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규의 책읽기 세상읽기] (55) '자유로부터의 도피' - 자발적 활동을 통한 자아 실현

박완규 2021. 1. 6. 13:1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독일 출신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펴낸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이다. 나치독일의 압제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후 전체주의의 등장 배경을 세상에 알리려 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전체주의 세력을 극복하는 행위의 전제라고 했다. 무엇이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전체주의를 불러오는지를 규명했다.

그는 서문에서 “근대인은 개인에게 안전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개인을 속박하던 전(前)개인주의 사회의 굴레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개인적 자아의 실현, 즉 개인의 지적·감정적·감각적 잠재력의 표현이라는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며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개인을 불안하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자유를 얻은 대가로 고독과 불안에 내던져진 인간이 권위에 의존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그려낸 것이다.

프롬은 “인간 존재와 자유는 처음부터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한다. 여기서 자유는 ‘무엇을 위한 자유’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인 의미로 쓰였다. 그는 인간의 자유가 성장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힘과 통합이 증대되는 과정, 자연을 지배하고 인간의 이성이 더욱 강해지고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가 강화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개체화는 또 한편으로는 고독과 불안이 늘어나고 그로 말미암아 세계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의심,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의심이 강해지고, 그와 함께 개인으로서의 자기가 너무 무력하고 하찮다는 느낌이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세 사회체제가 붕괴된 뒤 개인의 안정도 파괴됐다. ”새로운 경제질서 속에는 자연스럽고 의심할 여지 없는 자리라고 생각될 수 있는 고정된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개인은 외톨이가 되었고, 모든 것은 개인의 전통적 지위가 보장해주는 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노력에 좌우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개인을 해방시켰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운을 시험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었고, 위험도 이익도 모두 그의 것이었다.” 종교개혁도 변화의 계기로 작용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겁먹고 뿌리째 뽑혀 고립된 개인, 새로운 세계와 관계를 맺고 거기에 적응해야 하는 개인의 인간적 욕구에 대한 해답”이라는 것이다. 근대의 개인은 이러한 일련의 변화에 따라 인간이 중심이었던 폐쇄적 세계에서 벗어났다. 

“세계는 무한해진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폐쇄된 세계에서 그가 차지했던 고정된 자리를 잃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도 잃어버린다.”

인간은 자유를 찾은 대신 고립됐고 사방에서 위협받는 존재가 됐다. 홀로 세계와 맞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파시즘이 대두하는 사회적 배경이 된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무거운 짐을 계속 짊어질 수는 없다. 소극적인 자유에서 적극적인 자유로 나아가지 못하면, 아예 자유로부터 도피하려고 애쓸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에 주요한 사회적 도피로는 파시즘 국가에서 일어났듯이 지도자에게 굴복하는 것과, 민주주의 사회에 널리 퍼져 있듯이 강박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다.”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첫 번째 메커니즘으로 “개체적 자아의 독립성을 포기하고 자기 이외의 어떤 사람이나 사물과 그 자신의 자아를 융합시키는 경향”을 꼽는다. 고독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피학적-가학적 충동에서 그 뚜렷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가학-피학적인 사람을 특징짓는 것은 언제나 권위에 대한 태도”라며 이를 ‘권위주의적 성격’이라고 규정짓는다. 파시즘 체제가 그 대표적 사례다. 또 다른 도피의 메커니즘은 개인이 자기 자신이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그는 모든 타인과 똑같아지고, 타인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똑같아진다. ‘나’와 외부 세계의 차이는 사라지고, 외로움과 무력함을 두려워하는 의식도 사라진다.” 하지만 자아의 상실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프롬은 이것을 ‘자동인형적 순응’이라 부르고 “자동인형 같은 인간의 절망은 파시즘의 정치적 목적을 키우기 좋은 비옥한 토양”이라고 했다.

프롬은 자발적 활동을 통한 자아의 실현으로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아의 실현은 사고작용만이 아니라 인격 전체의 실현을 통해, 즉 감정적 잠재력과 지적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이루어진다”며 “이 잠재력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지만, 겉으로 표현되는 만큼만 현실이 된다”고 한다. 이어 “적극적인 자유는 통합된 인격의 자발적인 활동에 있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개인이 자발적인 활동으로 자아를 실현하고 자신을 세계와 관련시키면, 고립된 원자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을 엿볼 수 있다. 남들의 생각을 따라 말하고 남들을 따라 행동하는 이들이 차고 넘친다. 개인의 자율적 사고나 합리적 판단은 찾아보기 어렵다. 군중심리에 지배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사소한 문제를 두고도 진영 논리에 따라 내편과 네편이 뚜렷하게 갈린다.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 숙고해볼 때다.

박완규 논설실장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