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눌러앉아 전세 씨 말라 .. 대기도 못 걸고 발길 돌려

나진희 2021. 1. 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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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단지 아파트 르포
강남·마포 등 매물 절반 이상 '뚝'
전셋값 감당 안돼 '탈서울' 가속화
전국 품귀현상.. 나흘 만에 3.4% ↓
전문가 "올 매매가까지 동반 상승
임대차법 완화.. 공급 물량 늘려야"
올라도 너무 오른 전셋값 6일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아파트 상가 공인중개업소 입구에 매매 및 전세 시세표가 붙어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물 잠김 현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9500여 가구 대단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인근 중개업소에 나와 있는 전세 매물은 8건에 불과했다. 남정탁 기자
새해부터 전세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수천 가구 대단지의 전세 매물이 10개도 안 될 정도로 ‘매물 잠김’ 현상이 나타난 데 더해 강남을 중심으로 전세금이 몇달 새 수억원씩 뛴 지역들이 적지 않아 봄 이사철을 앞둔 세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심지어 올해 주택 공급량은 작년보다 더 쪼그라들 예정이어서 ‘전세난’은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9000가구에 전세 고작 ‘8개’… “2억∼3억 뛰어 발길 돌리기도”

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의 전세 매물은 ‘9510가구 서울 대표 대단지’ 명성이 무색하게 8개에 불과했다.

가락동 A공인중개업소 투자자문실장은 “전체의 약 5000가구를 차지하며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전용 84㎡(구 33평)에서 전세 매물은 4개뿐이다. 나머지 평수에서도 다 합쳐 4개 정도가 전부”라며 “최초 입주가 1~3월 사이에 이뤄졌기 때문에 지금은 물건이 많이 나와야 정상인데 대량 입주단지에서 이렇게 매물이 없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선 ‘임대차 2법(이하 임대차법)’의 한파를 피부로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임대차법 이후 이사를 포기한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이용해 눌러앉거나 아예 주인이 실거주하러 들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현재로선 전세난이 언제쯤 풀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나오는 매물은 없는데 대기수요는 넘치다 보니 전셋값도 폭등했다. 실장은 “법 시행 전인 지난해 7월 33평형 보증금이 9억원선이었는데 지금은 12억∼13억원선에 올라와 있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33평형 전세가 12억8000만원에 계약됐다. 6개월 만에 3억원 이상 오른 것이다.

서울 강남구 도곡렉슬(3002가구)도 이날 기준 26평형 2개, 33평형 4개가 시장에 나온 전세 매물 전부였다. 보증금 역시 지난해 8월 이후 약 2억원 상승했다.

2550가구인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7단지는 27평형 전세 매물이 11개, 나머지 평수에서 5개였다.

인근 H공인중개업소 실장은 “임대차법 시행 후 작은 평수는 2억원, 큰 평수는 3억씩 보증금이 오르다 보니 가격만 물어보고 발길을 돌리는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3885가구가 입주해 있는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의 형편도 비슷하다. 아현동 G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이날 기준 24평형 전세 매물은 10개, 34평형은 7개가 전부다. 중개업소 대표는 전년 동기엔 지금보다 매물 수가 최소 2배는 더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갭투자하신 분 중에 세입자를 내보내고 자신들이 들어와 살기로 해 매물을 거둬들인 게 있어 더 줄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작년보다 전셋값도 3억원 정도 올랐다. 전세 알아보러 오신 손님들이 금액 듣고 ‘대기’도 못 걸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전세대출을 최대로 받는다 해도 5억원이다. 여력이 안 돼 구로구나 경기 광명시로까지 이사하신 분도 있다”고 말했다.

◆‘임대차법’ 시행 후… 전세 매물 줄고 전셋값 올랐다

전세 품귀 현상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감지되고 있다. 6일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전국 전세 매물은 지난해 12월31일 6만5632가구에서 지난 4일 기준 6만3432가구로 3.4% 감소했다.

서울 전세 물건은 1만6837가구로 1만7173가구보다 1.9% 줄었다. 25개구 가운데 20개구에서 감소했는데 중랑구(-10.9%) 하락폭이 가장 컸고 중구(-7.2%), 금천구(-6.7%), 강서구(-4.3%), 노원구(-3.9%), 영등포구(-3.7%), 도봉구(-3.5%), 동대문구(-3.4%), 종로구(-3.3%), 구로·서대문구(-3.1%), 용산구(-2.7%) 등이 뒤를 이었다.

◆올해 공급 더 줄어… 전문가 “매매가 동반 상승 가능”

문제는 올해 서울 1분기 신축 아파트 공급 물량이 지난해보다 대폭 줄어들어 전세난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가 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서울 입주 예정 아파트는 총 1만1370가구로 지난해 동기(1만7154가구)보다 33.7% 감소했다. 이는 지난해 4분기 입주 물량(1만2097가구)과 비교해도 6% 하락한 수치다.

국토부가 추정한 2021년 전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 역시 3만6000가구 수준으로 지난해 5만1600가구에서 40% 이상 급감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연초 공급 부족으로 인한 전셋값 오름세가 매매가 상승까지 견인하며 올해 시장 불안정을 부채질할까 우려하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3기 신도시 청약 대기 수요가 임대차 시장에 남아 있고 보유세 과세 강화, 저금리 현상 장기화,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세 전가 등이 계속돼 올해도 전세 시장의 가격 불안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지난해 말 강남권 매매 시세가 별로 오르지 않고 있을 때 전세 시세가 올라가다 보니 연말 매매가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 영향이 올해까지 미치고 있어 강남구 가격이 상승하면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구),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구), 금·강·구(금천, 강서, 구로) 등 중하위권 및 경기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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