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동씨가 '사라지는 동물'을 빚는 이유

김지숙 2021. 1. 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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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멸종위기 동물 조형 정의동 작가
어린 시절 '황새 다큐' 감명 받아 멸종위기 동물 조각
"최대한 실물처럼 만들어 주변의 생물들 알리고 싶어"
정의동 작가는 멸종위기종과 잘 알려지지 국내 서식종 등을 모델로 조형물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정의동 작가 제공

정의동 작가가 사라지는 동물들에 매혹된 것은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아버지가 틀어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한국의 마지막 황새 부부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텃새로는 단 한쌍 남아있던 황새 수컷이 1971년 밀렵꾼의 총에 목숨을 잃고, 암컷이 혼자 남아 20여 년간 무정란만 낳다 죽은 것이다. 인간의 영향으로 사라진 황새의 비극적 이야기는 어린 그의 마음에 물결을 일으켰다.

그때부터 장난감은 자동차에서 모두 동물들로 바뀌었고, 매주 수요일 밤 환경 다큐를 손꼽아 기다리는 시청자가 됐다. “한 마디로 동물에 꽂혔던 것 같아요.” 디자인을 전공하고, 직장인과 사업가로 청년이 된 뒤에도 ‘동물 피규어’를 모으는 수집가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4년 전부터는 직접 동물을 빚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멸종위기 국내 토종 돌고래인 상괭이를 알리는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해 목표액의 1500%를 달성하기도 했다.

‘욕 먹을 정도로’ 실감나게 만든 이유

황새부터 상괭이까지 낯선 동물들에 집중하는 이유가 뭘까. ‘최대한 사실적으로, 실제에 가깝게 만드는 것’에 힘을 쏟고 있다는 정의동 작가의 작업 이야기를 12월31일 서울 행당동 작업실에서 들었다.

정 작가는 다소 낯선 동물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최대한 실제 모습과 가깝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간 어떤 작업을 해오셨나요.

“개인작가로 데뷔하고 초기에는 작은 조형물 위주로 작업을 했어요. 국내 서식종 위주로 알리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거든요. 두꺼비나 긴점박이올빼미, 점박이물범 등을 만들었죠. 나중에 작업이 조금 알려지고 나서는 회사에 합류하게 됐는데, 그때부터는 아예 멸종된 공룡이나 도도새 같은 동물들도 만들게 됐죠.”

-멸종위기나 보호종들 많잖아요. 작업 모델을 고르시는데 우선순위가 있나요.

“큰 동물들은 알려진 게 많잖아요. 표범이나 호랑이 같은 경우는 워낙 많이 알려진 멸종 동물이지만, 그 외에도 정말 작은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거든요. 단순히 멸종위기종을 떠나서 개체 수가 감소하는 경우도 많아요. 특히 맹꽁이나 개구리, 두꺼비는 도시가 점점 확장하면서 서식지를 잃은 대표적 생물이에요. 얘네들도 살 곳이 없어지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양서류 작업을 많이 했죠.”

개구리, 맹꽁이 등 양서류는 정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생물종 중 하나다. 정의동 작가 제공

-조각이라고 하면 미적인 측면도 중요할텐데, 양서류도 만들면 예쁜가요.

“양서류는 사실 예뻐보이려고 만든다기보다, 진짜 같아 보이려고 만드는 거죠. 털이 없으니까 디테일을 살리면 최대한 진짜 같아 보일 수 있거든요. 제 작업은 예쁜 조형물을 전시용으로 만든다기보다 우리가 보기 힘든 생물을 재현하면서 친숙하게 하려는 목적이 더 많아요.”

“자료 적은 상괭이, 도도새 더 힘들었죠”

정의동 작가가 테이블로 손바닥 만한 두꺼비 조각을 들고 왔다. 울퉁불퉁한 피부와 검은 등 무늬, 짙은 호박색 눈이 특히 실감났다.

-무섭다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전시회에 나가면 일부러 바닥에 전시하기도 하거든요. 모르고 지나가시던 분들이 깜짝 놀라서 욕 한번 하고 가시면 그게 또 엄청 기분 좋아요. 양서류를 가장 좋아하고, 제 전문 분야이기도 하니까요.”

