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살아난 재즈 피아니스트..메마른 인생에 촉촉한 '소울'을
디즈니 영화 본편이 시작하기 전 어김없이 등장하는 신데렐라 성, 그리고 <피노키오> 주제가 ‘웬 유 위시 어폰 어 스타’(When you wish upon a star). 그런데 재즈 빅밴드 스타일의 연주가 어쩐지 좀 어설프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장면은 미국 뉴욕의 한 중학교 밴드부 연습실. 비정규직 음악 교사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가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수업이 끝나자 교장 선생님이 조의 정규직 전환 소식을 알린다. 하지만 조는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다. 그의 꿈은 여전히 재즈 피아니스트로 멋진 공연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조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평소 존경하던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 밴드의 무대에 함께하게 된 것. 하지만 첫 공연을 앞둔 바로 그날, 조는 맨홀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고 만다. 정신을 차려보니 파란 영혼이 되어 있다. 자신이 사후 세계인 ‘머나먼 저세상’으로 가는 길 위에 있음을 알게 된 조는 탈출을 시도하다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진다.
어딘지 낯익지 않은가? 음악과 사후 세계를 소재로 한 <코코>와 사람의 감정을 의인화한 <인사이드 아웃> 같은 애니메이션이 떠오른다. 두 영화 모두 독립 스튜디오였다가 지금은 디즈니로 들어간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의 작품이다. 그렇다. 20일 개봉하는 애니 <소울>도 픽사의 신작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르지만 실은 어른들이 더 환호한다는 픽사 애니의 전통을 <소울> 또한 고스란히 잇는다.
‘태어나기 전 세상’에는 곧 태어날 아기들의 영혼이 있다. 아기 영혼들은 여러 과정을 거치며 관심사를 발견하고 저마다의 성격을 부여받는다. 조는 얼떨결에 아기 영혼을 지도하는 멘토가 된다. 그의 담당은 지구로 가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영혼 22(티나 페이). 앞선 멘토인 링컨, 간디, 테레사 수녀도 포기한 골칫덩어리다.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는 22와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조는 지구 통행증을 놓고 은밀한 거래를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두 세계는 시각적으로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뉴욕 도심은 마치 실사 영화처럼 세밀하고 현실적인 반면, 영혼의 세계는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특히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태어나기 전 세상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태어나기 전 세상의 안내자 제리와 머나먼 저세상의 영혼 관리자 테리가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피카소의 추상화 같은, 2차원 선으로 이뤄진 외양이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조는 현실 세계와 영혼의 세계를 오가는 항해자의 도움으로 지구로 돌아온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22까지 지구로 오게 되면서 일이 꼬이고, 조와 22는 사태를 해결하고자 동분서주한다. 이 과정에서 둘은 삶에 대해 곱씹게 된다. 늘 삶의 목적과 열정만을 좇던 조는 하늘 보기, 걷기, 떨어지는 꽃잎 같은 사소한 걸 좋아하는 22에게 말한다. “그건 삶의 목적이 아니잖아!” 그랬던 조가 특별한 모험을 거치며 그동안 놓치고 있던 삶의 소중한 순간에 눈을 뜨고,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친다. <소울>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이유다.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음악이다. 전반부에서 감질나게 보여주던 재즈 음악이 후반부 클럽 공연에서 만발한다. 영화가 산으로 가든 말든 공연이 끝없이 이어지길 바랄 정도다. 스티비 원더, 프린스, 에드 시런 등 최고의 팝스타와도 앨범 작업을 한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존 배티스트가 재즈 음악 작곡과 편곡을 맡았다.
평단에선 “비주얼, 유머, 감성, 메시지까지, 픽사의 정점을 찍다!”(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라는 평가가 나오는 등 <소울>에 대해 호평 일색이다. 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 신선도 역시 6일 현재 96%다. 오는 4월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 후보로도 점쳐지고 있다. 연출을 맡은 피트 닥터 감독의 전작 <업>과 <인사이드 아웃>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바 있다.
한국인 애니메이터 김재형이 참여해선지 “내 바지 어디 갔어?” 하는 한국어 대사와 ‘호호만두’라는 한글 간판도 등장해 소소한 재미를 준다.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간 뒤엔 ‘허탈한 웃음’을 짓게 하는 보너스 쿠키 영상도 기다린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경찰청장, ‘정인이 사건’ 대국민 사과… “양천서장 대기발령”
- 상상이 안된다…‘막강한파 시작’ 8일 서울 체감 영하 24도
- “영국 변이 바이러스는 새로운 대유행의 전조 가능성” 경고
- MLB 입단 김하성 “우승 목표…신인왕도 타고 싶다”
- 미국 민주, 상원 다수당 되나…조지아주 결선투표 우세
- [유레카] 아이들 피를 먹고 자라는 ‘아동복지법’ / 김은형
- 파키스탄, 성폭력 피해 여성에 대한 ‘성경험 유무 검사’ 위헌 결정
- 훈제 연어는 모두 수입산? ‘강원도산 대서양연어’ 시대 성큼
- ‘레깅스 촬영’ 무죄→유죄…대법 “분노·모멸감도 성적 수치심”
- 스타 동물 자이언트판다 그늘서 반달곰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