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전종서, 기묘한 에너지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기묘한 에너지다. 살벌한 눈빛과 더러운 입, 폭주하는 감정 때문 만은 아니다. 이성은 마비, 감정으로만 추동하는 캐릭터는 과거에도 많았다. 이 연기는 설정과 디테일, 톤 앤 매너가 잘 정리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다.
전종서가 영화 '콜'(감독 이충현)로 돌아왔다. 2018년 영화 '버닝'으로 데뷔해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창동의 신데렐라'는 온데간데없었다. 두 번째 영화는 첫 번째와는 전혀 다른 얼굴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인상적인 결과물을 또 하나 만들어냈다.
'콜'은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된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여자가 서로의 운명을 바꿔주면서 시작되는 광기 어린 집착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코로나19 여파로 극장 개봉을 미룬 끝에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 안방극장을 통해 공개됐다.
전종서는 1999년을 살아가는 영숙으로 분해 2019년을 사는 서연(박신혜)과 전화 한 통으로 소통한다. 서로 다름에 대한 호기심으로 교감하던 두 사람은 오해로 인해 틀어지고 과격한 에너지를 지닌 영숙은 폭주하기 시작한다.
여성 투톱 영화지만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건 전종서다. '버닝'에서도 신인 답지 않은 담대함으로 놀라움을 안겼지만 '콜'에서는 한 치의 어색함이나 서투름을 지적할 것 없는 완벽한 연기로 자신의 성장을 알렸다.
◆ "동물적 에너지의 근원? 순간순간의 내 감정에 충실"
영화 '콜'에서의 전종서는 영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루니 마라를 떠오르게 할 만큼 강렬했다. 한국 영화 어디서도 본 적 없었던 캐릭터와 룩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더 놀랐던 건 본능을 기반으로 하되 치밀한 계산이 더해진 연기라는 것이었다.
"어영부영 만들어질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눈빛부터 시작해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살아있었으면 했어요. 그러면서 너무 무게를 잡고 진중하게 하기는 싫었고요. 그래서 반대로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을 상상하며 접근했던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 영숙은 극과 극을 달리는 캐릭터로 탄생했다.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중반 이후엔 상처 입은 짐승처럼 돌변한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한다.
"일부 장면은 엄마에게 학대받고 상처 받은 동물로 생각하고 임했어요. 엄마한테 채찍질당한 등을 보여주는 신 등이 그랬죠. 그러나 영숙이라는 캐릭터의 접근은 인간적으로 하려고 했어요. 스위치가 켜지기 전까지는 여린 소녀라고 생각했어요. 몇십 년간 집에 갇혀서 나물과 한약재만 먹으면서 고립된 생활을 하잖아요. 서연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친구가 된 거고, 그 관계를 유일한 빛처럼 여기다 보니 그 관계가 틀어지면서 폭주하게 되는 거죠. 영숙이 왜 분노하고 슬퍼하고 폭발하며, 서연에게 그토록 집착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캐릭터로 침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건 마인트 컨트롤이었을 것이다. 인물을 이해한 뒤에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몸을 만들기 위해 음식을 먹듯 시간 날 때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수집했어요. 새빨간 색, 분수처럼 피가 쏟아지는 장면 등 자극적인 사진을 많이 봤어요. 작은 악마, 독방에 갇힌 여자아이, 노란 우비를 입고 산속으로 비 맞으며 빨간 배낭을 메고 뛰어가는 작은 여자아이 뒷모습도 기억에 남아요."
영화 속에서 영숙이 빠져있는 서태지의 음악에도 심취했다고 했다. 또한 촬영 당시 유행했던 미국 팝스타 빌리 아이리시의 기괴하면서도 중독적인 음악과 이미지에도 빠져있었다고 했다. 그 결과일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동물적 에너지를 영화 내내 분출해냈다.
"스스로 동물적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전 연기할 때는 생각하면서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느껴지는 대로 표현하고 감정적으로 감추지 않으려고 해요. 순간순간 느끼는 제 감정에 충실한 편인 것 같아요."
전종서는 이번 영화에서 20대부터 40대를 넘나드는 연기를 펼쳤다. 놀라웠던 40대 영숙을 연기할 때의 디테일이었다. 외모에 변화를 주기보다는 연기에 미세한 변화를 줘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게 했다. 그 시작은 목소리였다.
