 이례적 처벌 불구
설계변경 책임만 물어 '집유'
[경향신문]
여야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합의 내용에는 공기 단축 등을 강요한 건설공사 발주처의 책임을 묻는 조항이 빠져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이천 물류창고 화재처럼 대형 인명 사고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8명의 사망자를 낸 이천 물류창고 화재는 발주처의 공기 단축 요구가 발단이 됐지만 발주처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을 통해 6일 확보한 이천 화재 1심 판결문을 보면,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발주처 (주)한익스프레스 경영기획팀장 A씨에게 지난달 29일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산재 사망 사고로는 이례적으로 발주처 관계자가 처벌을 받았지만, 법원은 공기 단축이 아니라 설계 변경만 유죄로 봤다. 당초 설계에는 작업자들의 대피로가 있었지만 A씨는 냉동창고의 결로 위험을 고려해 이 대피로의 폐쇄를 결정했다. 이로 인해 피신하지 못한 지하 2층 작업자 4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친 데 대해서만 책임을 물은 것이다.
하지만 화재는 가연성 소재인 우레탄폼 설치 작업과 배관을 연결하는 용접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다 용접 불티가 우레탄폼에 옮겨 붙어 발생했다. 발주처가 목표로 한 준공 날짜를 맞추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작업자가 현장에서 일하는 바람에 대형 참사로 번졌다. 공기 단축이 화근이었던 셈이다.
1심 법원도 발주처의 공기 단축 지시를 일부 인정했다. 다만 화재경보설비 미설치, 대피훈련 미실시 등 시공사나 감리담당자의 안전조치의무 위반이 대량 인명 피해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또 2019년까지는 발주처의 공기 단축 지시가 있었으나 2020년 들어서는 지시 증거가 명확지 않다고 봤다. 기존 법과 판례를 따른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건설공사 발주자의 무리한 공기 단축과 공법 변경을 금하고 있지만, 이를 사망 사고와 연결지어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이에 정의당 등은 건설공사 및 선박제조업 발주자의 공기 단축 강요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정부안에서 삭제된 데 이어 여야 협의에서도 빠졌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발주처의 공기 단축 지시 등이 사고의 근본 원인임에도 공기를 단축할 때 사망 발생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은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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