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세' 이란, 동결자산 거론하고 오염 탓..억류 장기화 가능성

이원준 기자 2021. 1. 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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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70억불 자금 인질로 붙잡아"..외교적·법적해결 난망
"외교적 방문 불필요" 고자세도..협상 성과 불투명
4일(현지시간)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함정이 한국 국적 화학운반선 한국케미호에 접근하고 있다. 이란은 해양오염 활동을 한 혐의로 선박을 나포해 우리 국민 5명과 포함 선원 20명을 역류 중이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한국 국적 화학운반선 한국케미호와 선원 20명을 억류 중인 이란이 '나포는 해양오염 탓'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연일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는 곧 실무대표단을 이란에 급파해 선박과 선원이 빠른 시일 내 풀려나도록 교섭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지만, 이란이 대표단 방문을 놓고서도 탐탁지 않은 반응이라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전날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포한 한국케미호 억류 문제와 관련,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건 이란이 아닌 한국 정부라며 한국 내 동결된 자국 석유대금 문제를 거론했다.

라비에이 대변인은 "만약 인질범이 있다면 거짓 핑계로 70억달러 이란 자금을 인질로 잡고 있는 한국 정부"라며 "억류된 선박은 인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석유대금을 이란 국민에게 지급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도 하지 않았다"며 재차 책임을 떠넘겼다.

70억 달러는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로 국내 시중은행에 동결된 이란산 석유 수출대금을 가리킨다. 미 제재로 한국으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사실 이란은 지난해부터 대통령까지 나서 한국이 동결된 석유대금 문제를 해결할 것을 압박해왔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해 6월12일 "(한국이) 이란중앙은행 자금으로 기본재와 의약품, 인도주의적 물품을 구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고, 같은해 7월19일에는 이란 외교부가 한미관계를 주인·하인관계로 비난하면서 대금을 안 갚으면 국제소송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놨다.

한국과 이란의 교역 및 금융거래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2018년 이란 핵합의(JCPOA)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며 지난해부터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이번 억류 사건 배경에는 석유자금 문제가 있다는 해석이 많다. 이에 이번 우리 선박 나포에 대한 외교적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란 정부도 이날 70억달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결국 돈 문제와 연관됐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하지만 이란은 선박 나포에 관해선 '기술적 문제'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란 해양청이 한국케미호의 해양오염 활동 혐의를 포착하고 자국에서 사법절차가 개시됐다는 주장이다. 해양오염 혐의로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되면 사건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라비에이 대변인도 이날 "선박은 사법명령에 따라 나포된 것"이라며 "페르시아만 오염 혐의가 있어 억류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란 측은 선박을 나포한 당일부터 이러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우리 정부는 이란 현지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동시에 국제법에 따라 대응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우선 이란 정부가 주장하는 '해양오염 혐의' 여부에 대한 확인 작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을 반장으로 하는 실무대표단을 오는 7일 새벽 이란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대표단은 이란 측과 현지교섭을 통해 억류 문제 조기 해결에 나선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오는 10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이란을 방문, 선박 억류 상황 및 국내 동결된 이란 석유대금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외교부는 국회에 제출한 현안보고 자료에서 Δ환경오염 관련 이란 주장의 진위 Δ공해·영해여부 논란 Δ우리선박 승선과정에서의 국제법 준수여부 등 쟁점에 대한 사실 확인 및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외교부는 "선박의 이란 영해 침범 및 이란 혁명수비대의 승선, 나포 과정에서의 국제법적 위법성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외교부가 5일 오후 이란의 한국 선박 억류사건과 관련해 부내 대책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외교부 제공) 2021.1.5/뉴스1

그러나 이란은 정부 실무대표단 방문에 벌써부터 날 선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한국의 대표단 파견과 관련해 "이 문제는 기술적·법적 영역이기 때문에 외교적 방문은 필요하지 않다"며 "방문 일정도 합의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이란이 '고자세'로 일관하면서 억류 사태가 장기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자교섭에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국내 동결된 70억달러는 미 제재가 얽혀 있어 독자적 해결이 어렵고, 법적 대응은 오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란은 지난 2019년 호르무즈 해협에서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를 나포해 선박과 선원을 2달여간 억류한 전례가 있다. 당시 영국령 지브롤터 당국이 이란 선박을 억류한 데 대한 '보복성' 조치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란은 나포는 합법적 조치였다고 우기며 자국 선박이 풀려날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wonjun4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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