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이고 싶었던 16살, 그 아름답고 치열했던 기록.. 영화 <걸> [리뷰]
[경향신문]
엷게 미소 띤 얼굴, 속삭이는 듯 차분한 목소리. 하지만 내면에서는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이 요동친다. 영화 <걸>은 소년과 소녀의 경계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16세 라라의 분투를 담담하게 그려내며 전 세계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화제작이다.
주인공인 라라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가 되길 원한다. 그는 가족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호르몬 치료와 성별 전환 수술을 준비 중이다.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벨기에 최고의 무용학교에도 입학한다. 무용학교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라라의 정체성을 알고 있지만, 남들과 다르다고 따돌리지도, 언제부터 여자가 되고 싶었냐고 캐묻지도 않는다.
의아할 정도로 평온한 주변 환경, 그럼에도 라라는 늘 조급하고 불안하다. 소녀도 소년도 아닌 그 ‘몸’이 계속 발목을 잡는다. “뒤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몇배 노력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에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는 라라.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신체 구조때문에 수업을 따라가기가 버겁다. 마음껏 몸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춤추는 친구들을 보면서, 라라는 자신이 완전히 융화될 수 없는 집단의 존재를 끊임없이 자각한다. 생각보다 더딘 치료 과정에 대한 답답함, 수술을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 수 있다는 불안감 역시 커져만 간다.
영화는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과 편견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라라와 외부와의 갈등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대신 라라의 몸에서 벌어지는 조용하고 치열한 전투에 집중한다. 관객들은 거울에 비친 몸을 끊임없이 응시하는 라라의 표정에서 그 전투의 치열함을 짐작할 뿐이다. 연습에 매진할수록 피투성이가 되는 라라의 발은 ‘여자가 되기 위한’ 여정의 고단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라라는 발레복을 입기 전 테이프로 성기를 감싸맨다. 감염될 경우 갈망하던 수술을 못할 수 있다는 의사 말에도 라라는 스스로를 해치는 선택을 멈추지 못한다. 영화가 결말을 향해 달려갈수록, 라라의 자기파괴적 행위도 절정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일부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은 “지난 몇년간 만들어진 트랜스젠더 영화 중 가장 위험하다”며 보이콧에 나서기도 했다. 자기파괴를 ‘미화’하는 장면들이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불쾌감)로 고통받는 트랜스젠더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걸>이 던진 논쟁은 라라의 내면만큼이나 단순하지 않다. 트랜스젠더들이 가진 어두운 내면을 피하지 않고 전하는 것도 영화의 역할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세계적인 트랜스젠더 발레리나이자 라라의 실제 모델인 노라 몽세쿠흐는 뉴욕타임스에 “<걸>의 진실이 곧 나의 진실이었다”며 “(영화에 대한 비판은) 자살을 생각하거나 신체에 강박을 느낀 사람이 나뿐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2018년 벨기에에서 제작된 영화는 루카스 돈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제71회 칸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4관왕 등 전 세계 영화제에서 32관왕을 달성했다. 라라 역을 맡은 빅터 콜스터의 절제된 연기도 주목할 만 하다. 벨기에에서 무용수로 활동 중인 그는 ‘걸’을 통해 생애 첫 연기에 도전하며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분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7일 개봉.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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