-양서류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신가요.

“진짜 같아 보이잖아요. 그게 참 매력적이에요. 생물을 만들 때 관련 자료를 굉장히 많이 찾아봐요. 논문을 찾아 읽거나 국내 전문가들께 조언을 구하기도 하구요. 교수님, 연구원분들께 자문해서 수정을 많이 해요. 두꺼비의 경우에도 앞 다리의 근육이 더 많다고 해서 손 본 케이스구요. 얼만큼 노력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니 더 보람있죠.”

국내 토종 돌고래인 ‘상괭이’를 알리기 위해 상괭이 조각을 만들고,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따. 정의동 작가 제공

-고증까지 하려면 힘든 작업이실 것 같은데.

“그나마 자료가 있으면 다행인데 그마저도 적으면 작업이 많이 어려워요. 특히 상괭이는 야생에서도 목격이 쉽지 않은 동물이기 때문에 조형물로 만든다는 것도 쉽지가 않았어요. 논문도 대부분 개체의 특성이 담겼다기보다는 생태에 대한 기록이 전부였고, 실제로 볼 수 있는 모습은 혼획으로 죽어있는 모습 뿐이었으니까요. 대부분 작업에서 상상은 최대한 배제하지만 이번 작업은 조금 불가피했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들도 있었나요.

“도도새 작업이 좀 애착이 가요. 도도새는 인간이 멸종시킨 동물이잖아요. 그런 도도새 뼈를 재현하는 작업을 했어요. 도도는 전세계적으로 남아있는 박제가 영국 자연사박물관에 하나 있는 걸로 알아요. 그나마도 타서 일부분만 남아있죠. 외국 논문이나 이미지 참고하면서 복원했어요. 복원 사례가 많이 없어서 관심도 많이 받고 어려운 만큼 뜻 깊었어요. 지금은 경북 상주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에 전시 중이에요.”

멸종한 공룡부터 사라지는 ‘생물 이웃’까지…

정 작가는 개인적 작업의 영역을 넓혀 현재 이러한 멸종위기 생물이나 동물을 재현해 박물관에 납품하는 회사에 이사로 재직 중이다. 최근 그가 속한 팀이 진행한 동물은 공룡이었다.

최근에는 박물관 등에 공룡이나 도도새와 같은 멸종된 동물들의 모형을 제작해 납품하기도 했다. 정의동 작가 제공

-공룡은 더 오래 걸릴 것 같네요.

“최근에 스피노사우루스를 실제 크기로 만들었는데, 약 한달 걸린 것 같아요. 처음 해보는 대형 작업이기도 했고, 머리만 1.5m 크기니까 애를 많이 먹었어요. 점토가 계속 갈라진다거나 디테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작업 시간이 더 오래 걸렸죠. 빨리 하려고 하면 할 수록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계속 수정을 한 거죠.”(웃음)

-고된 작업이실 것 같은데 어떨 때 보람을 느끼세요.

“박물관에 제가 만든 공룡이 들어가던 날인데요. 전시작 사진도 찍고, 관계자 분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유치원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들이 지나가면서 공룡을 보고 즐거워하더라구요. 그걸 보니까 ‘나도 어렸을 때 저랬는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되게 기뻤어요. 이제 아이들이 내가 만든 공룡을 보고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앞으로 더 집중하고 싶은 분야가 있을까요.

“동물들도 때마다 이슈가 되는 종이 있잖아요. 그런 애들 말고 정말 깊숙이 박혀 있는 애들, 우리 집앞 하수도에 살고 있는 개구리나 뒷산 고라니처럼 ‘여기에도 동물이 사는구나’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물론 독도 강치나 독수리처럼 도전적인 작업도 계속 해나가야죠.”

정의동 작가 작업실에 전시된 작품들.

사실 그는 지난해 한 방송사의 연애관찰 예능 ‘하트 시그널’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조심스레 출연 계기를 물었더니 ‘생물 덕후’다운 답을 내놨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아서 수락했다”는 것. 맹꽁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길게 이야기를 전하던 그가 마지막에 덧붙인 메시지는 ‘상괭이 펀딩’에서 모델 후보로 올랐던 금개구리, 뱁새에도 관심을 더 가져달란 이야기였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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