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폭파 버튼 / 손아람

한겨레 2021. 1. 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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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엘지트윈타워 앞에서 열린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엘지 제품 불매 선포 기자회견에서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과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해결을 위한 공대위 관계자들이 고용승계를 촉구하는 동안 건물 안에서 농성하는 청소노동자들이 바깥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손아람 | 작가

먼저 김순자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는 보수정당의 골수당원이었다. 반공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였다. 월급 60만원을 받았지만 만족했다. 함께 일하는 정규직 청소노동자의 월급이 250만원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울화통이 터진 그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운동에 함부로 뛰어들었다가 집단해고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빨갱이 딱지가 붙어 소속단체에서도 차례차례 제명됐다. 그때부터 늦깎이로 운동권의 삶을 밟아나가기 시작한 그는 훗날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나를 놀라게 한 건 그의 기이한 행적이 아니라 월급이었다. 60만원과 250만원. 동일노동에 대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급여가 4배 이상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백마디 해설보다 더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숫자였다. 노동법의 우산 아래 있느냐 혹은 없느냐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뜻이다. 왜 비정규직 운동에 늘 ‘처우 개선’이 요구사항으로 따라붙는지, 사회적 지탄을 무릅쓰면서까지 기업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확대하려고 기를 쓰는지, 심지어 반공단체 회원이 어쩌다 뚜껑이 열려 비정규직 운동의 화신으로 돌변했는지까지 단박에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한 보수 정치인에게 이 사례를 들려줬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250만원짜리 노동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서 60만원으로 평가절하됐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제 관점에선 60만원짜리 노동이 여태껏 250만원으로 과대평가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교하게 반박하기는 어려운 말이다. 청소 노동의 진짜 가치는 60만원에 가까울까, 아니면 250만원에 가까울까?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될까? 아무도 정답은 알지 못한다. 노동의 객관적 가치를 산출하는 공식을 알아내는 사람이 있다면 노벨 경제학상은 떼놓은 당상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가지는 확실하다. 기업이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자(비정규직)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설명할 근거는 교섭 능력의 차이뿐이다. 노동자와 기업 사이 힘의 격차가 노동의 가치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취약한 사회적 지위가 노동 가치의 전폭적인 할인으로 이어지는 사회를 누가 원할까? 테이블 위에 노동자가 기업을 폭파시킬 버튼이 놓여 있지 않다면, 기업도 노동자를 폭파하는 버튼에 함부로 손가락을 가져다 댈 수 없어야 공정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겨눠 집단해고를 무기로 휘두르는 기업은 전혀 신뢰할 수 없다. 언제든지 압도적인 능력을 확보하기만 한다면 소비자와 나아가 사회 전체의 안녕을 인질로 잡은 채로 똑같은 짓을 벌일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던 엘지(LG)트윈타워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전원이 계약 해지를 당했다. 농성장에는 전기가 끊겼고, 용역업체 직원들이 나타나 식료품 공급을 물리적으로 차단했다. 엘지는 간접고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뭐랄까, 너무 낡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엘지전자가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주력으로 만들어 팔던 시절에나 볼 수 있던 고전적인 풍경이다. 다른 대기업들이 손배 가압류로 노동운동 탄압을 고도화해온 동안 겨우 여기에 머물렀다니 상당히 실망스럽다. 무엇보다 불쾌하다.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동안 집단해고는 노동자를 압박하는 수단이지만, 일단 실현된 순간부터는 사회를 향한 메시지나 다름없다. 광장에서 벌이는 참수처럼 거기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사태는 이렇게 종결되었다. 앞으로 누구도 처우 개선 따위를 입에 담지 말라.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 모든 결정은 우리가 내린다. 보라. 정규직이 아닌 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한방에 목이 달아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힘이다!”

나는 집단해고된 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불매운동 제안에 응한다.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엘지전자의 4k 프로젝터 HU70LA의 구입을 보류하기로 한다. 이 불매운동 제안을 악덕 기업을 응징해달라는 읍소가 아닌, 교섭 능력의 대칭성을 복원하는데 시민사회가 조력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으로 받아들인다. 처음부터 서로를 해치지 않는 대화가 최선이지만, 공정한 룰이 되려면 테이블 위에는 폭파 버튼이 두개가 놓여야만 한다. 신중한 대화는 그런 조건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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