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외교·국방 인선에 '특정 기업 출신' 다수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1. 1. 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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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자문회사인 웨스트이그젝을 바이든 신행정부의 인재 집합소이자 '파워 집단'으로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외교안보팀 핵심 인사들 면면은 오바마 행정부의 인선 지침에서 크게 후퇴했다.
ⓒEPA2009년 4월8일 한 행사장에 참석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지명자(왼쪽)와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

내년 1월20일 민주당 바이든 신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요즘 워싱턴 외교가의 최대 관심사는 웨스트이그젝 어드바이저스(WestExec Advisors, 이하 웨스트이그젝), 파인 아일랜드 캐피털 파트너스(Pine Island Capital Partners, 이하 파인 캐피털)라는 업체들이다. 전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이 모인 전략 자문회사이고, 후자는 월스트리트의 베테랑 출신들이 세운 투자 자문회사.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바이든 신행정부의 외교와 국방 분야를 이끌어갈 실무진 면면이 실은 두 회사 출신이기 때문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지명자, 미국 연방정부 산하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 지명자 애브릴 헤인스 등을 열거할 수 있다. 바이든 당선자는 유세 기간 내내 투명한 정부, 깨끗한 정부를 공약으로 내걸어왔기에 군수업체 등 여러 민간기업과 깊은 이해관계를 맺어온 이 업체들 출신 인사가 향후 상원의 인준 청문회에 나가면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먼저 웨스트이그젝은 오바마 행정부의 중간 관료 출신 세르지오 아기레와 니틴 차다 등이 주도해 2017년 만든 전략 자문회사다. 특히 국방부를 포함한 연방정부와의 수주 및 계약에 관심 있는 민간업체들에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히스패닉계인 아기레는 오바마 행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중동 및 아프리카 국장과 유엔 대사 비서실장을 지냈다. 인도계인 차다는 국무부와 국방부의 여러 보직을 거쳐 애슈턴 카터 전 국방장관의 선임 보좌관을 지낸 인물. 이들은 2017년 1월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자 의기투합해 전략 자문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회사명은 백악관 상황실이 있는 웨스트윙과 백악관 참모들이 근무하는 아이젠하워 행정동 사이의 거리 이름인 ‘웨스트 이그제큐티브 애비뉴’에서 착안해 ‘웨스트이그젝’으로 정했다. 그 뒤 두 사람은 실질적으로 이 회사를 이끌어갈 공동대표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차관을 지낸 미셸 플러노이,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토니 블링컨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플러노이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국방부 수석 부차관보를 포함해 여러 보직을 거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오바마 행정부 1기 때 국방차관까지 지냈다. 그는 2007년 자신이 설립한 진보적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회장이기도 하다. CNAS는 록히드마틴, 엑손모빌, 구글, 보잉 등 거대 기업으로부터 연구자금을 지원받는다. 게다가 그는 대형 정보기술 자문업체인 부즈앨런해밀턴과 투자자문 보스턴컨설팅그룹을 포함해 여러 회사의 이사직도 맡고 있다. 그는 오랜 국방부 경력과 평판으로 바이든 신행정부의 국방장관직 1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기업과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우려한 친민주당 단체들이 그의 국방장관 지명을 반대했고, 바이든도 결국 포기했다.

바이든 신행정부의 국가정보국 국장에 지명된 애브릴 헤인스도 웨스트이그젝 임원 출신이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여성 최초로 중앙정보국 부국장과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지냈다. 행정부를 떠난 뒤엔 웨스트이그젝의 임원으로 활약하면서 데이터 수집·분석 업체인 팔란티어 사의 자문역으로도 활동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공보국장을 지낸 젠 프사키도 웨스트이그젝의 임원 출신으로 바이든은 그를 백악관 대변인으로 지명했다. 그 밖에도 웨스트이그젝 출신 가운데 5명이 바이든 인수팀에 파견돼 국방, 재무 등 연방 기관의 인수 업무에 관여하고 있다.

