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정년 후 얻은 향기로운 직업 '여섯살 손주 돌보기'에 주름살 활짝

기자 2021. 1. 6. 11:2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정년 후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

나는 정년 후 새 직장을 일찍 준비해 왔다.

윗사람 눈치를 잘 살펴 비위만 잘 맞추면 절대 중도 퇴직이 없는 붙박이 직장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손주 김지안

사람이 나이가 들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바로 정년이 그것이다. 낯익은 의자며 책상 그리고 일정한 공간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의 인연을 뒤로하고 조용히 떠나야 한다. 그 순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허무가 강물처럼 밀려온다. 우리나라는 정년이 60세다. 그러나 요즘 60은 너무도 젊다. 창창한 20∼30대와 맞서도 밀리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가슴을 찢고 나올 것 같다. 젊은 친구들과 팔씨름을 해도 이길 것 같은 자신감이 있음에도 법이 정해 놓은 현실은 냉정하고 차갑다.

정년 후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 생계를 위해 다시 ‘알바’를 하고 취미 생활로 바쁘게 사는가 하면, 좀 여유가 있는 친구는 여행하고 글을 쓰며 노후를 보낸다. 그러나 노후 준비가 전혀 안 된 친구는 심한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요즘 코로나19로 일찍 퇴직한 친구들은 누구를 원망할 틈도 없이 위로의 술잔에 노후의 길을 묻는다.

나는 정년 후 새 직장을 일찍 준비해 왔다. 이 직장은 최소 10년은 보장된다. 일이 어렵지도 않다. 윗사람 눈치를 잘 살펴 비위만 잘 맞추면 절대 중도 퇴직이 없는 붙박이 직장이다. 웃음이 있고 향기가 있고, 나이를 잊게 하는 마력의 직장이다. 이 직장은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다. 아니, 원하면 저절로 생기는, 어쩌면 80세 90세까지 근무가 가능한 신이 내린 직장이다.

어쩌다 상사가 ‘꼬라지’를 피울 땐 사표를 내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투정을 잘 받아넘기면 금방 웃음이 나오는 만사형통의 직장이다.

나는 오늘도 그 직장을 향해 오전 7시에 집을 나선다. 직장이 있는 서울 발산동에 도착해 윗분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깨어나면 씻기고 밥 먹이고, 오전 10시에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상사 근무지에 데려다준다. 그로부터 그 윗분이 끝나는 오후 4시까지 마트에 가서 고기와 야채, 과일을 사다가 냉장고를 채워 놓고 또 세탁기를 돌려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한숨 늘어지게 자기도 한다. 때론 책도 뒤적거린다. 윗분 눈치 안 보며 일하는 이런 무릉도원의 자유로움은 옛날 직장에선 꿈도 못 꿔본 일이다.

오후 4시 어린이집은 분주하다. 젊은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로 눈인사를 하며 각자 윗분들을 모시고 총총 사라졌다가 다시 바로 옆 놀이터로 모인다.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을 타고 줄넘기를 하는 모습에서 60년 전, 나 어릴 적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모습이 투영된다. 내 손가방 속에는 항상 빨간약과 붕대, 반창고가 들어 있다. 순간 어느 윗분이 다치기라도 하면 나의 손은 하얀 간호사가 된다. 조금만 다쳐도 나에게 달려오는 윗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 스스로 택한 향기로운 이 직업에 만족을 느낀다.

나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행복이란 내 삶의 가치 기준에 맞으면 바로 그게 행복이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척도가 다르다. 많은 부와 높은 명예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없어도 남을 돕는 데서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정년 후 내 노후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내 행복은 올해 6살인 윗분(?)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 있다. “하뻐지, 나 키 컸어?” 오늘도 아침에 재보고 저녁에 또 재보는 키 높이 벽에 삐뚤빼뚤 그려놓은 까만 선들이 내 얼굴의 주름들을 하나둘 펴 준다.

출판인 김재남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립습니다·자랑합니다·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