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 두 대통령 체제' 베네수엘라, 마두로의 승리로 끝날까

김향미 기자 2021. 1. 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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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통합사회주의당(PSUV)의 디오스다도 카베요 의원이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사진(오른쪽)을 들고 새 의회 출범식에 참석하고 있다. 카라카스|로이터연합뉴스

베네수엘라에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서로 ‘적법한 대통령’이라며 주장, 2년 동안 ‘한 국가 두 대통령 체제’를 유지해왔다. 마두로 대통령은 2018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과이도 의장은 2019년 1월 대선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임시 대통령’을 자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등 서방은 마두로 정권을 ‘불법 독재정권’이라 비난하며 과이도 의장을 대통령으로서 지지했다. 이 싸움의 승자가 마두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치러진 총선에서 사회주의 여당이 승리, 마두로 대통령이 사실상 국회까지 장악하면서다.

현지 일간 엘우니베르살 등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오후 공식 국회 출범식에 통합사회주의당(PSUV) 등 여당 연합 의원들은 베네수엘라 출신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사진을 든 채 의사당에 입성했다. 지난달 6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선 야당의 보이콧 속에 총 277석 중 256석을 여당 연합이 가져갔다. 5년 전 선거 이후 야당 다수였던 국회는 그동안 마두로 정부가 장악하지 못한 유일한 국가 기관이었다.

의원들은 이날 새 국회의장으로 정보부 장관 출신인 호르헤 로드리게스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선출했다. 로드리게스 신임 의장은 “(미국 등의) 제재는 무용지물이다. 최악의 제재조차도 우리를 깨뜨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미국 등 서방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마두로 대통령의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와 아들 니콜라스 마두로 게라도 국회에 새로 입성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오른쪽)과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 겸 임시 대통령. AFP연합뉴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과이도 의장도 이날 화상으로 기존 국회가 임기를 연장해 활동할 것이라고 알렸다. 야권은 지난달 국회의원 선거가 ‘사기’라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친마두로 성향인 대법원은 곧바로 국회의 임기 연장 결정이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야권은 대법원의 결정을 무시한 채 이날 연장된 임기를 시작했다.

야당이 보이콧한 데다, 투표율도 낮아 미국 등 서구 각국은 지난달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미 재무부는 전날 대베네수엘라 제재 관련 내용을 갱신하면서 기존 국회의 지위를 계속 인정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앞서 2019년 1월 과이도 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후 미국 등 50여개국이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이달 20일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미국이 과이도 의장을 지지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바이든 당선자는 마두로 대통령을 ‘독재자’로 칭했지만, 대베네수엘라 정책 구상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표면적으로 국제사회의 지지가 변함없다고 해도 베네수엘라 내에서 국회의장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과이도 의장의 임시 대통령 지위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마두로 정부가 군부와 법원 등 권력기관의 지지를 잃지 않은 데다 쿠바, 러시아, 이란 등 외국 동맹의 지원을 받으며 체제를 유지하는 동안 과이도 의장은 지지부진한 정권 퇴진 운동 탓에 최근 지지율이 2년 첫 임시 대통령 선언 당시보다 반토막이 났다고 알자리라 방송이 전했다. 야권 내에서도 선거 보이콧이 패착이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등 균열이 생겼다.

베네수엘라 안드레스베요 가톨릭대의 베니그노 알라르콘은 AFP통신에 “(권력) 이원화가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라며 “베네수엘라 내에서는 (과이도 국회의) 지위가 상징적인 것에 그친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고 말했다. 정치학자 앙헬 알바레스는 블룸버그통신에 “마두로 정부가 이 전투에서 승리했다. 과이도는 국제사회의 지원만으로는 마두로를 전복시킬 수 없다. 베네수엘라에는 권위주의 정부와 파편화된 야당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권력 장악력을 높인 마두로 정권은 심각한 경제난을 타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 4일 로이터통신은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업체 PDVSA의 원유 및 석유정제품 수출량이 전년보다 37.5% 급갑해 77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등의 제재에 더해 코로나19로 국제사회의 원유수요가 급감하면서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는 산유국이지만 정유시설 낙후 등으로 정작 주민들이 쓸 기름은 부족한 실정이다. 앞서 지난해 7월 안드레스베요 가톨릭대 연구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서 하루 3.2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생활하는 가구의 비율이 75.8%에 달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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