ⓒEPA2010년 6월16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플러노이 국방차관. 오랜 국방부 경력으로 국방장관 1순위에 올랐으나 여러 기업과 얽힌 이해관계 때문에 지명되지 못했다.

군수업체 출신들의 국방부 고위직 인선

이렇게 보면 웨스트이그젝을 바이든 신행정부의 인재 집합소이자 ‘파워 집단’으로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이 회사 웹사이트를 보면 모두 35명의 전직 대사나 고위 관리, 장성 출신들이 ‘임원’ 혹은 ‘선임 보좌관’이라는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웨스트이그젝은 특정 회사나 국가를 위해 미국 정부에 로비하는 회사는 아니다. ‘지정학적 위험 분석’ 등 8개 전략 부문에서 고객들에게 “지정학 및 정책 관련 전문 조언”을 제공한다. 문제는 ‘이 회사의 고객이 누구냐’라는 점이다. 웨스트이그젝은 등록된 로비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고객을 공개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향후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와 헤인스 국가정보국장 지명자는 상원 인준청문회 과정에서 어떤 고객을 상대해왔는지 상세히 밝혀야 한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와 〈아메리칸 퍼스펙티브〉 등을 통해 지금까지 밝혀진 웨스트이그젝 고객은 미국의 정찰용 드론 업체인 쉴드 AI, 이스라엘 인공지능 회사인 윈드워드, 구글의 내부 싱크탱크로 불리는 지그소(Jigsaw), 구글 창업자 에릭 슈미트가 설립한 자선단체 ‘슈미트 미래재단’ 등 4개다. 특히 쉴드 AI는 2016년 국방부에서 100만 달러의 수주계약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미국 공군으로부터 무려 720만 달러 규모를 수주했다.

플러노이의 낙마로 국방장관에 지명된 로이드 오스틴 퇴역 장성도 앞서 언급된 인물들과 함께 투자자문사 및 군수 관련 업체들과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파인 캐피털의 일원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국방 및 기술 분야에 전문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파인 캐피털은 2020년 들어 급속히 국방 관련 업체들을 인수하면서 투자자들로부터 2억 달러를 조달한 바 있다.

오스틴 지명자는 2016년 중부사령관을 끝으로 은퇴한 뒤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제조업체로 이름난 레이시온의 이사로 영입됐다. 레이시온 자료에 따르면 오스틴 지명자는 지난 4년 동안 140만 달러의 급여를 받았다. 50만 달러 이상의 레이시온 주식도 보유 중이다. 그는 인준을 받기 전 이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것은 물론 주식도 처분해야 한다. 민주당 일각에서 이 회사 이사 출신인 오스틴 장군의 국방장관 지명을 달갑지 않게 보는 까닭이다. 민주당 마크 포칸 하원의원, 바버라 리 하원의원은 최근 성명에서 “미국의 국가안보가 보잉, 제너럴다이내믹스, 레이시온의 지침에 좌우돼선 안 된다”라면서 바이든 당선자에게 군수업체 출신 인사들의 국방부 고위직 인선에 반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바이든 선거본부는 그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2020년 6월, 수십 명의 윤리 전문가, 교수를 비롯해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 등 정치인들을 초청해 집권 시 인선 기준 관련 권고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 모임에서 거센 논쟁이 벌어졌다. 한쪽에선 과거 2년간 특정 분야에서 근무한 인사들의 행정부 등용을 제한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침을 더욱 엄격히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다른 한쪽에선 그렇게 할 경우 유능한 전임 행정부 인재를 구할 수 없다는 현실론을 적극 개진했다. 바이든 인수위는 최근 성명에서 “바이든 당선자는 개인의 사리와 특정 이익이 아닌 모든 미국인을 위한 공직자를 원한다”라고 선언했지만 구체적 인선 지침은 내놓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외교안보팀 핵심 인사들 면면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의 인선 지침에서 크게 후퇴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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