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내 작업 원동력..코로나로 더 몰두했죠"

전지현 2021. 1. 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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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박진희 2인전 '온택트'
코로나 이긴 밀레니얼 작가
"팬데믹 공포 느낄새 없어"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나
게임 가상세계 풍자하고
내면의 습지 상상하면서
다양한 생명 기운 그려내
박진희 `항해`(218×291㎝·). [사진 제공 = 공근혜갤러리]
밀레니얼 세대 작가 김태연(35)과 박진희(37)에게 코로나19는 새로운 작업의 원동력이었다. 고립을 즐기는 두 사람은 지난해 작업실에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며 그림을 그렸다.

충청북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 중인 김태연은 그동안 몰입해온 온라인 게임 세태를 담은 '흑우(검은 소)' 연작을 완성했다. 흑우는 과도하게 게임 상품을 소비해 가산을 탕진하는 게이머를 비꼬는 호구의 언어적 유희다. 흑우와 비현실적인 인간, 게임 용어와 도구 등을 섞어 독창적인 작품이 나왔다. 경기도 이천시 금호창작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박진희는 내면의 습지(濕地)에서 성장하는 생명체들을 다채로운 반추상화로 표현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생애 처음으로 높이 3m 대형 화면에 독특한 자연 풍경을 그렸다. "작품에 몰두하는 동안 팬데믹 공포를 느끼지 못했다"는 두 사람이 서울 공근혜갤러리의 포스트 코로나 특별기획전 3부 'On-Tact(온-택트)'에 지난해 성과물들을 펼쳤다.

김태연 흑우-심해 (200×270㎝). [사진 제공 = 공근혜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난 김태연은 "중학생 때부터 빠져들었던 게임은 제2의 고향 같다. 가상세계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인간 관계도 가능하다. 서로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유대가 생겨 현실세계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희는 "사람들과 대면 접촉 없이 내 안의 풍경을 찾으려고 했다. 습지는 베일에 쌓인 미지의 공간이자 동식물이 사는 생태계여서 끌렸다. 젖은 공간 속 생명의 기운을 상상하면서 유화 물감으로 퇴적층을 쌓아올렸다"고 전시작들을 설명했다.

비대면 시대 두 사람의 작품 세계는 다르지만 개성이 넘친다. 기성 미술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화풍이다.

먼저 김태연의 '흑우' 연작 속 인물들은 하루종일 컴퓨터만 쳐다봐서 거북목을 갖고 있다. 신체 장기와 뼈를 노출해 내면의 불안을 드러낸 것도 특징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게임에 빠져 사는 삶의 공허감과 허탈감도 작품에 나타난다. 한지에 그린 '흑우-심해' 속 깊은 바다는 게임을 못하는 사람, 실패를 의미한다. 그 속에서 거북목 인간과 흑우가 허우적거리고 있다. 작품 오른쪽 하단에는 게임 코인이 반짝거리며 심해로 유혹한다. 옆에 걸린 그림 '흑우-백화'는 게임 아이템을 모두 잃은 상태를 글자 '펑'으로 써넣고, 하얗게 불태웠다는 게임 용어를 '火(화)'로 적었다. 흑우 위에는 운다는 뜻의 'ㅠㅠ'가 쓰여 있다.

밀레니얼 작가 박진희(왼쪽), 김태연.
또 다른 작품 '흑우- a+'에선 게임중독이란 독버섯을 먹은 흑우와 인간이 뒤엉켜 있다. 김태연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지만 희망을 줬다가 뺏어가는 게임을 풍자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동양화과와 영국 슬레이드 예술학교 석사과정을 졸업한 그는 조선시대 초상화와 한의학 장기도를 참고해 온라인에서 만난 게이머들의 얼굴을 추측한 인물화들도 걸었다.

박진희는 코로나19 원인이 결국 자연을 등한시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상상 속 습지를 온몸으로 그려나갔다. 두터운 유화 붓에 몸 전체 에너지를 실어 그림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진초록 바탕에 수직 상승하는 형상들이 모인 대작 '항해'는 SF영화 속 미래 도시를 연상시킨다. 또 다른 대작 '꽃덤불'에서 뒤엉킨 선과 색은 오묘하고 신비롭다. 숲속에 길게 뻗은 줄기들을 표현한 작품 '줄기'에 올린 물감 덩어리들은 새순 같기도 하다.

미국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와 영국 왕립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박진희는 "영국 유학 시절 설치 작품 협업을 하다가 지치면 나만의 동굴 같은 작업실에서 혼자 그림을 그렸다. 성공에 대한 압박감과 대면접촉을 줄이고 추상 공간을 화면에 쌓아갈 때 안도가 됐다"고 말했다. 2018년 5월에는 제주 애월읍 텐트 안에서 한 달간 혼자 살면서 텐트천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전시는 2월 21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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