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이재용 재판과 박근혜 사면 / 석진환
[편집국에서]
석진환ㅣ이슈 부국장
“판결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넘어 법관 개개인에 대해 공격이 가해지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저는 대법원장으로서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부당한 외부의 공격에 대해서는 의연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겠다.”
새해를 맞아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시무식사) 중 일부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 1심 선고와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처분 집행정지 결정 등을 둘러싸고 벌어진 과도한 판사 공격을 지적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 교수 판결은 좀 과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있지만 이는 항소심에서 다투면 될 일이다. 대법원장의 우려는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얼마든지 판사를 비판할 수 있지만, 판결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탄핵하라는 식의 주장은 설득력도 없고 갈등만 키운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아프게 받아들일 리 없다.
그렇다면 이런 비판은 아플까. “대한민국이 사법의 과잉지배를 받고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커졌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탄식이 들린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 총장 징계 정지 결정 뒤 이를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쓴 글이다. 그의 스타일처럼 신중하고 절제된 표현이긴 한데, 법원이 그리고 판사들이 아파할 것 같지 않다. 번지수를 잘못 짚어서다. 이 대표는 ‘윤 총장도 과오가 없지 않은데 징계가 법원에서 막혀 유감’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겠지만, 절차적 잘못이나 지나친 문책으로 ‘없던 일’이 되는 징계는 너무나 많다. 목적에 이르는 과정의 정당성을 가리는 건 당연한 법원의 역할이다.
이미 보도된 대법원장과 여당 대표의 발언을 장황하게 다시 인용한 건, 오는 18일 선고 예정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때문이다.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그와 상관없이 지난 1년 이상 진행된 이 재판의 ‘과정’이야말로 이 대표가 우려하는 ‘사법의 과잉지배’ 사례이자, 대법원장과 많은 판사들이 지키려고 하는 ‘사법부 신뢰’를 깨부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주문한 내용부터 해괴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 버금가는 과감한 혁신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 △재벌 체제 폐해 시정.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는 재판부의 이런 주문에 맞춰 만들어졌고, 재판부는 준법감시위가 잘 돌아가는지 보고 형량을 정하는 데 반영하겠다고 했다. 재벌 총수의 ‘과거 개인 범죄’ 형량을 그가 대주주인 ‘회사의 미래 범죄예방시스템’을 보고 깎아주겠다는 논리다. 특검과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재판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오죽하면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이렇게 일갈했을까. “돈을 빼앗긴 피해자(회사)에게 문단속 잘하라고 한 셈이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문단속을 잘하는지 눈으로 쓱 한번 보고 (돈 빼돌린 이의) 형량을 깎아주겠다고 한 것이다. 앞뒤가 바뀌어도 단단히 바뀐 재판이다.”
재판부가 18일 준법감시위를 이유로 형량을 깎는 결과를 내놓는다면 국민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앞서 살폈듯, 법원은 목적에 이르는 과정이 정당했는지 따지는 최후의 보루인데, 재판부조차 스스로 재판 과정을 공정하게 이끌지 않았다.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 두렵다.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선고 나흘 전인 14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법원 최종 선고가 있다. 새해 첫날부터 사면 논의를 공격적으로 던진 이낙연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사면 요건을 갖추게 되는 14일 선고 일정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표가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 전 대통령과 동전의 양면 격인 이 부회장 선고 일정까지 고려한 것 같지는 않다.
만일 이 부회장이 시민사회의 우려대로 재벌의 3-5 선고법칙(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적용받는다면 이 대표의 사면 승부수는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역시나 만약이지만, 최고 경제권력이 법원의 ‘통 큰 결단’으로 면죄부를 받고 두 전직 대통령은 정치적 결단으로 면죄부를 받는다면, 많은 이들이 상처받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요한 두 선고와 사면론까지 겹쳐 어지러운 논쟁이 이어질 듯하다. 초심을 생각하고 과정에 공을 들여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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