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용 칼럼] 윤석열은 정권과 담합을 거부했다
경제에서 담합은 소수의 판매자들이 경쟁을 회피하고 높은 이윤을 얻을 목적으로 합의에 의해 재화나 용역의 가격, 생산량, 거래조건 및 대상 등을 제한하는 공동행위를 말한다. 가격 담합은 담합 가격을 책정하고 각 판매자의 비용 조건에 따라 생산량을 배분하여 서로 경쟁할 때보다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일단 담합이 이뤄지면 담합 가격이 (한계)비용을 초과하므로 각 판매자가 몰래 생산량을 늘려 담합 가격이 유지되지 않는다. 그 결과 서로 간의 신뢰가 깨지고 담합은 와해된다. 1970·80년대에 위력을 떨쳤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최근에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담합은 재화나 용역의 판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여러 곳에 존재한다. 출신학교, 사는 지역, 업종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는 곳들이다. 물론 사람들이 이런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를 다른 관계보다 더 가깝게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또한 이로부터 생기는 모든 관계를 담합으로 여길 이유도 없으며, 실제로 그렇지도 않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한국 사회 곳곳에 널려 있는 담합의 배경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공동으로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있으면 담합할 유인을 가지며 이득이 클수록 담합은 견고해진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추천서(스펙) 품앗이는 강남에서는 다들 하는 것이고, 사모펀드 투자도 원래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어느 인사의 말은 그런 담합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뜻과는 다른 당론(黨論)에 따르도록 강요되는 정당 주도의 담합도 있다. 국회의원은 유권자나 소속 정당에 완전히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독립성을 가진 존재라는 주장이 맞지만, 한국의 정당들은 의원들에게 강요된 담합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를 요구한다. 이에 거부하는 자를 배신자로 취급하기도 한다. 혹여 국가 예산이나 국책 사업을 둘러싼 정당끼리의 담합은 없는지 모르겠다.
지난 1년여 동안 한국 사회를 아주 소란스럽게 했던 법무부와 검찰의 대립은 정권 유지를 위한 담합에 균열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징계위원회의 2개월 정직 처분을 대통령이 재가한 데 대해 검찰총장 측이 제기한 징계처분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 소송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검찰이 집권 세력에 우호적 행보를 보여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원했든지 원하지 않았든지, 검찰은 집권 세력의 정권 유지를 위한 담합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서슬 퍼런 독재정권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예전처럼 의당 그래야 할 검찰이 정권과의 담합을 거부한 것이 이번 사건의 발단이다. 정권으로서는 정권 유지의 중요한 축이 되어야 할 검찰이 담합을 거부하고 엄정한 사건 수사를 고집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정 사건에 관련된 인사들은 내심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현 정권은 정의와 공정 실현을 위해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검찰을 압박하고 있지만, 그런 개혁이 허구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정권이 검찰에 부당한 압력을 가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검찰개혁이라는 것도 다 안다. 그래서 지금 요구되는 것은 정치 개혁이라는 것도 잘 안다. 정권이 검찰을 정권 유지를 위한 담합에 끌어들이지만 않으면 검찰은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경쟁을 억제하고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울타리를 치는 담합에 정의와 공정은 없다. 인간관계나 권력관계로부터 생기는 끈끈한 담합은 경제적 담합과 달리 와해되기도 어렵다. 다만 도덕적 행위에는 유쾌한 감정을, 부도덕한 행위에는 불쾌한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정의감이 널리 확산될 때 와해될 수 있다. 결국 개인들의 도덕 문제로 귀결되는데, 이번 사건은 그런 '도덕성의 깨어남'이라는 점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현 정권은 출범 초부터 줄기차게 공정을 외쳐왔다. 그런데 정작 공정한 수사 행위를 다시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겁박하는 것을 보면 정권의 부도덕성과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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