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단순화의 오래된 습속과 맞서야 / 류웅재
류웅재ㅣ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말 많던 미국 대선은 조 바이든을 연방총무청이 승자로 공식 확정했고,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가 최근 상원 본회의 연설에서 바이든의 승리를 축하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정리되는 국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불복 입장을 이어가겠다고 하지만, 이는 공화당 지도부나 내부 분열을 가속화할 뿐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 사회도 많은 사람들이 지난해 말 미국 대선에 큰 관심을 갖고 그 결과와 유사하게 양극화한 여론을 보여주었다. 특히 일상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미국의 ‘샤이 트럼프’ 현상처럼 분명하게 지지자를 밝히지 않지만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이었다. 한 예로 대북 문제를 포함한 외교와 경제 등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며 그의 재선이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시에 많은 이들은 한때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것처럼 보였던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일련의 장기적 의도를 내장한 것이라기보다 재선을 위한 우발적인 이벤트 정치의 한 사례였음을 알고 있다. 복잡한 외교 현안에 있어 쌍방 간의 손쉬워 보이는 합의가, 사실은 어떠한 진전 없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마는 현상은 정치와 외교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이상한 일이라 볼 수 없다. 이는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복잡한 현실만큼 그 접근과 해법 역시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일깨워준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현실이란 외피를 뒤집어쓴 위선이나 폭력과 다름없다. 이러한 양자대립적 논리는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 사이, 상이한 것처럼 보이는 무성한 말들에 의해 증폭되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이념이나 말이 각자의 선과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경쟁하지만, 현실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어려운 정치의 영역뿐 아니라 경제, 대학, 언론, 문화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세계관과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남진과 나훈아, 또는 유재석과 강호동의 라이벌 구도는 잘 알려져 있고, 이러한 프레임은 언론 기사나 문화산업적 흥행을 위해 조장되고 증폭되는 측면이 강하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들 외에 개인의 취향과 선호에 따라 더 큰 감동과 삶의 의미를 주는 가수나 셀럽들이 많다는 사실을. 평론가를 비롯한 음악 좀 아는 이들은 나훈아가 남진에 비해 가창력도 뛰어나고 더 많은 히트곡을 가지고 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남진과 동향인 사람들, 베트남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전우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던 소시민들에게 그런 세평은 무의미할 것이다. 최근 각종 프로그램에서 독주하는 유재석의 팬들은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박미선이나 홍석천, 장도연 등 개인의 다기한 취향과 삶에 더 큰 의미와 희망을 주는 연예인들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코로나19의 종식과 이후를 예단하는 성급한 논의 역시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사스나 메르스 이후, 다시 그런 전염병의 공포는 없을 것이라는 기대에 반해 더 큰 인수공통감염병에 온 세계가 경험하는 비극은 참담할 지경이다. 그러니 백신의 개발이, 테크놀로지와 문명의 진전이 삶의 고통과 비애를 근원적으로 치유하거나 해결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복잡한 원인을 단순화해 모든 문제를 손쉬운 상상의 적을 세워 돌파하려는 오래된 습속에 담대하고 용기 있게 맞서 나가야 한다. 특히 요즘같이 확증편향이나 검증되지 않은 무성한 말과 소문들이 강한 수준의 교조적 신념과 집합적 기억으로 전환하는 이른바 포스트트루스(post-truth)의 시대, 중간적 완충지대를 보호하고 이것이 건강한 공론장과 문화로 선순환하기 위한 정치와 언론, 교육과 시민사회의 노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코로나19를 우한바이러스라 표현했고 소수자를 향한 증오와 날조의 언어를 남발했던 국가의 지도자는 광범위한 전염과 막대한 인명 피해, 사회적 혼란을 막지 못했고 재선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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