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현의 북한읽기] 8차 당 대회 개회사의 시사점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2021. 1. 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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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뉴스1이 북한 전문가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의 글을 연재한다. [정창현의 북한읽기]는 북한 정치·군사·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리더십 해석'을 통해 반 발짝 앞서 북한의 변화를 읽어낸다. 정창현 소장은 서울대 대학원(국사학과)을 마치고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를 거쳐 국민대·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기록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5일 평양에서 제8차 노동당 대회를 열고 개회사를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6일 밝혔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 올해와 향후 4년간의 사업방향을 논의, 결정하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가 5일 개막됐다. 당 대회 개막일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회사를 했다. 개회사는 이번 8차 당 대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당 중앙검열위원회를 조직해 '현장조사'를 광범위하게 진행했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8차 당 대회를 준비하면서 지난 4개월 동안 당 중앙위원회에 비상설 중앙검열위원회를 조직하고, 검열원들을 먼저 기층 당조직에 파견해 현장 노동자, 농민, 지식인 당원들의 의견을 청취한 후 이에 기초해 각 도와 내각의 중앙기관의 실태 파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층 당조직, 도와 중앙기관에 파견한 '요해검열소조'들을 통해 "당 제7차 대회 결정 관철에서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고 태공한 것은 무엇인가, 실리적으로 한 것은 무엇이고 형식적으로 한 것은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당적지도에서의 결함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비롯하여 그 진상을 빠개놓고(어떤 내용이나 내막 따위를 사실대로 다 드러내 놓음) 투시"했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비상설 중앙검열위원회'는 당의 공식기구로 설치돼 당의 노선과 정책 및 규약을 준수하지 않은 당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당 검열위원회'와는 다른 임시기구로 추정된다.

통상적으로 당 대회 준비기간에는 "중앙당 부서들과 전국의 당 조직들이 지난 5년간의 사업정형을 총화한 자료들과 함께 앞으로의 투쟁목표와 계획"을 제출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이와 별도의 임시특별기구를 만들어 기층당 조직원들의 의견을 사전에 광범위하게 들은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은 지난해 한 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주도했을 것이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5일 평양에서 제8차 당 대회가 개막했다고 6일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이러한 조치는 8차 당 대회에서 제시될 노선과 정책에 '현실성'을 담보하기 위한 시도로 평가된다. 이는 "우리가 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 할 과학적인 투쟁목표와 투쟁과업을 확정하자"라고 한 김 위원장의 개회사에 잘 나타나 있다. 과거 주객관적 조건을 소홀히 하고 실정과 동떨어진 계획을 세워 보고하는 '형식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북한에서 '형식주의'는 '실속이 없이 빈말공부나 하는 태도', '현실성이 없는 결정서나 계획서를 장황하게 만들어 채택하는 현상', '당의 방침이 제시되면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방법론을 깊이 연구하고 사업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되받아넘기는 식으로 하는 태도', '군중 속에 들어가 현실을 요해하고 실정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 앉아 통계나 받아들이는 손쉬운 방법으로 일하는 현상' 등을 말한다. 한마디로 책상에 앉아 무사안일로 위에서 결정된 사항을 문건으로 집행 시늉만 하는 태도를 말한다.

오랜 동안 몸에 밴 당 간부와 경제관료들의 형식주의가 지속적인 비판과 조직개편으로 쉽게 개선될 사항은 아니지만 이번 당 대회를 앞두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뿌리 깊은 형식주의를 제거하려고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그대로 방치해두면 더 큰 장애로, 걸림돌로 되는 결함들을 대담하게 인정하고 다시는 그러한 페단(폐단)이 반복되지 않게 단호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당 조직 개편과 사업방향의 변화를 예고한 대목이다.

둘째로 5년 만에 열리는 당 대회지만 당 대회 참석 대표들이 대거 교체됐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2016년 7차와 올해 8차 당 대회 집행부 구성을 비교해보면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해 39명 총원은 그대로지만, 구성원 가운데 29명(74.4%)이 교체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년간 당 정치국 위원과 중앙위원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지만 지속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재확인된 셈이다.

전국 각 조직의 당 대표자 구성에서도 군인 대표의 비중은 50% 가까이 줄고, 행정경제부문 대표가 두 배 가까이 배로 늘었다. '경제총력집중노선'에 기초해 경제발전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5일 평양에서 제8차 당 대회가 개막했다고 6일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셋째로 주목할 대목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목표에 미달한 점을 인정하고, 그 원인을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주체의 역할 문제로 평가한 점이다. 김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우리의 노력과 전진을 방해하고 저애하는 갖가지 도전은 외부에도, 내부에도 의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라며 "현존하는 첩첩난관을 가장 확실하게, 가장 빨리 돌파하는 묘술은 바로 우리 자체의 힘, 주체적 역량을 백방으로 강화하는데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발언은 2012년 6월 2일 로동신문 정론을 통해 '지금은 밖에서 밀려오는 적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회주의 요람 속에서 성장한 일꾼(간부)의 관료화, 귀족화가 문제'라고 지적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북한 내부의 어려움이나 경제목표 미달 원인을 외부(주로 미국) 탓으로 돌리던 관성에서 벗어나 외부의 경제제재를 상당기간 '상수'로 놓고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목표를 실속 있게 확정하고 달성하자는 것이다. 이번 8차 당 대회에서 내놓을 '정면 돌파전'의 방향과 대외적 메시지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개회사에서 엿볼 수 있는 강조점은 '현실성 있는 목표 설정'과 '실속 있는 사업', '현장의 목소리 수렴'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방향성이 이번 8차 당 대회의 결정서와 경제발전 5개년 계획에 어떻게 담길지 주목된다.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2019.3.6/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s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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