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청각장애인의 '귀'가 되다

디지털팀 2021. 1. 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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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윤정기씨. 얼마 전 타고 있던 지하철이 가다 서기를 반복하더니 다음 역에선 주위 승객들이 하나 둘 하차했다. 윤씨는 영문도 모른 채 열차에 홀로 남아 역무원이 올 때까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알고 보니 연착에 따른 승객 하차를 요구한 열차 내 음성방송이 있었지만, 청각장애인 윤씨에겐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크게 줄 전망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응급상황 문자·수어 안내’ 서비스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음성안내 방송을 AI로

열차나 비행기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긴급상황 발생 시 대피 안내방송은 대부분 음성으로만 제공된다. 청각장애인은 이를 들을 수 없어 곧바로 대응하지 못하는 위험 속에 살아왔다. 하지만 이젠 청각장애인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통해 문자와 함께 수어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안내방송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지난해부터 ‘사회현안해결 지능정보화 사업’ 목적으로 이 서비스를 추진 중이다. 이미 수서와 동탄, 지제 등 총 3개 SRT 고속철도역사와 SRT 열차 내 응급 음성안내방송이 청각장애인 스마트폰에 문자와 영상(수화 애니메이션)으로 제공되고 있다.

스마트폰에 응급안내 수어가 표출되는 모습

이를 통해 기존 일반 음성안내 방송 종료 후 3.9초 만에 청각장애인도 같은 내용의 문자와 수화 영상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 사업의 최대 난제였던 긴급문자의 ‘수어 애니메이션’ 시퀀스 변환 처리 속도도 1초 이내다. 실시간 변환된 수어 영상에 대한 청각장애인의 이해도 역시 100점 만점에 90.7점에 달했다. 그만큼 이용 만족도가 높다는 의미다. 한국농아인협회 소속 청각장애인 30명이 실제 SRT 열차에 탑승해 수서-동탄역간 구간에서 최종 테스트한 결과다.

수서역 역사내 전광판에 수어안내방송이 표출되는 모습

◇문자면 충분? 그렇지 않은 사연

“음성을 ‘문자’로만 바꿔주면 되겠네”

청각장애인을 상대로 한 ‘응급상황 안내 서비스’ 사업 초기, 예산 부처 등 관계 기관으로부터 가장 많이 나온 얘기 중 하나다. 하지만 이는 청각장애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 낳은 오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수어사용 실태조사’(2017) 결과, 청각장애인의 26.9%가 문자(필담)를 전혀 또는 거의 이해 못 한다고 응답했으며,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응답자도 42.6%나 됐다. 청각장애인 상당수가 ‘문맹’이란 얘기다. 왜 그럴까?

청각장애는 대부분 선천적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모국어는 한국어가 아닌 수어다. 문법 체계와 어휘 방식이 전혀 다른 한글은 그저 외국어일 뿐이다.

윤병천 나사렛대 교수(수어통역교육 전공)는 “동작기반 언어인 수어는 음성기반 문자인 한글과 전혀 다른 언어 체계를 갖고 있다”며 “국내 청각장애인이 한글을 배운다는 건 일반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기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최근 실시한 ‘장애인 독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독서경험이 있다”고 답한 청각장애인은 49.6%였다. 장·노년층으로 갈수록 그 비율은 현격히 떨어진다. 시각장애인 독서율(77.3%)이 청각장애인보다 높을 정도다. 그만큼 청각장애인의 문자 접근성은 낮다. 문자 서비스만으론 안 되는 이유다.

교통수단·이용시설·범위 확대

사업 2차년도인 지난해 NIA는 서비스 범위는 물론이고 교통수단과 이용시설 등을 확대 실시했다. 1차년도 사업 진행 시 청각장애인들의 실제 사용에서 나온 요구 사항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다.

역사 화장실에서도 전광판 안내수어를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각장애인들의 요구에 따라 서비스 사각지대를 없앴다. 또 교통수단 외 다중이용시설로 확대해 달라는 의견, 시설마다 다른 앱이 아닌 단일 ‘공통앱’을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 등이 이번 사업에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이에 따라 고속철에 이어 서울지하철 5·7호선 신규 열차 336량에도 청각장애인용 문자·수어 애니메이션 안내방송 시스템이 구축된다. 이용 가능 시설도 넓어졌다. SRT 전 열차(256량)는 물론 국립과천과학관, 국립부산과학관에 구축되며 기타 일반 다중이용시설과도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번 사업의 총괄책임자인 이인구 이큐포올 이사는 “모든 다중시설이 빠르고 저렴하게 이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클라우드 방식의 전용 플랫폼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별도 앱을 설치하는 등의 불편함 없이 필수 안내문에 대한 수어 접근성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NIA는 코로나를 비롯해 폭염, 태풍, 홍수 등에 대한 ‘긴급재난문자’도 수어 애니메이션으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 실시된 해당 실증평가에 따르면 긴급재난문자 수신 후 8초 이내에 청각장애인도 해당 수어 안내를 받아 볼 수 있다. 재난문자의 수어 변환 정확도 역시 90% 이상을 확보했다.

5대 긴급재난문자에 대한 ‘수어 애니메이션’ 서비스

문용식 NIA 원장은 “이번 사업은 지난 5월 UN의 ‘공공선을 위한 AI 글로벌 서밋 2020’에서 AI 등 첨단 ICT 기술의 우수 활용사례로 소개됐을 정도로 세계가 주목하는 프로젝트”라며 “내년에는 대상 계층을 확대하고, 사업내용도 더욱 고도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NIA는 올해 시각·지체장애인에게 서울역과 같은 복잡한 실내의 이동 경로를 안내해주는 ‘실내 길안내 내비게이션’ 서비스와 장애인이나 고령층도 사용이 편리한 ‘지능형 키오스크 배리어프리(barrier-free)’ 서비스, 노인 요양시설 서비스를 ICT기반으로 구축하는 ‘스마트 안심요양 서비스’를 시범 실시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으며 내년에도 이러한 노력은 지속될 전망이다. 과기부는 사회문제해결과 디지털 포용 등 ‘과학기술·ICT 기반 포용사회 실현’에 내년도 예산 1조 5179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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