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세력 시효 만료..'공동체·법치' 중심 새 시대정신 등장해야

박진용 기자 2021. 1. 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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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그래도 정치가 희망이다]
<중> 혐오를 넘어 참여로
586세대 이념 투쟁에 익숙
민생·경제 대처 능력 부족
자리만 욕심내는 '꼰대' 로
특정 집단·극성 지지층 아닌
공공 위한 정치 세력 키워야
국회 사법개혁특위의 이상민 위원장이 지난 2019년 4월 문체위 회의실에서 열린 사법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검경수사권 조정안 패스트트랙 지정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자 야당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의석수를 앞세운 다수결의 원칙에 앞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합의해나가는 공화(共和)의 정신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막을 내리면서 운동권 세력은 명실공히 새로운 주류로 떠올랐다. 군사정권에 대항한 586세대가 정치권력의 헤게모니를 잡으면서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실현할 것이라는 희망도 새어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는 조국·윤미향 사태 등을 거치며 헛된 꿈에 불과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념 투쟁에 과도하게 몰입했던 운동권 세력을 대체할 새로운 세대가 하루빨리 부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곧 산업화 세력뿐 아니라 운동권 세력의 정치적 시효 만료를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정치 전문가들은 과거의 세력을 대체할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특정 집단과 극성 지지층이 아닌 공공을 위한 정치가 등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법치주의를 존중하고 정파적 이익을 넘어서 국가의 이익이라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화주의를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인물들이 부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권분립과 같이 헌법적 가치는 철저하게 준수하면서 사회적 약자 및 미래 세대와 동행하는 정치만이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제언이다.
◇‘능력 부족’ 586은 흑백TV 신세···확산되는 586 교체론=586으로 대표되는 운동권 세력은 지난 20년간 한국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김대중 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진입한 이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집권했던 약 10년 동안 야당으로서 탁월한 투쟁력을 과시하며 정치적 몸집을 키웠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명실상부한 집권 세력으로서 ‘국가 경영’을 직접 담당하게 된 가운데 약 4년이 지난 현재 국민들의 평가는 우호적이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세대교체의 필요성에 대해 지난 4·15 총선 이후 윤미향 사태 등 이들의 민낯이 드러나기 전부터 이미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실제로 1년 전 여론조사 전문 기관 ‘엠브레인’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86그룹(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퇴진론에 공감하는 비율은 73.4%에 달했다. 국민 넷 중 세 명은 586 퇴진에 동의한 것이다. 반면 86그룹 퇴진론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3.1%에 불과했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586 교체론의 목소리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당내 강성 의원으로 꼽히는 한 의원은 “86세대는 ‘민생과 경제에 무능하다’는 프레임에 속수무책이었다”며 집권 세력의 능력 부족을 공개적으로 지적해왔다. 586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자신들의 세대에 대해 거침없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최근 출간한 책에서 “586세대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고 능력을 갖춘 이들에게 자리도 내주지 않는 욕심 많은 꼰대’ 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586세대가 컬러TV가 등장했는데 거실에 떡하니 버티고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는 흑백TV와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는 자기반성이었다.

◇노조와 시민사회 장악···사회 변화 걸림돌 된 586=문제는 1980년대 투쟁의 경험을 공유하는 586세대가 국회는 물론 노동계와 시민사회·학계 등의 분야에서 공고한 기득권을 뿌리내린 채 일종의 카르텔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586 특유의 끈끈한 네트워크가 국회 세대교체와 청년 고용 확대, 사회적 격차 해소 등 한국 사회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불평등 세대’라는 책으로 화제가 된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386세대(현 586세대)가 정치·경제·시민사회 권력을 오랜 기간 독점한 결과 청년 세대의 일자리 부족과 여성의 노동시장 배제 등 각종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민주노총의 반발이 예상되는 ‘정규직의 양보’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소득 주도 성장부터 덜컥 추진하면서 청년 등 외부자가 진입할 일자리만 감소시키는 우를 범했다”고 분석했다. 한 여권 인사는 “최근 박원순 시장의 죽음과 관련해 여성운동 단체와 시민사회, 그리고 이들로부터 인재를 지속적으로 수혈받았던 여당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네트워크를 이어왔는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한때 사실상 동지였던 시민사회와의 관계 재설정이 근본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20·30세대의 지지 철회는 가속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화주의·법치주의’로 무장한 새로운 세력 출현해야=학계에서는 공화주의가 내면화된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확산되고 있다. 다수결이라는 이름으로 삼권분립을 위협하지 않고 권력의 자기 절제와 국가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화주의를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인물들이 새로운 정치의 주역이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현재 국회는 운동권이나 시민사회 경력을 내세운 이들이 집중적으로 충원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별다른 경력 없이 청와대 출신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공천받은 이들이 수두룩하다”면서 “정보기술(IT)·금융·과학기술 등 미래 어젠다를 선점할 수 있는 인사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래지향적인 전문성과 함께 법치주의와 공적 마인드를 갖춘 인재들이 국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진용·김혜린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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