"20년의 세월이 지나 40대가 된 '영숙'의 경우엔 억지로 꾸며내는 연기가 아닌 내가 이해한 걸 바탕으로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연기하려 했어요. 20대 영숙을 할 때 특별히 20대와의 큰 차별점을 둔다면 그게 부자연스러울 것 같아 많은 변화를 준다기보다는 속도를 빼거나 에너지를 빼고 여유를 추가하고, 음산, 서늘하게 하려 표현했어요. 또 외로워 보이는 고독함을 가져가되 좀 더 날카로운 식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관객들도 영화를 보다 보면 제가 그랬던 것처럼 '영숙'의 행동을 이해하고 반감보단 충격과 놀라움, 신선함을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 속 모든 장면이 범상치 않은 에너지로 가득하지만 스스로가 꼽기에도 소름 돋는 장면이 있을 것 같았다. 전종서는 '엔딩'이라고 답했다.
"40대와 20대 영숙이가 내통을 한다는 부분이 좀 끔찍하게 느껴졌어요. 이 모든 것들을 영숙이는 모두 다 알고 있었던 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해요. 40대 영숙이 20대 영숙을 조정하고 있었을 수도... 물론 거기 변수는 있겠지만요. 20대 영숙은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아서 40대 영숙의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고 그래서 서연을 도와주기도 해요. 그런데 40대 영숙은 거기에 반대를 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등 오만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연기를 할 때는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었어요. 그래서 감독님이 만든 에필로그가 제게는 더 소름 끼쳤던 것 같아요."
◆ "미친 영화를 해보고 싶다"
전종서는 '넥스트(NEXT)'가 궁금한 배우다. 신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배우가 차기작으로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긴 게 '버닝'이었다면, '콜'은 일말의 우려마저도 변화와 성장으로 날려버린 결과였다.
그렇다면 이토록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발산한 '콜' 다음에는 또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전종서는 쉬지 않고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할리우드 진출작 '모나리자 앤드 더 블러드문'의 촬영을 마쳤고, 지금은 독립영화계의 기대주 정가영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우리, 자영'을 촬영 중이다. 두 영화 모두 장르의 전형성을 탈피한 영화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매 작품 강렬함을 발산하는 배우들이 가진 한계는 하나의 톤에서만 강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전종서는 '강렬한 에너지'로 대표되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연기를 하다 보면 많은 부분 제 모습을 투영해야 하잖아요. 100% 그 역할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은 부분 저를 드러내야 하니까요. 로맨스물 같은 건 제겐 좀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느껴져요. 물론 좀 더 경험을 쌓고 나중에는 생각해볼 수 있겠죠."
수채화 같은 멜로 영화의 여주인공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말이었다. 대신 "여자가 하긴 버겁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확고한 취향을 밝혔다.
"해보고 싶은 게 굉장히 많아요. 기존에 없었고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나 여자 배우가 하긴 버겁다고 흔히들 편견을 갖고 있는 그런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조바심을 내는 것들에도 도전장을 내밀고 싶어요. 또 한국에 대해 소개할 수 있고 한국 배우들에 대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우리 문화나 매력, 스타일이 뭔지 외국 시장에도 소개할 수 있는 영화도 좋고요. 총을 든 소녀 이미지를 생각해본 적도 있죠. 또 부성애에 대한 영화도 좋을 것 같아요. 누구 눈치도 안 보고, 좋은 의미로 '미친 영화'를 만나고 싶어요. 그게 허락될 수 있는 정서가 만들어졌으면 해요. 그런 정서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배우가 역할을 하고 참여할 수 있다면 제가 하고 싶어요."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해 보이는 이 배우는 대중과 좀 더 가깝게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도 살짝 내비쳤다.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하고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기회가 왔어요. 때문에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기도 했죠. 요즘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진 시대니까, 저도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물론 1번은 연기로 보여드리고, 영화로 얘기하고 싶어요. 그 외엔 사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면이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요. 그렇지만 관객들이 많이 사랑해주시는 만큼 저도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나지 않을까요."
매력적인 배우를 향한 대중의 욕구 중 하나는 내·외면을 더 알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배우에게는 본연의 모습을 알고 싶다는 욕망보다 작품 속 캐릭터로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할 때가 있다.
어쩌면 전종서가 그런 존재가 아닐까. 대중적으로 가까워지지 않더라도, 사적 영역이 베일에 가려져 있더라도, 그것이 이 배우의 고유성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면 기꺼이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이는 오랜만에 등장한 기묘한 배우를 향한 애정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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