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우리는 '똥 치우는 아줌마'가 아닙니다 (하) / 이미영

한겨레 2021. 1. 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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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2020 공모전
이 상황을 본 원장은 김치로 맞은 요양보호사에게 “어르신께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고 얼떨결에 요양보호사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동료 요양보호사가 저녁에 퇴근하면서 나에게 전화로 하소연했다. “정말 요양보호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미영ㅣ요양보호사

도대체 뭐 하는 ×들이야?

평일 낮시간에 한 어르신의 아들이 술을 먹고 요양원을 방문했다. 그날 요양보호사들은 다른 어르신을 케어하고 있어 40대 후반 정도의 아들이 와 있는 줄도 몰랐다. 갑자기 남자 목소리가 들렸고 “도대체 뭐 하는 ×들이야?”, “우리 엄마 상태가 왜 이래?”, “방은 왜 청소를 안 했어” 등 반말과 욕설, 삿대질을 하면서 “아줌마” 호칭으로 요양보호사들을 불렀다. 어르신은 아들을 말리고 있었으나, 보호자였기에 요양보호사 누구도 말대꾸할 수 없이 그의 언어폭력에 노출되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다르지만, 요양원이나 요양보호사들이 보호자의 방문을 제지할 수도 없고, 방해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술에 취한 경우 등은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보호자 교육도 필요하다. 어르신들이 보는 데서 요양보호사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들의 관계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요양원의 경우 어르신 대비 요양보호사 숫자가 2.5:1이라고 하면 한 직원이 어르신 2~3명을 모시는 줄 아는데 실제 전체 인원 대비 숫자 비율이라 낮에 7명 이상, 야간에는 20명 이상, 30명까지도 혼자 돌보는 경우가 있다. 보호자들이야 제 부모에게 집중하기를 바라며 이것저것 요구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수원에서 요양보호사협회를 꾸리고 들은 50대 후반 여성 요양보호사의 이야기이다. 결혼 후 집에서 살림만 하다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다. 자식도 다 키우고 시간 여유가 생기니 봉사하는 마음에 보람도 느꼈다. 어느 날 야간 혼자서 한 층의 어르신 20명을 케어하면서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데 나이 든 남자 원장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고 원장은 시시티브이(CCTV) 사각지대인 쓰레기장까지 쫓아와 젖가슴을 주물렀다. 당황스러웠지만 갑작스러워 항의는커녕 누구에게 말도 못 한 채 사직서를 쓰고 나왔다. 혹시 남편이 이 일을 알까, 다시는 이 일을 못 하게 될까 두렵기도 하고 혼자서 전전긍긍했다. 처음 말한다며 그 원장을 혼내주고 싶다던, 곧 예순살이 되는 여성은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물증도 없고, 늙은 남자 원장이 발뺌하면 그만인 상황이라 아무 조치도 할 수 없었다.

거동이 불편하나 인지가 있는 어르신이 요양보호사를 불렀으나 ―물론 “아줌마”로― 요양보호사는 다른 어르신의 식사를 배송 중이라 조금 늦게 갔다. 어르신은 요양보호사에게 욕설과 함께 자신의 식판에 있던 김치를 들어 던졌다. 계속 소리 지르며 욕을 하여 요양원 원장과 사무실 직원들이 올라왔다. 이 상황을 본 원장은 김치로 맞은 요양보호사에게 “어르신께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고 얼떨결에 요양보호사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동료 요양보호사가 저녁에 퇴근하면서 나에게 전화로 하소연했다. “정말 요양보호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원장은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를 격리시키고, 다른 요양보호사가 수발들게 지시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정황도 확인하기 전에 조선시대 아씨 마님을 모시는 몸종도 아닌데 무릎을 꿇게 하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지만 그 후에도 이런 종류의 사례는 종종 생겼다.

“○○○ 요양보호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합니까?” 한 요양원의 전체 직원 조회시간에 배포된 설문지 문항이다. ○○○는 3년 이상 근무해온 요양원의 일방적인 탄력적 근무시간제에 동의하라는 요청에 더 알아본 뒤 사인하겠다고 한 노조 조합원이었다. ○○○가 출근하지 않는 날, 전체 직원 조회에서 배포된 종이를 다른 조합원이 사진 찍어 보내주면서 드러났다. 노조를 용납할 수 없다던 대표는 자기 말 잘 듣는 몇 요양보호사와 함께 이런 식으로 조합원을 ‘왕따’시키고 있었다. 몸종 대접보다 더한, 노비 중 양반 말 안 듣는 노비를 멍석말이로 매질시키는 경우였다.

말할 수 없는 분노에 즉각 노동조합이 개입하였으며 공식 사과와 사과문을 요양원 각 동에 게시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요양보호사를 대하는 요양원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장기요양제도가 생기고 국가자격증을 가진 요양보호사들은 아직도 최저임금에, 휴게시간 공짜노동에, 갖은 갑질과 욕설에, 노조 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은 어르신 돌보는 일을 좋아한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 일상을 요양원에서 보내는 어르신들과 함께 웃으며 돌봄 일에 보람을 느끼는 요양보호사들이 ‘똥 치우는 사람들’로 대접받지 않고 ‘노동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돌봄노동의 사회적 가치도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하편입니다. 다음주에는 우수상 수상작이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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