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양력 설을 쇠시오".. 일제의 '억지춘향' 新正
조선총독부 신정 강압 장려 '설날' 핍박 조선인 '倭설' 강한 저항감 음력설 고수 차례 못 지내게 하고 떡집도 문닫게 해 1942년 '설날용 고기 특별 배급' 생색도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 1일은 신정(新正)이다.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은 구정(舊正)이라고 부른다. 신정은 일본이 강요한 명절이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신정을 강압적으로 장려하면서 음력 1월 1일인 '설날'을 핍박했다. 이에따라 1년에 새해를 두 번 맞는 상황이 빚어졌다. 그 시절 신정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신정이 일본의 명절이다 보니 일본인이 많이 사는 '남촌'과 조선인이 많이 사는 '북촌'의 분위기가 완연히 달랐다. 남촌은 신정이라고 도소주(屠蘇酒)를 마시고 집집마다 서로 인사를 다니느라 왁자지껄했다. 반면 조선인이 많이 사는 북촌은 조용했다. 1932년 1월 2일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이런 정경이 담겨있다. "새해 첫날! 동천에 해가 떠오르자 신년의 행복을 서로 축복하는 연하장이 가가호호에 휘날린다. 경하(慶賀)의 깃발을 꽂은 전차, 자동차가 기운차게 달린다. 신년맞이에 정장을 갖춘 남촌 일대의 세배꾼들은 이른 아침부터 희희낙락하며 가가호호에 넘나들고 있다. 정오가 못 되어 벌써 도소주에 취한 사람들이 휩쓸고 있는 거리 거리는 신정의 기분에 차고 넘친다. 그러나 아직 음력 설을 지켜오는 조선인 북촌 일대는 한산하기 짝이 없다."
'도소주'란 때려잡을 도(屠), 사악할 소(蘇), 즉, 사악한 존재(전염병)를 도륙낸다는 약주(藥酒)다. 정월 초하룻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마시는 세시풍속주로, 도라지에 여러 약재를 넣어 만들었다. 특이한 점은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선 나이 어린 사람부터 마셨다고 한다. 나이 먹은 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장 어린 사람 순서로 마셨다고 한다.
일제는 신정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신정에 특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1942년 12월 12일자 매일신보에는 '설날용 고기 특별 배급, 1회 배급량 10배까지'라는 제목으로 관련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빛나는 전과(戰果) 속에서 맞이하는 설날에 영양분 있는 고기를 먹고 몸을 튼튼하게 하여 대동아전쟁 필승에 한층 굳센 힘을 바치게 하자는 따뜻한 마음에 당국에서는 설날을 앞두고 소고기와 도야지고기를 백만 도민에게 일제히 특별배급키로 하였다.(중략) 일반 개인 가정의 배급 수량은 1회 배급량의 5~10배 이내로 한하며, 이 특별 배급에 필요한 소는 250두, 도야지는 1000마리인데 벌써 확보되어 있다고 한다."
당시는 이른바 '대동아전쟁' 시기였다. 전쟁을 하느라 일제는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조선에서 생산된 식량을 빼앗으면서 배급 제도를 실시했다. 가끔씩 이렇게 신정 같은 명절에는 특식을 제공하며 생색을 냈다. 이런 신정의 뿌리는 양력 도입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1895년 10월 친일 김홍집 내각이 추진한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이듬해 1896년 1월 1일부터 음력이 폐지되고 양력이 도입됐다. 하지만 양력 도입에 반발이 많았다. 한 해의 시작은 양력 1월 1일이 아니라 음력 1월 1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어서 우리의 전통 명절은 여전히 설날이었다.
앞서 일본은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2년 11월 양력을 도입해 음력설을 양력설로 대체했다. 일본인은 새 역법에 순응했지만 조선 백성은 달랐다. 백성들은 '왜(倭)설'이라며 저항감을 크게 느끼며 음력 설을 고수했다. 이에따라 조선총독부는 '이중과세'(二重過歲·설을 양력과 음력으로 두 번 쇠는 것)라는 용어를 만들어 '음력 설 죽이기'에 나섰다.
다음은 1938년 1월 2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이중과세의 폐풍(弊風) 금지'라는 제목의 기사다. "금년부터 세력(歲曆)을 일체 양력으로 사용하기로 하였고, 또 종래의 고루한 이중과세의 폐풍을 버리기 위하여 지난 신정에 과세를 행할 것을 장려해서, 각지 농촌은 거의 8할 이상이 양력으로 과세하였고 오히려 도시가 뒤떨어진 감이 있는 터인데, 이제 다시 음력 정월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일반은 의연히 전통을 버리지 못하고 양력으로 과세한 사람도 다시 음력 과세를 하려는 경향이 있으며,(중략) 총독부에서는 될 수 있는대로 이중과세를 피하고 생활 개선을 장려하기 위하여 각 지방의 일선단체를 총동원하여 양력 사용 장려와 이중과세 방지에 노력하게 하고, 그 수단 방법은 지방에 따라 다소 다르나 대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실행시키기로 되었다 한다."
같은 기사에는 일제가 어떤 조치를 통해 음력 설을 몰아내고 양력 설을 강제로 쇠게 하려고 했는지 잘 나타나 있다. "첫째로 종래에는 음력 정월 초하루에 각 가정에서 차례가 있는 것을 고려하여 각 학교에서는 아침 등교를 늦게 시작하고 또는 오후에 일찍 끝나는 예가 있었는데, 금년은 이것을 절대 금지할 것, 둘째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 각 지방에 따라 적당한 부역(賦役)과 청결(淸潔) 등을 일반에 실행시켜 이날을 사회봉사에 힘쓰게 하는 날로 만들 것, 이런 등등으로 음력 정월을 설답지 못하게 해야할 것이다." 즉, 음력 설을 쇠지 못하도록 학교에 늦게 등교하거나 일찍 파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또 지역별로 부역이나 청소 활동을 시켜서 음력 설을 쇠는 것을 방해했다.
1940년 2월 8일자 동아일보에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실려있다. "1940년 구정을 앞두고 전북 임실군 둔남면 면사무소 직원들은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떡을 못 하게 하고 만약 떡을 하면 빼앗아 동청(洞廳)에서 사람들이 나눠 먹게 했다." 이처럼 일제는 일선 공무원이나 경찰들을 동원해 음력 설 때 차례를 못 지내도록 떡집을 문닫게 하고 소 도살을 금지시키는 등 조직적으로 훼방을 놓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무리 힘으로 빼앗으려 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 잠시 바람에 엎드리는 풀처럼 고개 숙일 수는 있겠지만 끝내 부러뜨릴 수는 없는 풀처럼 말이다. 당시에는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음력 설을 지키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요즘의 신정은 명절이기보다는 새해를 시작한다는 의미가 강해졌다. 신정이든 설날이든 새해 첫 시작을 의미한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뒤숭숭하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워 달력에 표시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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